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알약만 먹으면 운동 효과 낼 수 있다?

[전승민의 미래 의료] 실용화 중인 ‘운동 약물’… 비만, 심혈관 질환 치료 기대

근력이 극도로 쇠약해진 노인, 휠체어나 침대에서 일생을 보내야 하는 신경마비 환자 등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운동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운동을 할 수 없으니 근력과 심혈관계가 더 약해지면서 점점 건강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이미 생겨난 장애를 딛고 건강을 회복하거나, 최소한 유지할 수 있도록 신진대사를 활발히 유지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운동 약물’이 실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인의 가장 큰 적인 ‘비만’과 싸우는데도 큰 무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많다. 비만, 심혈관질환 등 운동 부족으로 생겨날 수 있는 다양한 질병을 정복할 길이 열릴 수 있다.

먹기만 해도 근육, 지구력 모두 늘어나

이 분야 연구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다. 미국 솔크연구소의 로널드 에번스 박사 연구팀은 세계적인 과학저널 셀(Cell)을 통해 ‘특정 약물을 복용하면 운동 효과가 높아지고, 때에 따라서는 운동을 하지 않아도 체력이 늘어나고 힘이 세진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애번스 박사팀은 2004년에 ‘PPAR-delta’라는 단백질이 생물체에서 영양분 섭취, 에너지 생산 등의 과정을 도와 신진대사를 한층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연구진은 연구성과를 응용해 ‘GW1516’이라는 단백질 합성 물질을 만들어 실험용 쥐에게 먹이면서 동시에 운동을 시켰다.

그 결과, 이 합성 물질을 먹이지 않은 쥐보다 77% 더 오랜 시간을 달리고, 68% 더 많은 거리를 달릴 수 있는‘건강한 쥐’로 거듭났다.

실험용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 결과 상당수 약물은 먹기만 해도 운동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심혈관질환 및 비만 등의 치료에 혁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unsplash

또 다른 실험에선 근육의 신진대사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AMPK’라는 단백질을 이용해 ‘AICAR’이라는 합성물을 만들었다. 이 물질의 효과는 놀라웠는데, 이 합성 물질을 먹은 쥐는 전혀 운동을 시키지 않아도 다른 보통 쥐에 비해 23% 더 오래, 44% 더 많이 달릴 수 있었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약물만 먹었는데도 근육이 발달하고 전반적인 체력도 늘어난 것이다.

이런 연구는 인간을 포함한 여러 동물이 약물을 투여하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운동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이 약물의 인체 적용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물질을 운동선수 등이 경기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핑’의 수단으로 사용하다 발각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반도핑기구는 AICAR를 세계적 자전거 대회인 ‘2009 투르 드 프랑스’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11년 1월부터는 세계 반도핑 규약에서 공식적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GW1516 역시 도핑 약물로 구분되어 사용이 금지돼 있다.

이 두가 지 약물은 국내 스포츠계에서도 금지 약물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 물질은 근육 및 심혈관계를 튼튼히 하는 효과가 밝혀지면서 비만 및 심혈관질환 치료제로도 크게 기대를 얻고 있기도 하다.

운동할 때 생겨나는 생체 인자흉내

이런 ‘운동 약물’이 완전히 실용화돼 의료에 적용되려면 철저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 이전에 인체 내 생명유지 현상을 좀 더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운동 전후 혈액 내 단백체, 유전자전달물질(miRNA등) 등의 변화를 명확히 알아내야 약물을 안심하고 의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혈액 내 단백체, 엑소좀, 대사체 정보 분석하고 그 변화를 예측하는 ‘대사체 프로파일링 기술’ 등이 필요하다. 실제 개발과정에선 다양한 동물실험을 통해 효과를 사전에 검정하기 위해 다양한 동물실험을 거쳐야 하므로, 그에 필요한 실험 모델 개발이 필수적이다. 또 약품 개발 과정에서 가상실험에 필요한 ‘세포주’의 개발 역시 선행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도 사람에 따라 정확한 양을 투약하기 위해 검사 과정에서 혈액 내 인자를 검출하는 검사용 키트 등의 개발도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분야 연구성과도 자주 보고되고 있다. 2018년엔 프랑스 툴루즈대 세드릭 드래이 연구팀도 GW1516이나 AICAR 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인체 내 분비 단백질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연구진은 동물이 운동을 할 때 근육에서 혈액으로 분비되는 단백질인 ‘아펠린’을 찾아냈는데, 이를 운동을 시키지 않은 늙은 생쥐 혈액에 주입한 결과 근육량이 증가하고 근육줄기세포가 근육으로 분화하는 능력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물의 몸속에서 분비되는 자연적인 물질이므로 인체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인자를 찾아내 합성한다면, 실제 적용 시 부작용 역시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체활성물질 중 하나인 ‘AICAR’. 체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어 스포츠 선수의 도핑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심혈관계 치료 물질로도 주목받고 있으며 현재는 실험용 약물로서 판매되고 있다. ⓒ peptideswarehouse

10~15년 사이 실용화 예상, 전문의 처방 등 거쳐야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2019년 발표에 따르면 이 같은 ‘운동약물’은 향후 10년 정도면 어느 정도 실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혈액 내 운동효과 인자(유전자, 단백질, 대사물질 등)의 프로파일링을 완료하는 등 관련 기초지식을 쌓는데 약 5년 정도가 필요하며, 이를 응용해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약품 등으로 실용화하는 기술 개발에 추가 5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는 예상된다. 다만 병 의원 등으로 보급되고, 관련 제도 등을 보완해 전 국민이 혜택을 보려면 다시 몇 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할 수 있다.

이 같은 약물이 남용될 경우, 의학적인 부작용만큼이나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우려 생긴다. 인간의 타고난 체력을 극한 이상으로 끌어올릴 여지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투여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지 역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체력을 극한까지 높일 수 있게 되면, 이 같은 약물을 구입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의 차별로 이어질 수 있어 약물의 유통 과정을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생긴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고도비만이나 심혈관질환 환자, 약해진 체력으로 인해 다른 질병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사람, 혹은 강한 체력을 갖고 특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인, 경찰, 구조 대원 등에게 제한적으로 처방할 수 있는, 의학적 기준에 대한 연구 역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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