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사회적 역할을 논하다

[2019 우수과학도서] 2019 우수과학도서- 사람의 자리

사람의 자리(과학의 마음에 닿다) ⓒ 이음

2017년 11월, 제주의 한 공장 현장실습생이었던 특성화고 3학년 이민호 씨는 혼자 일하다가 제품 적재기 프레스에 눌리는 사고를 당해 숨졌다. 그가 관리자에게 보낸 “한 명 더 부탁드립니다”라는 메시지는 노동 현장의 비정함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회자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이 사건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 한국 사회의 비극을 본다.

이 씨의 메시지를 로봇과 자동 기계 시스템 속 무참하게 좁아진 사람의 자리에서 터져 나온 비명으로 듣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누구의 책임인가? 메시지를 무시한 관리자의 책임인가, 인력을 대폭 줄인 공장주의 책임인가, 현장을 관리·감독해야 했던 정부기관의 책임인가?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자본가를 비난할 때 저자는 낮지만 무겁게, 그리고 다르게 묻는다. “과학은 이런 비극으로부터 자유로운가”라고 말이다.

아무나의 과학에서 누군가의 과학으로

과학은 무엇이 되어야 하고, 어디에 있어야 하고, 누구의 편이어야 하는가.

여기에서의 ‘과학’은 자연과학과 응용과학, 공학 등의 학문 분야인 동시에 이들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저자 자신은 과학계의 ‘언저리’에서 과학과 사회의 접점을 꾸준히 탐사해 왔다. 그 접점은 세월호 참사 특별 조사와 촛불 혁명 현장이었고, 정부가 새로 발표한 과학정책이었으며, 자율주행 모터쇼나 로봇이 등장하는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저자가 가장 주의 깊게 들여다본 것은 사회적 참사다.

사람과 공동체를 다시 살리는 세월호학을 위하여

저자에게는 희생자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작업이 중요했다. 각각이 귀중한 생명이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었던 구체적 존재들이 왜 과학의 대상이 되지 못했는지를 아프게 되묻기 위해서다. 저자의 이런 관점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 외부 집필진 활동 경험을 통해 쓴 일련의 글(5장 세월호학을 위하여)에서 뚜렷이 드러 난다.

희생자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에 대한 글 ‘동수 아빠의 과학’에서 저자는 “자식을 앗아간 배를 1년 동안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과학자도 연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수 아빠 말고는 그런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준형이 아빠’에게는 “한 개의 ‘설’과 한 개의 ‘안’을 같이 읽고 해설해 줄 과학자, 무엇이든 믿고 물어볼 수 있는 과학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들을 대변해 쓴 보고서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담겼다. “슬프게도 이 보고서를 들고 4년 전 그날로 돌아가 세월호의 침몰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배가 출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중략) 이것이 세월호 가족들이 싸워서 만들 어낸 소중한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나아가 저자는 ‘세월호학’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이는 재난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인간과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연구를 아우르는 학문이다.

과학과 사회의 중간지대를 넓힌다는 것

저자는 과학자 집단에게 ‘시민’의 정체성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진리의 영역이며 누구의 편도 아닌 ‘사실’(fact)의 편이라고 우리는 배웠다. 하지만 ‘사실’은 자료로 뒷받침되어 생산되며, 이 과정에는 시간과 돈과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 그래서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필요한 사실이 쉽고 빠르게 만들어진다는 점은 종종 잊힌다.

현시대의 과학이 주는 기쁨, 기술이 주는 편리는 공평하지 않다. 그러므로 과학자가 믿을만한 과학적 사실로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공론장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이해에 직면해야 한다.

이를테면 ‘현실의 비루함에 발을 담근 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학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최근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등 몇몇 과학자들이 주창하기 시작한 교양으로서의 과학에 기대를 건다.

이는 이 사회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분별하고, 그것을 어떻게 성취할지 더 잘 결정하는 도구로 과학적 지식과 태도를 쓰자는 제안이다.

과학과 사회의 접점으로부터, 과학적인 것이 정치의 근거이자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중간지대를 넓혀가는, 자신과 같은 ‘미드필더’의 층이 더 두터워지기를 저자는 바란다.

이는 과학의 의의와 가치를 되살리는 방향이기도 하다. 저자는 과학의 출발점이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알아내고 마련하는 의지와 행위였음을 강조한다.

정부가 미세먼지 문제 대책으로 제시한 인공강우 실험처럼 신기루 같은 ‘해결사’로 소환되곤 하는 과학의 본래 역할을 회복하는 것은, 오늘날 극심한 환경 및 사회 문제에 대한 근본적 진단과 처방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는, 시민에게는 다른 과학을 상상할 권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과학자들에게는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스스로 상상하고 설계하고 실험하고 실현하는 숫자와 명령어의 집합이 이 사회의 온도와 결을 어떻게 바꾸어 놓고 있는지에 대한, 과학이 우리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궁리하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실감 말이다.

이는 아마 과학자 자신도 시공간을 초월한 진리를 다루는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으로부터 가능할지 모른다.

저자는 자신이 가르치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동료 과학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는다. 그들이 들려준 대답 중 하나는 “과학자 여러분, 우리 포기하지 맙시다”였다. 낯설었지만 울림이 있는 그 말이 어쩌면 이 책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바로 그것, ‘희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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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이원지 2020년 4월 10일11:03 오후

    오 재미있겠네요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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