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과학의 순교자들

[김제완의 새로운 과학] 김제완의 과학세상(17)

1960년대에 재미교포 작가 리차드 김이 쓴 ‘순교자’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한때, 베스트셀러여서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생생하다. 소설의 간추린 내용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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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공산당 지배에 들어가면서 기독교인들은 수난을 겪는다. 공산당은 목사님들을 모두 잡아들인다. 잡아들인 목사님들에게 기독교를 부정하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고 끝내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면 처형하겠노라고 총 뿌리를 겨누면서 위협한다.

단 한 분만을 남기고 다른 모든 목사님들은 기독교를 부정하며 사는 길을 택한다. 공산당원들은 이들 목사님들에게 다시 개처럼 기어 다니면서 멍멍 거리며 하느님을 부정하라고 강요하자 다 그렇게 한다.

하지만 공산당원들은 이 개 소리를 내는 목사님들은 그 자리에서 총살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한 한 명의 목사는 죽이지 않고 감옥에 가둔다. 세월이 흘러서 그 목사는 살아남아 자유의 몸이 되지만 개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고도 끝내 목숨을 잃은 목사님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가슴 속에만 담아둔다.

총살 당한 그들은 기독교를 위해 돌아가신 ‘순교자’로서 추앙받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북한 치하에서 선교를 하다가 희생당한 그 분들이 어떤 행동을 하였든 기독교 때문에 희생당하였으니순교자일수도 있고 믿음을 끝내 굽히지 않고 살아 돌아오신 그 분이 진정한 믿음의 교인이기에 말 못할 멸시와 눈초리를 받는 그 분 역시 순교자라고도 할 수 있다.

과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공산주의의 움직일 수 없는 제도 아래 희생된 목사님들처럼 거대한 수레바퀴에 끼어 돌아가는 효율과 경제만능주의 현 사회에서 억울하게 희생되는 과학의 순교자들이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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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 종교처럼 믿음이 그 바탕에 있다. 포교를 위해서 생소한 이역만리에 남아 위험과 부닥치듯이 과학 역시 그렇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레온 레더만이란 물리학자가 있다. 지금은 은퇴하여 과학교육에 이바지하고 있지만, 1988년에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바 있고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과학자이다.

그는 젊었을 때 가속기라는 연구기기의 점검을 위하여 방사선이 나오는 원천을 들여다보다가 왼쪽 눈을 다쳐서 못쓰게 되었지만 미지의 세계에 위험을 무릅쓰고 연구를 계속하여 마침내 노벨상을 수상하고 우주의 신비를 좀 더 파헤치는데 커다란 공로를 세웠다. 그는 과학의 상이군인이요, 어떤 의미에서 ‘순교자’라고 할 수 있다.

퀴리부인 역시 그렇다. 그 분은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모르고 막대한 양의 방사선을 흡수하게 되어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된다.

노벨상을 받은 유명한 분들이 아니고도 다른 뜻에서 과학의 순교자들이 있다.

현대 물리학 연구 가운데 가속기라는 기기를 써서 연구하는 ‘입자물리학’이란 분야가 있다.

가속기란 전자나 양성자를 고주파의 힘으로 가속시켜 원자핵을 때려 파괴함으로서 생성하는 원자핵 속에 들어 가는 기본입자를 생산하는 기기이다. 가속기를 작동하려면 수많은 과학자가 필요하다. 이들은 말없이 위험한 환경에서 평생을 바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사라지는 ‘과학의 순교자’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추운 남극에서 미지의 물질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이름 모를 과학자들이 자기의 믿음 하나 때문에 몸을 던져 일하고 있다.333123

그뿐이겠는가! 이름 모를 병의 원인을 캐내려다가 자기 자신이 그 병에 걸려서 죽는 의사들, 조류독감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하여 연구하다가 돌아가신 생명 과학자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과학의 순교자’들이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학에서 유독 물질을 많이 다룬 화학과 교수들의 평균 수명이 짧은 것은 그런 맥락이 아닌지 근거 없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과학적 가치를 학술지 논문 편수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적 가치를 오직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 편수로 마치 쇠고기를 근으로 달아서 가격을 매기 듯 평가하는 습성이 만연하고 있다.

자기의 믿는 바를 탐구하기 위하여 새로운 검출기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하여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려는 과학자의 경우 개발하는 동안 소위 말하는 SCI의 논문편수가 적다는 이유로서 연구비가 중단된다. 자연의 신비를 파헤치고 밝혀내려는 이러한 과학자들이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과학의 순교자’들이다.

리차드 김의 소설 ‘순교자’에서 믿음을 끝까지 지켰으나 세상에는 배신자로서 인식되는 그 분이야 말로 진정한 ‘순교자’가 아닐까. 누가 이를 부정하면서 죽은 목사들만이 순교자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과학이 믿음을 잃고 시류를 따라 많은 논문을 쓰고 잘 나가는 학술지인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계량적인 지수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믿음이 없는 사회에서는 큰 뜻을 품은 젊은 인재들을 과학의 순교자로 만들고 있다. 말없이 좌절하는 젊은 과학인 가운데는 아인슈타인이 있을 수도 있고 노벨수상자가 될 사람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은 ‘순교자’로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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