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기니 공화국, 돼지와 무관한 ‘기니피그’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74)

2020년 1월 5일 대전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에서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정지궤도 복합위성 2B호(천리안위성 2B호)’가 발사지로 출발했다. 천리안위성 2B호는 무진동차량에 실려 인천공항까지 간 다음 세계 최대 수송기 AN(안토노프)-124에 실렸고, 지구 반대편 프랑스령 기아나로 날아가는 긴 여정에 올랐다.

예정대로라면 천리안위성 2B호는 2020년 2월 19일 프랑스령 기아나의 쿠루(Kourou)에 있는 기아나 우주센터(Guiana Space Center)에서 아리안5호 발사체에 실려 발사된다. 고도 3만 6000㎞의 정지궤도에 안착하게 되면 2010년 10월부터는 해양 환경 정보를, 2021년부터는 대기 환경 정보를 우리에게 보낸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은 1992년 8월에 역시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아리안 4 발사체에 실려 발사된 ‘우리별 1호’이다. 이후로 우리 위성들은 미국, 러시아, 인도, 일본 등지에서 발사되었다. 발사체의 국적에 따라 발사 장소가 매번 달라진다.

이번에 발사되는 천리안위성 2B호는 발사 용역을 맡은 유럽 다국적 기업인 아리안스페이스사가 발사지로 쓰는 기아나우주센터에서 발사된다. 기아나우주센터는 유럽우주국(ESA)과 프랑스 우주국(CNES)도 발사기지로 쓰고 있다.

유럽인들이 본토가 아닌 대서양 건너의 머나먼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로켓을 쏘아 올리는 이유는 이곳이 아리안스페이스사의 최대주주인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 적도에 가깝고 발사체가 날아갈 동쪽은 바다라 발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적도에서 가깝다는 프랑스령 기아나는 적도 기니와 헷갈린다. 더욱이 기아나(가이아나)나 기니가 들어간 지명이나 나라 이름이 여럿 있어 혼란스럽다.

기니(Guinea)는 사하라 원주민 말로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오래전부터 스페인 사람들은 사하라 사막에 사는 사람들을 ‘무어인(Moors)’이라 불렀는데 이 역시 ‘피부 빛이 검다’라는 뜻이다. 이 무어인들이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사막 남쪽 지역을 ‘기니’라 불렀다. 기니는 사하라 사막 남쪽의 서아프리카 지역에 해당되며 오늘날 그 해안을 기니만(the Gulf of Guinea)이라 부른다.

18세기 지도에는 위로부터 사하라(Zaara), 네그로랜드(negroland), 기니(Guinea)가 표기되어 있다. 네그로랜드나 기니는 같은 뜻이다.  ⓒ 위키백과

18세기 지도에는 위로부터 사하라(Zaara), 네그로랜드(negroland), 기니(Guinea)가 표기되어 있다. 네그로랜드나 기니는 같은 뜻이다. ⓒ 위키백과

기니 지역은 대항해시대에 발견되어 곧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았다.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이 기니 지역을 분할 점유했고, 나중에 분리 독립되어 여러 나라로 나눠졌다. 스페인령 기니는 적도 기니(Equatorial Guinea), 포르투갈령 기니는 기니-비소(Guinea-Bissau), 독일령 기니는 카메룬(Cameroon), 프랑스령 기니는 지금의 기니(Guinea)가 되었다. 나라 이름에 기니가 들어있지는 않지만 서아프리카의 해안을 낀 코트 디부아르, 갬비아. 세네갈, 가나, 라이베리아, 시에라 레온, 토고도 옛 기니 지역에 속한다.

서아프리카 해안이 아닌 대양주에서도 기니라는 지명이 있다. 동쪽은 파푸아 뉴기니(Independent State of Papua New Guinea), 서쪽은 인도네시아로 분할된 뉴기니 섬(New Guinea)은 ‘신(新) 기니’란 뜻이다. 뉴기니 섬은 16세기에 스페인 탐험가가 발견하여 이름을 붙인 것으로, 원주민들이 서아프리카 해안(기니)의 원주민들과 닮았다고 붙였다.

현재 뉴기니 섬은 솔로몬제도, 뉴칼레도니아 등과 함께 멜라네시아(Melanesia)에 속한다. 멜라네시아란 이름은 그리스어로 ‘검다’는 뜻의 멜란(melan-)과 ‘섬’을 뜻하는 네시아(neia)의 합성어다. 이 역시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사는 섬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멜라네시아와 뉴기니 섬은 일맥상통하는 이름이다.

