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동맥이 막힌 의사의 고백

과학서평 / 심장

2019.12.19 10:15 심재율 객원기자

몇 년 전 심장내과의사인 샌디프 자우하르(Sandeep Jauhar)박사는 맨해튼 다운타운에 있는 911 추모공원을 찾아갔다. 10여 년 만이다. 자녀들과 함께 추모공원으로 가는 동안 속은 메스껍고 심장은 쿵쿵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겨드랑이는 축축해졌다.

추모벽에 다다랐을 때 그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속으로 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 들어가는 듯한 환상을 보았다. 심장의 죽음을 뜻하는 그 파동을 보는 듯 했다. 머리가 빙빙 돌았다고 저자는 썼다.

심장에 대한 소설같이 아름다운 책을 여러 권 써서 베스트셀러로 올려놓은 저자의 묘사력은 매우 뛰어나다. 의과대학을 공부할 때, 환자를 치료할 때, 혹은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심장이 정지돼서 사망할 때의 모든 개인적인 체험도 심장을 설명하는 아주 훌륭한 소재로 책 속에 버무려진다.

그중에는 40대 중반에 심장 혈관에 플라크가 생겨 관상동맥이 막히는 자신이 진단을 받으면서 느끼는 당혹감과 공포심도 들어있다.

자우하르의 ‘심장’ (HEART : A HISTORY)은 의학 서적이라기 보다 논픽션에 가깝다. 의사이면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올리버 색스를 생각나게 한다. 과학자가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있음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인턴, 어느 초짜 의사이야기’ (Intern : A Doctor’s Initiation)은 전미 베스트셀러로 오르면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의를 받았다. ‘의사 노릇하기 : 어느 미국의사의 환멸’(Doctored : Disillusionment of an American Physician)은 2014년 최고의 책으로 뉴욕포스트가 선정했다.

911 테러에 우연히 끼어들어    

저자가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했을 때 메스껍고 머리가 빙빙 돈 것은 911 테러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우연히 사건 현장을 지나다가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맡았던 경험 때문이다.

온몸이 불타거나 창자가 튀어나오고, 머리와 사지가 분리된 시신을 즉석에서 처리해야 했던 초짜 의사 시절의 극한의 경험이 10년이 휠씬 지난 다음에도 온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 시절 체험은 의사가 겪어야 할 책임감과 무게를 돌아보게 한다. 27살 때 저자는 이름 모를 한 남자를 알게 된다. 그 남자의 온몸을 절개한 다음 다시 원래 모습으로 조립했다.

저자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를 기점으로 앞으로 저지를 모든 실수는 그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고, 내가 이룰 수 있는 성공은 그에게 바치는 헌사가 될 것이다.”

그 남자는 그가 첫 번째로 해부한 시신의 주인공이었다. 다행히도 그 시신은 저자와 비슷한 인도계 사람이었기에 더욱 친밀감을 느꼈다. 의과대학 1학기가 끝날 즈음이면 전통대로 학생들은 그동안 해부한 시신들에 대한 추모제를 연다.

저자도 자신이 해부한 그 남자의 일생을 나름대로 상상한 이야기를 발표했다. 2차 대전이 끝난 다음 유행한 남아시아인의 이민 물결에 참가한 용기 있는 그 남자는 펀자브의 회색 집과 흰 울타리와 매캐한 배기가스를 뒤로하고 미국 대학에 합격해서 아버지의 격려를 받았을 것 같았다.

생명과 사랑과 진심의 상징인 심장, 그 심장의 여러 모습을 마치 문학작품처럼 다룬 책 ‘심장’은 삶과 인생의 향기가 가득하다.

개인적인 체험과 가족 이야기는 과학도서가 갖기 쉬운 딱딱함을 누그러뜨리는데 대단히 유용하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심장이 멎어 사망하는 사건은 직접 목격자가 되어서 참여했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서로 연결된 심장과 마음    

심장은 정신적인 충격을 주고받기도 한다. 정서적 스트레스는 심장의 부정맥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다. 심장의 부정맥은 정서적 충격도 가져온다. 심장과 마음은 양방향으로 연결된 것이다.

심장에 관한 한  1000년 넘게 서구사회에 군림한 갈레노스는 워낙 성경같이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다. 현대 해부학의 권위자인 윌리엄 하비는 갈레노스의 이론에 반대하는 내용을 확인하고도 발표하기를 무려 13년을 기다렸다. 갈레노스 지지자들의 비판에 직면에서 화형이라도 당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자기 몸을 실험의 도구로 사용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시신을 해부하고, 인공심장을 개발해서 사용하는 과정에서 미국 여론이 들끓는 심장 과학 역사도 설명한다.

의사의 눈과 시인의 심장으로 쓴 글이라는 비평이 잘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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