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연과학 위상 제고에 ‘앞장’

[과학과 기술 인터뷰대담] '2019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 - 장석복 한국과학기술원 특훈교수 인터뷰 대담

<대 담> 장석복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훈교수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과학과기술 편집위원장)
             류준영  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기자(과학과기술 편집위원)
             윤호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학술진흥본부장
장석복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훈교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장석복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훈교수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30초,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잠시 주춤하던 그는 어렵게 손에 쥔 수상 소감문의 마지막 문구를 읽어 내려갔다. “제 아내가 2년 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는데 오늘 같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그런 아쉬움이 남습니다.” 영문을 몰랐던 객석에선 그제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난 7월 4일, 장석복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특훈교수(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장)가 국내 과학기술 분야 최고 권위를 지닌 ‘2019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던 장면이다. ‘과학과기술’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장 교수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질문에 “그냥 끝내는 게 나을까 생각했어요. 너무 개인적인 얘기라서 얘기를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죠”라며 그 순간을 회상했다.

강원도 태백 출신의 탄광 소년, 서울대가 아니라 서울에 있는 대학만 가도 동네 현수막이 붙던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 묵묵히 연구자의 길을 걸으며 끝내 대한민국 최고 과학자로 우뚝 선 그였지만, 본인의 모든 성과를 연구실의 대학원생과 연구원들, 졸업생들에게 돌리며 수상의 결과를 여러 번 우수한 구성원들을 만난 행운 덕분이라고 말했다.

시상식장에서 장 교수는 배우자에 대한 애틋함과 함께 다음과 같은 말로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히 비긴다’라는 김훈 작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오르막을 오를 수 있는 수고로움을 견딜 수 있다’라는 구절도 생각나는 하루입니다.”

장 교수는 탄소-수소 결합 활성화 촉매반응 연구논문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 ‘네이처’ 등에 잇따라 발표해 국내 자연과학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인정받아 올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8월 중순 그를 다시 초청하여 못다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2019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장석복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훈교수는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연구풍토 조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2019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장석복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훈교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최연구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 먼저 부탁드립니다.

장석복 과분한 상을 받게 돼 영광입니다. 많은 분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운이 좋아 동료 선후배분들보다 더 나은 여건에서 연구를 해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여러모로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제가 그나마 이런 평가를 받게 된 연구성과는 저 혼자 만들어 온 것이 아니고 많은 졸업생과 현 구성원들이 협업을 같이해 온 결과물입니다. 그동안 제게 도움을 주시고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과 저희 그룹 멤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류준영 교수님께서 연구하고 계신 분야에 대해 독자들에게 조금 이해하기 쉽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장석복 저희가 반응의 출발 물질로 사용하고자 하는 메탄, 프로판, 벤젠 등은 자연계에 많이 존재하고 있는 탄화수소라는 화합물입니다. 지금까지는 산화시켜 에너지를 제공하는 연료로만 사용되어 왔지만 이를 출발물질로 사용해 적절한 반응을 통해 보다 중요한 분자로 만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탄화수소를 적절한 조건에서 활성화시키고 선택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반응 수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이러한 목적을 위한 촉매반응 시스템을 개발해 오고 있습니다.

윤호식 교수님이 연구하고 계신 분야는 화학계가 풀지 못한 오래된 난제로 꼽힙니다. 화학을 전공하고, 탄소-수소 결합활성화 과정의 메커니즘 규명 연구에 도전하게 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장석복 화학에 처음 흥미를 느끼게 해주신 분은 고등학교 은사님이셨습니다. 이후 운이 좋게도 제가 닮고 싶은 많은 분을 만나게 되면서 저희 흥미가 전공으로 바뀌게 되는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학위 과정 각 단계에서 좋은 스승님들을 만나는 행운도 따랐습니다. 또 연구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동료들도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금 저희 연구팀이 주요 연구제로 삼고 있는 촉매반응 연구는 제가 박사학위 기간 동안 연구했던 분야가 그 기반이 되었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지금의 세부 분야와는 다릅니다만, 가장 도전적이고 파급효과가 클 수 있는 연구를 주제로 생각하였으며, 이에 탄소-수소 결합활성화 촉매반응 개발 및 메커니즘 규명을 지금의 연구 내용으로 삼게 됐습니다.

최연구 특훈교수라는 직함이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할 것 같습니다. 특훈교수란 어떤 직위이고 KAIST에는 몇 분이나 계신지요?

장석복 제가 알기에는 현재 다섯 분 정도 계십니다. 특훈교수는 5년에 한 번 심사를 받습니다. 원칙적으로는 70세까지 본인이 연구비만 있으면 계속 자신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제도로 미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한 제도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60세가 넘으면 현실적으로 연구비를 받기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윤호식 단장님 말씀을 듣고 나니 유룡 교수님, 황규영 교수님, 이상엽 교수님까지 많은 KAIST 특훈교수님께서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셨네요.

최연구 과학자로서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한일 갈등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장석복 일단 부끄러운 마음이 큽니다. 연구자들은 국민 세금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들인데 국민의 성원과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에 아직 머물러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에 대해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은 이미 1차 대전 이후 군함을 건조할 정도였고 우리나라는 마포나루에서 나룻배를 띄우는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KAIST와 같은 과학원을 만들어 연구를 시작한 것이 1973년의 일입니다. 연구자들에게 3년 단위로 연구비를 주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 들어온 이후입니다. 30년이라는 짧은 R&D 역사이지만 이번 수출규제 이슈를 겪으면서 탑다운 방식의 연구시스템과 도전적인 연구의 의욕을 저해하는 평가시스템 전반을 바꿔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호식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도 지금 상황과 비슷하게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위한 집중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였으나 6개월 뒤 사태가 수습되자 흐지부지된 바가 있습니다.