멜라네시아.  ⓒ 위키백과

멜라네시아. ⓒ 위키백과

복잡하긴 해도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기니지만,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기니와 친숙하다. 바로 ‘기니피그(guinea pig, cavy)’때문이다. 기니피그라 하면 ‘기니에서 온 돼지’란 뜻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기니피그는 기니와 아무 관계가 없고 더구나 돼지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기니에서 온 돼지’라 부르는 걸까?

불행히도 이를 설명할 정확한 이론은 없다. 다만 일설에는 아프리카의 기니는 그냥 ‘먼 나라’란 뜻으로 쓰인 적이 있었고, 이 짐승이 새끼 돼지를 닮았기 때문에 ‘기니피그’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기니피그의 학명은 Cavia porcellus(카비아 포르첼루스)로 porcellus는 라틴어로 ‘작은 돼지’를 뜻하고, cavia는 영어로 기니피그를 말하는 cavy(케이비)에서 온 이름이다. 그런데 케이비(cavy)라는 이름은 갈리비(Galibi) 부족이 이 짐승을 부른 이름 cabiai(카비아이)에서 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갈리비족은 지금의 프랑스령 기아나(!)에 살던 원주민이다.

다시 말하면, 남아메리카의 ‘기아나’에서 카비아이라 부르던 짐승을 ‘기니’에서 온 돼지라 부른 것이다. 혹시 유럽인들도 ‘기니’와 ‘기아나’를 헷갈린 것일까? 그런데, 기아나는 어디에 있나?

남아메리카의 기아나 17세기 지도.  ⓒ 위키백과

남아메리카의 기아나 17세기 지도. ⓒ 위키백과

서로 닮은 이름 기니(Guinea)와 기아나(Guiana), 둘 다 Guin-(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하나는 -nea(니아)로, 나머지는 -ana(아나)로 끝난다. 그러니 우리는 물론이고 유럽인들도 헷갈리기 딱 좋은 이름이다. 하지만 ‘기니는 서아프리카, 기아나는 남아메리카의 동북지역’이다.

기니가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사는 땅’이란 뜻이라면, 기아나는 원주민 말로 ‘물이 많은 땅’을 뜻한다. 실제로 기아나 지역에는 아마존, 오리노코, 리오 네그로 강이 흘러든다.

기아나도 대발견의 시대에 유럽인들이 분할 점령했다. 영국령 기아나는 기아나로, 네덜란드령 기아나는 수리남으로, 스페인령 기아나는 현재 베네수엘라 땅으로, 포르투갈령 기아나는 브라질 영토가 되었다. 프랑스령 기아나는 아직도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 남아있고 쿠루(Kourou)에 기아나우주센터 덕분에 제법 유명한 나라가 되었다.

실험 동물로 많이 쓰이는 기니피그.  ⓒ 위키백과

실험동물로 많이 쓰이는 기니피그. ⓒ 위키백과

마지막으로, 모르모트와 기니피그는 무슨 관계일까? 모르모트는 영어로 ‘마못(marmot)’이라 부르는 설치류를 일본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물론 기니피그와는 다른 동물이다.

기니피그는 오래전부터 실험동물로 많이 써왔고, 일본인들은 기니피그를 마못과 혼동한 듯하다. 그래서 인간을 대신해 실험용으로 쓰이는 기니피그를 ‘모르모트(마못)’라 불렀고, 모르모트는 실험동물의 대명사가 되었다. 물론 우리는 일본인들의 착각을 그대로 답습해서 써왔고.

지금도 모르모트라고 말하면 ‘실험 쥐’ 더 나아가 실험 대상이란 뜻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실험 쥐는 기니피그로 써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하고많은 짐승들 중 기니피그를 실험동물로 썼을까? 서양인들이 남아메리카에서 기니피그를 처음 보았을 때 이미 기니피그는 가축으로 길들여져 있었다. 원주민들은 성질이 온순한 기니피그를 길러 고기를 얻었고 약으로 쓰기도 했다. 그래서 유럽인들도 기르기 쉽고 다루기 쉬운 기니피그를 유럽에 데려가 실험동물로 쓰지 않았을까? 물론 최근에는 기니피그 대신 마우스(mouse)나 랫(rat)도 많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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