기획·칼럼

기생충을 엽기적으로 미화하다

과학서평 / 기생충 콘서트

어느 과학자가 있다. 이 과학자는 논문을 써서 발표를 해야 했다. 진급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논문을 쓰려면 실험을 해야 하는데 실험결과가 예상한 만큼 나오지 않았다. 진급이 걸린 논문이니 얼마나 급했을까,  화가 난 이 과학자는 벌레 새끼 두 마리를 자기 눈 속에 집어넣었다.

그 과학자는 기생충을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연구하려는 기생충은 하필이면 눈 속에 들어가 기생하는 안충(eyeworm) 중에서도 사람의 눈알에 들어와 사는 동양안충(Thelazia callipaeda)라는 기생충이다.

기생충을 자기 눈 속에 넣은 대학교수    

그 과학자의 이름은 서민, 우리나라서 제법 알려진 기생충 학자이다. 기생충 대중화를 위해 기생충 관련 서적을 여러 권 냈다. 기생충 박물관을 세우고 싶어하고, 온 국민이 기생충을 더욱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단국대 교수이다.

‘기생충 콘서트’는 세계의 여러 가지 기생충을 아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쓴 책이다.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값 16,000원 ⓒ ScienceTimes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값 16,000원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소재 중에서 왜 ‘엽기적인’ 기생충일까? 그렇다. 분명 엽기적이다.

‘엽기’라는 단어를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면, 아마도 중년은 넘었을 것이다. 신문 사회면의 가장 잔인한 범죄를 묘사할 때 ‘엽기’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새 이 단어는 본래 뜻을 잃어버리고 ‘다소 엉뚱한 여성’을 떠올리는 애교스런 뉘앙스를 풍기는 말로 대변신에 성공했다. 왜냐하면 ‘엽기적인 그녀’에서 배우 전지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생충 콘서트’를 읽으면 더 이상 ‘기생충’이 징그럽거나, 당장 구충제를 먹고 몸 밖으로 몰아내야 할 그런 엽기적인 작은 미꾸라지로 생각들지 않는다. 책의 절반만 읽어도 저자의 기생충 사랑이 쉽게 전염되는 이상한 효력을 낸다.

아마도 이렇게 쉽게 변심한 것은 이제는 기생충을 경험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나눠 준 약을 먹고,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서 지렁이 만한 희멀건 동물이 몸 밖으로 나오는 체험을 한 젊은이들은 이제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기생충 콘서트’는 징그러운 회충도 전혀 새로운 각도로 묘사해서 ‘기생충 경계심’을 가볍게 해제시킨다.

책에 회충의 사진을 실어놓고는 ‘표면에 윤기가 나고,  곡선이 휘어지는 각도도 유연하다’고 설명해놓았다.  윤기가 난다거나, 유연하다는 말은 매력적인 대상에게 쓰지 징그러운 대상에 사용하지 않는다. 저자는 한 술 더 떠서 ‘끝부분 처리가 완벽하다’ ‘곡선이 매끄럽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신문의 유명 여배우를 묘사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싶다.

도대체 저자는 왜 이렇게 기생충을 옹호하면서 독자들을 세뇌시키려는 걸까. 매우 부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생충을 옹호하려면 뚜렷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기생충이 인간에게 이런 좋은 기능도 한다. 혹은 지구생태계에 이러저러한 기여를 한다는 립서비스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생충은 말 그대로 인간에게 붙어서 나쁜 짓만 하는 것을 골라서 소개한다. ‘원포자충’은 집단설사를 유발한다. ‘시모토아 엑시구아’는 물고기의 혀에 구멍을 뚫고 피를 빨아먹는다.

저자는 뻔뻔스럽게 몇몇 기생충은 ‘착한 기생충’으로 분류했는데 ‘착하다’는 기준이 전혀 착하지가 않다. ‘요코가와 흡충’을 착하다고 분류한 이유는 ‘에볼라 바이러스는 온 몸의 구멍에서 피가 나와 치사율이 70%인데, 이 기생충은 기껏 설사와 복통이 고작이다’고 설명한다. 세상에, 설사와 복통이 감사하다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을까?

나쁜 기생충은 독극물 수준으로 악하다   

착한 기생충이 이 정도이니, 나쁜 기생충은 완전 독극물 수준이다.’ 파울러자유아메바’는 치사율이 95%에 이른다. ‘간모세선충’은 흙장난하는 아이에게 감염되며 간경화에 이르게 한다.

‘크루스파동편모충’은 수 십 년 동안 몸속에 살다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하니 완전 암흑속의 자객과 같다. ‘광동주혈선충’은 맛있어 보이는 달팽이 안에 살지만, 뇌막염 등 거의 100% 증상을 일으킨다.

그나마 기생충의 효용은 단 하나 소개했을 뿐이다. 구충은 자기면역계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질환의 치료에 쓰인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구충을 가지고 자가치료하는 사람들을 위해 200달러를 내면 구충 25마리를 배달하는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다. (http://wormswell.com) 구충 25마리가 든 액체를 살에 감은 붕대에 쏟은 뒤 12시간이 지나면 된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을 보면, 저자가 기생충을 미화하는 이유는 아마도 자기 전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대 의대 본과 4학년 때 선택의학 과목으로 기생충을 골라 잡았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지막 부분에 저자는 또 이렇게 당부한다.

‘책을 읽으셨으니 이제 기생충을 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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