장석복 전국의 많은 대학이 총장 선거 때가 되면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합니다. 연구비를 쪼개서 나눠준다고 해도 막상 연구할 대학원생들이 없는 곳도 있습니다. 반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작 기술이 필요할 때 한국에서 전문가를 찾으면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또 다른 예로 지역에 있는 작은 대학에서도 부교수, 정교수로 승진을 하려면 국제 유명학술지에 적어도 1년에 2편 이상의 논문을 내야 하다 보니 오히려 편법과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이런 식이면 전체 국가경쟁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모두가 이름 있는 저널에 논문을 많이 내는 게 목표나 평가의 기준이 되어선 안 됩니다. 자기만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만들어가려는 노력과 연구 풍토가 조성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류준영 지금 교수님의 후배 연구자들은 어쩌면 장 교수님과는 다른 생각과 철학, 사회 배경 속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52시간제와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요시하죠. 이런 흐름에 따라 연구자 단상도 차츰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후배가 찾아와 장 교수님께 “바람직한 연구자의 모습은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면 어떤 말씀을 들려주고 싶으십니까?

장석복 물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 생활인으로서 삶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연구자가 생활인의 모습으로만 머물러 버린다면 그야말로 월급쟁이밖에 안 됩니다. 연구자는 호기심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 그것에 대한 집중력 등도 갖춰야 합니다. 거기에 생활인의 모습이 더해져야 하는 것이죠. 스스로 균형을 잘 맞춰야 합니다. 평소 학생들에게 학위 기간 동안 장차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라고 강조합니다. 물론 연구의 시작점을 지도교수가 제공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이후의 과정부터는 학생들 본인이 연구를 계획하고 결과를 해석하고 그 이후의 응용까지 제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역량을 키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학위 과정 이후에는 결국 독립적인 연구자로 자신의 연구 경력을 시작하고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연구 후배 연구자 중에 청출어람으로 교수님을 능가하는 제자도 있습니까?

장석복 사실 앞에 인터뷰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고는 했지만, 부끄럽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기존에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는 곳에 비집고 들어가서 겨우 제 영역을 차지한 경우죠. 하지만 후배들에겐 줄곧 이렇게 얘기를 해왔습니다. “너희들의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길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직접 밝힐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스승을 뛰어넘을 것이 분명한 후배들이 몇 명 있습니다.

윤호식 연구자로서 연구철학, 좌우명 등이 있으시다면 소개해주십시오

장석복 ‘서두르지 않고 기본을 중요시하자’입니다. 새로운 촉매반응을 개발하고자 하는 저희 연구 방향 하에서는 메커니즘의 규명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를 위해 세부 단계를 명확히 규명하고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더 인내할 수 있어야 하고 다음의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는 새로운 영감을 지녀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연구영역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과 더불어, 새로운 연구 분야를 창출하려는 시선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논문 수나 발표 저널의 이름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만, 외부가 아닌 저 자신의 기준점을 설정해 연구에 적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윤호식 앞으로 교수님의 연구 분야에서 궁극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목표, 이루고 싶은 연구 성과는 무엇입니까?

장석복 저희 연구실에서 개발된 촉매반응이 논문 발표를 통한 학문적인 진보를 만드는데서 더 나아가 실용적인 응용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는 광경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운이 좋아 다른 연구자분들보다 더 나은 여건에서 연구해 올 수 있었습니다. 매우 송구스럽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 과분한 상을 받는다고 앞으로 저의 연구 방향이 달라지지는 않겠지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제게 남은 연구 활동 기간 동안 학문적으로 계속 정진하여 제가 속한 연구분야에서는 물론이고 국가, 사회에 더 의미 있는 기여를 남기고 싶습니다. 특히, 후배 연구자들이 저보다 더 발전하고 더 뛰어난 연구 결과를 만들어나가는데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 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겠습니다.

최연구 미래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 말씀 부탁드립니다.

장석복 과학자의 시작점은 여러 자연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그 해석에 있어서 기존의 설명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자신이 현재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문과 궁금함을 가지고 그 답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도 과학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면입니다. 새로운 점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바로 과학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서 이러한 것을 볼 수 있으며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재미를 느끼며 상상력을 키우는 것도 당연히 중요합니다.

류준영 시상식에서 발표하신 수상소감문은 직접 다 작성하셨습니까?

장석복 처음엔 연필로 썼다가 나중에 워드로 옮겨서 쳤죠. 저는 예전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긴 했습니다. 연구를 그만두면 다른 길로 글 쓰는 일을 해볼 생각입니다. 글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 작년에 방통대에 입학했습니다. 제가 겪는 경험과 사고를 통해 개인의 욕망만이 채워지는 성취의 방향성에 대한 생각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구 현장에서 기여할 만큼 한 이후에는 다른 길도 가보려 합니다. 저는 수상소감에서도 밝힌 김훈 작가를 좋아해서 그분의 책을 거의 다 읽었습니다. 감성도 있고 인생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을 굉장히 잘보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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