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광합성의 비밀을 품은 남극의 타임 캡슐

[과학기술 넘나들기] (220) 남극대륙에 위치한 담수호인 운터제 호수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는 요즘 같은 여름 휴가철에 이른바 랜선 여행을 떠나서 아쉬움을 달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지구 상 가장 추운 곳을 살펴보는 것은 더위를 식히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남극의 얼음 아래에 위치한 한 민물호수는 남극 대륙에서 대단히 중요한 곳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호수로 꼽힌다. 이곳은 마치 타임캡슐처럼 태곳적 지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생명체의 탄생 및 진화, 그리고 특히 광합성의 기원을 설명해줄 실마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산소는 현재 지구 대기의 21%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금성이나 화성 등의 다른 행성들은 대기 중에 산소가 거의 없다. 물론 지구 역시 처음 탄생했을 당시에는 산소가 거의 없었으나,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과 식물들에 의해 산소가 풍부한 행성으로 바뀐 것이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약 20억 년 전에는 지구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갑자기 만 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대산소 발생 사건(Great oxidation event)이 있었고, 오늘날 광합성에 의해 지구에 해마다 공급되는 산소의 양은 무려 2,600억 톤에 이른다.

남극대륙에 위치한 담수호인 운터제 호수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지구 역사에서 산소의 발생, 즉 최초의 광합성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서 남극의 운터제(Untersee) 호수가 꼽힌다. 이 호수는 이른바 퀸모드랜드(Queen Maud Land)라 불리는 남극 대륙의 구획 중에서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험준한 산과 빙하에 둘러싸여 있다. 호수의 길이는 약 6.5km, 폭은 2.5km로서 남극에서는 매우 큰 담수호이며, 한여름에도 표면의 얼음 두께가 3m에 달할 정도로 일년 내내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1938년 무렵 독일의 남극 탐험대에 의해 발견되면서, 독일어로 해저 또는 수중을 뜻하는 Untersee(운터제) 호수라 명명되었다.

이 호수는 오랜 세월 동안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구의 역사 등을 연구하는 데에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우주생물학의 측면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즉 태양계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서 화성 이외에도 목성의 위성인 타이탄 및 토성의 위성인 엔셀라두스가 꼽힌다. 그런데 타이탄과 엔셀라두스는 얼음으로 뒤덮인 액체의 바다가 있어서 그 환경이 운터제 호수와 상당히 비슷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운터제 호수가 지구 상의 다른 호수들에 비해 메탄의 함량이 높은 점 또한 외계의 원시 생명체 연구에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2008년부터 미항공우주국(NASA) 소속의 우주생물학자들이 중심이 된 국제 탐사대가 본격적으로 운터제 호수의 탐사에 나섰다. 이들은 호수 표면의 얼음에 구멍을 낸 후에 다이빙 장비를 장착하여 물속으로 잠수하여 살펴보았는데, 호수 아래에서 아름답고도 신비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즉 연푸른색으로 뒤덮인 호수의 바닥에는 고깔 모양으로 튀어 올라온 듯한 지형들이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고깔 모양의 지형 중 큰 것은 높이가 약 50cm가량 되었는데, 그 정체는 바로 다름 아닌 미생물 매트, 즉 스트로마톨라이트였다.

고깔 모양의 독특한 지형을 이룬 운터제 호수의 밑바닥 ⓒ Dale Andersen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는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 즉 남세균들이 성장하면서 층을 이룬 퇴적구조물인데, 남세균은 곧 지구 역사상 최초로 광합성을 한 단세포 생물이다. 다만 남세균은 보통 평평한 곳에서 층을 이루기 때문에 고깔 모양을 한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데, 호주 서부에서도 비슷한 고깔 모양의 미생물 매트 화석이 발견되었다.

그곳은 34억 년 전에 바다 밑바닥이었던 지역이었는데, 두 곳의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독특한 고깔 모양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운터제 호수가 태곳적 지구와 동일한 환경이었다는 점을 또다시 입증한 셈이다. 어두운 호수의 밑바닥에 사는 남세균은 최대한 빛을 효율적으로 흡수하기 위해서 위로 자랐을 것이라 설명된다.

또한 운터제 호수의 고깔들을 채취해서 분석해본 결과, 표면이 미세한 실이나 그물과 같은 구조로 덮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생물학자들은 전체적으로 표면을 넓혀서 영양분을 제공하는 물과 접촉하는 면적을 늘리거나, 빛이 약한 곳에서 광합성에 필요한 빛을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런 구조를 갖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생물 매트의 남세균 ⓒ 위키미디어

지구에서 최초로 탄생한 원시생명체들은 뜨거운 곳에서 분출하는 유황화합물 등을 이용하여 생존에 필요한 유기물들을 만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에 남세균들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에서부터 유기물을 생성해내는 혁명적인 방식을 창조하였고, 이는 바로 지구 상에서 최초로 산소가 탄생한 것을 의미한다. 운터제 호수의 환경과 이곳의 남세균 등을 더욱 심층적으로 연구하면, 광합성과 산소 발생의 비밀을 푸는 일에 더욱 다가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구 밖의 생명체 존재를 밝히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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