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과학적 태도의 첫걸음을 돕는 보행기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45

독창적이고 깊은 통찰과 그 결과를 담은 글만을 명저라고 불러야 한다면 벤 골드에이커의 <배드 사이언스>를 명저라고 부르기에는 망설임이 꽤 크다. 골드에이커가 이 책에서 했던 바를 흉내 내어, 다른 이의 생각을 재활용하면, <배드 사이언스>는 훌륭한 ‘지식 소매상점’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과학적인 것’들이 소비되는 양상을 바라보면, 이 책이 널리 알리고 읽어보자고 권유할 좋은 과학책이라고 주저 없이 외치게 된다.

과학적인 것인 양 행세하는 것들의 실체를 폭로한다는 점에서 <배드 사이언스>와 유사한 책들은 국내에도 이미 여럿 출간되었다. 지금은 절판된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많은 이들에게 고전으로 존중받는다. 얼마 전에 소개된 마이클 셔머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들을 믿는가>도 자주 회자된다. 또 도서관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한국 저자의 책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드 사이언스>를 권유하는 이유는 몇 가지 특징들 때문이다. 우선 장점이자, 때로는 단점으로 작용하는 특징은 <배드 사이언스>가 문화와 전통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누구나 관심 갖는 건강 문제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과학이나 과학적 방법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현대 의학과 건강 상품, 그리고 소위 건강 상식에는 일단 시선을 준다.

솔직히 세이건이나 셔머가 자주 거론하는 미국의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들의 사례는 이제는 흥미롭지 않다. 미국과 호주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창조과학이 번성한다지만, 글쎄 얼마나 지구적으로 중요한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반면에 각종 소위 건강상품과 특효성분을 자랑하는 화장품 등등의 소구력은 상대가 안 된다. 게다가 의사인 파워블로거인 저자는 독자의 흥미를 사로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이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하는데, 너무나 재미있는 서술이라, 골드에이커가 거론하는 사례들에 시선이 사로잡혀 건강 관련 엉터리 과학에 관한 책으로만 여겨지기 쉽기 때문이다. 또 그런 시각에서 보면 책의 후반부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배드 사이언스>를 돋보이게 하는 다른 특징은 골드에이커가 일단은 대중의 시각에서 보이는 모습들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세이건과 셔머는 과학을 잘 아는 전문가의 관점에서 읽어낼 수 있는 바들을 해설해 준다. 반면에 골드에이커는 전문가가 아닌 ‘우리들’에게 과학이랍시고 다가오는 바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언론 보도와 광고들의 사례들이 많이 등장한다. 영국의 이야기이지만, 전 세계에 걸친 뉴스 배급망과 다국적 기업이 활동하는 현대이니 만큼, 한국에서도 TV 토크쇼에서 좋은 의도로 알려준답시고 거론된 내용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소비하는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나름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고, 무엇이 미심쩍은 것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그럴 듯하게 과학적으로 보이는 이야기들이 사실은 엉터리라는 반론들을 들으면 반신반의하거나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반응하게 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 관점에서 불평하는 서평들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가치는 개별 일화들의 주장보다는 각자가 나름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공통의 잣대를 적시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그 잣대는 효과의 유무나 주장의 진위를 알아보려면, 같은 조건에서 실시해보고 결과에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비교하는 것이 첫 걸음이라는 단순한 상식이다. 비교 대상에는 반대 주장뿐만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일의 결과도 포함된다.

이것을 과학적 방법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학적 방법을 어떻게 형상화해서 풀어내든, 결국에는 포함되는 요소인 점만은 틀림없다. 이 단순한 잣대로 골드에이커는 다양한 사례들의 허실을 파헤친다. 여러 사례들에 걸쳐 이 단순한 원리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구경하다 보면, 독자 스스로 이 잣대를 활용해볼 수 있는 주변의 사례가 절로 떠오른다.

책이 주로 다루는 의료와 건강 관련 문제들에서는 ‘같은 조건’에 실험자와 피실험자가 비교 대상 중 어느 쪽을 경험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요건(이중맹검, double blind)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실험자와 피실험자 모두 능동적인 주체가 아닌 상황에서는 해보고 비교하기를 응용하는 일이 쉬워진다. 중요한 것은 비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구한말부터 과학기술의 태도라고 거론된 바들 중에는 “경험이 중요하다. 그러니 실제로 되느냐 안 되느냐는 결과를 중시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흐름이 있다. 일견 옳은 것 같지만 여기에는 비교하기가 빠져있다. 얼마 전까지 일각에서는 찬양했고, 일각에서는 어이없어 했던 “해보았더니 되더라!”는 담론도 이 흐름의 말예라고 할 수 있다.

사이비 과학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탁상공론이거나 뜬금없는 헛소리일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경험사례를 열심히 주워섬기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같은 조건인지 아닌지 비교할 생각 없이 성공 경험만 거론하는 것은 주술적 태도에 불과하다. 경험이 의미 있으려면 같은 상황에서 다른 대안의 경험과 비교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하나의 원리로 거의 모든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아내는 방식은 매력적이고, 적절한 원리를 확보했다면 대단히 효과적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거나, 그런 방식을 가능하게 할 적절한 원리를 찾으려는 태도는, 경험들을 비교하기와 함께 소위 ‘근대적임’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문제는 종종 근대가 폭력적으로 우리에게 닥쳐왔듯이, 과학적임과 그렇지 않음을 구별하는 일이 잔혹해 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차마 실명을 거론하지 못하는 국내 저자의 책에서도 그런 성향이 엿 보인다.

반면에 골드에이커는 과학적임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을 모두 싸잡아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들의 주관적 믿음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효과 있음이 입증되는 것들만을 증거에 근거한 것으로 분류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 일지라도 증거에 근거하려는 노력을 훼방 놓지 않는다면 구태여 박멸하려 들지 않는다.

사실 자그마한 노력으로 곁들이는 무탈한 민간요법을 비난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정도는 관심과 사랑을 전하는 의사소통일터이고, 따듯한 관심은 상태를 호전시킨다. 하지만 비교하지 않은 경험을 선전하며 경쟁자들을 밀어내려는 건강식품 판매 제약회사나 화장품회사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독점욕을 자제하는 골드에이커의 여유가 인간의 얼굴을 한 근대인지 아니면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싹의 흔적인지를 논하는 것은 이야기를 너무 크게 확대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경험의 주술과 경험 없는 이성의 허약함을 동시에 피할 수도 있게 하는 단순한 잣대는 의료와 건강의 영역을 넘어 널리 쓸모가 있다. 재미와 함께 그 잣대의 활용법을 익히고, 저자가 의도한바 이상으로 독자를 자유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명작에 가까이 간 대중 과학서임은 틀림없다.





소개도서 : 벤 골드에이커 지음/ 강미경 옮김, <배드 사이언스: 우리를 속이고 주머니를 털어가는 그들의<배드 사이언스: 우리를 속이고 주머니를 털어가는 그들의<배드 사이언스: 우리를 속이고 주머니를 털어가는 그들의<배드 사이언스: 우리를 속이고 주머니를 털어가는 그들의<배드 사이언스: 우리를 속이고 주머니를 털어가는 그들의
             엉터리 과학>, 공존,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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