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과학적 사유를 통해 과학을 뛰어넘다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26

과학(科學)은 분과학문(分科學問)의 줄임말이다. ‘science’가 한자어로 번역되면서 그 단어의 원래 의미인 분과학문(라틴어로 ‘scientia’)의 뜻을 가져온 것이다. 분과학문이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추구하고 획득할 수 있는 지식 중에서 특정 영역이나 이론틀로 한정되거나 분류될 수 있는 지식을 의미한다. 즉, 명상이나 영적 체험을 통해 세계의 본질을 순식간에 파악하거나,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지혜로서의 지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학문의 분류체계에 등장하는 모든 개별 학문은 분과학문이다. 결국 과학의 원래 의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학문으로 지칭하는 거의 모든 영역의 지식탐구 활동을 포함한다.

현재 우리는 과학을 이보다는 훨씬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 즉, 일차적으로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대개는 실험적 방법이나 이보다 확장된 의미의 경험적 방법을 중시하는 연구 분야를 과학으로 총칭하기도 한다. 이런 좁혀진 의미에서 역사학이나 언어학은 과학일 수 없다. 철학은? 많은 과학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는 자신이 발표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나 ‘신학’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역으로 일부 철학자들은 자신이 듣기에 충분한 ‘깊이’가 없다고 판단하는 발표에 대해 지나치게 과학적 분석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현재적 의미에서 개별 학문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을 수행하는 철학적 작업과 과학적 연구는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상정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science’가 한자문화권에 원래 분과학문의 의미로 번역되고 난 후에 서구에서 의미의 변화를 겪었다는 점이다. 물론 사전을 찾아보면 science의 첫 의미는 지금도 여전히 모든 종류의 분과학문을 지칭한다. 하지만 현재 영미권에서도 science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로 경험적 방법으로 자연현상을 탐구하는 자연과학과 인간 및 사회 현상을 탐색하는 사회과학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철학과 과학 사이의 은근한 반목도 정도는 덜하지만 서양에서도 다르진 않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책 <과학과 메타과학>에서 과학은 ‘science’의 원래 의미에 가깝게 이해된다. 물리학자로서 오랜 기간 좁혀진 의미의 과학 연구를 수행하면서 분과학문으로서의 물리학이 세계를 이론화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였던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를 자연 현상 일반에 대한 이론화에 대한 분석으로 확장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1992년에 초판이 출간된 <과학과 메타과학>은 당시 물리학자가 수행한 철학적(장회익 교수의 용어로는 메타과학적) 사유를 담은 책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 활발한 논쟁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이제 초판 출간 20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개정되어 출간된 <과학과 메타과학>은 분과학문적 시각을 뛰어넘어 다양한 분과학문이 어떻게 우리에게 앎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에 대한 구조적 탐색, 즉 과학 이론과 과학 활동 자체에 대한 메타적 탐색을 담고 있다. 20주년 기념 개정판은 초판 발행 이후 장회익 교수가 수행한 그간의 학문적 성숙이 더해지면서 많은 내용이 새롭게 쓰여지고 교체된 진정한 개정판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제1부는 ‘과학과 인식’이라는 제목 하에 자연과학의 연구방법의 특징에서 출발하여 지식의 진화 과정의 일반적 특징을 추출해낸다. 이를 통해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의 이론과학이 갖는 구조적 특징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담겨있다. 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점은 비록 물리학의 이론 구조에서 논의가 출발하기는 하였지만 최종적으로 도달한 분석은 자연현상, 사회현상 모두를 ‘경험적’으로 탐색하는 모든 이론적 활동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려는 현상에서 대상을 규정하고 이를 양태서술을 통해 실태를 규명한 후, 의미기반에 입각하여 현상의 중요한 특징을 상황으로 진술한 다음, 대상계에 대한 의미있는 예측을 얻어내기 위해 대상계의 상태에 대한 동역학적 서술을 얻어내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형식적인 측면은 1970년대 유행했던 스니드나 스테그뮐러의 구조주의적 과학철학 논의와 유사항 측면이 있지만 세계의 존재론적 구조를 우리의 경험적 탐색을 통해 살펴갈 때 유의해야 할 점 등에 대한 인식론적 성찰이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순전히 전문적인 구조주의적 접근과는 차별성을 보인다.

제2부는 이론과학의 구조적 특징에 대한 논의를 생명 현상에 대한 기술로 확장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과학과 메타과학> 초판 출간 이후 후속 연구를 통해 발전시킨 온생명과 단위 생명 개념 등을 활용하여 물질과 생명 사이의 관계 및 우주에서의 인간의 존재론적 위치에 대해 정보 개념을 중심으로 해명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상의 논의가 갖는 가치론적 함의, 특히 인간이 갖는 특별한 행위 능력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치 개념의 탐색을 시도한다.

저자의 논의가 생명이나 가치에 대한 기존 논의와 분명한 차별점을 보이는 부분은 그것이 ‘메타과학적’ 분석이라는 데 있다. 메타과학은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과학적 방법을 채택하면서도 모든 학문 특히 자연과학의 바탕을 그 대상으로 살피며, 이렇게 얻어진 성과들은 샘영과 인간을 비롯한 우리의 모든 관심사를 망라”하는 특징을 갖는다. 결국 저자의 기획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과학에 대한 철학적 탐색과는 다르다.

저자는 넓은 의미의 과학적 방법론을 물리 현상이나 생명 현상 자체를 탐색하는 과정에만 활용하는(즉, 물리학이나 생물학)에 머물지 않고, 그러한 과학 연구 자체를 탐색하는 과정에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문학적 배경을 가진 독자라면 <과학과 메타과학>이 자연과학적 시각을 ‘우리 모든 관심사’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한 과학주의적 태도를 가진 책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섣부른 판단은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오해임이 드러난다. 이 책에는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에 분명 힘입고 있지만(특히, 양자역학 이론이 갖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함의를 다룬 부분), 개별 과학의 시각에 한정되지 않고 여러 경험적, 이론적 도구를 잘 가다듬어 우리가 넓은 의미에서 과학을 하는 방식과 그 결과물에 대한 분석, 그리고 그것이 갖는 함의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어디에서도 그와 유사한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는 아니지만(저자가 여러 인용을 통해 인정하고 있듯이), 그 작업에 활용된 여러 경험적, 이론적 자료들을 뛰어넘는 이해의 폭과 이론적 전망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독창적이다. 국내 과학자가 과학의 본성에 대해 쓴 메타적 글에서 <과학과 메타과학>이 성취한 수준의 통찰력을 보여준 글을 필자는 개인적으로 접한 적이 없다.

저명한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자신이 ‘금속이 왜 전기를 통하는지’를 물리학의 이론을 통해 설명하는 데도 관심이 있지만 도대체 물리학 이론을 사용해서 자연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해명하는 데도 관심이 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금속의 전자이론에 대한 유망한 연구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쿤은 과학철학적 문제에 집중하여 <과학혁명의 구조>를 저술하게 된다.

<과학과 메타과학>의 저자인 장회익 교수도 금속의 에너지 밴드 이론이라는 전형적인 분과학문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다음 과학에 대한 메타과학적 물음들을 오랜 기간 연구하여 얻은 결실을 <과학과 메타과학>으로 발표한 것이다. 과학의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를 넘나드는 과학자들의 깊은 사고의 성찬을 즐기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 연구의 확장된 함의를 즐기기 원하는 독자에게 <과학과 메타과학>은 차분한 즐거움의 시간을 제공해 줄 것이다.





소개도서: 장회익, <과학과 메타과학>, 현암사, 2012

(3056)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