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과학기술은 기록을 견고하게 만든다

[‘0’에 과학기술을 더하다] (8) 기록에 과학기술을 더하다

코로나19로 여행 자제가 권고되면서, SNS을 통해 소위 ‘추억 소환’을 하는 누리꾼들이 늘고 있다. ‘추억 소환’이란 자유롭게 여행하던 코로나 이전의 여행 사진, 사회적 거리두기 이전의 파티·모임 사진, 자주 만나기 어려워진 그리운 사람들의 사진을 통해 과거를 추억하는 행위다.

과거의 순간들이 사진과 동영상 속에 저장되어 있으니, 언제든 꺼내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은 ‘추억 소환’을 놀이로 즐기는 사람들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또 생각해 보면 ‘추억 소환’이 비단 최근에 생겨난 놀이 트렌드라고 할 수는 없다. 가끔 꺼내보는 일기장, 편지, 심지어 아주 작은 메모도 특정한 순간의 기록이며, 특정한 정념의 촉매가 되기 때문이다.

좀 더 객관화시켜 생각해 보면, 기록은 한 사회의 경험이나 지식에 관한 유형 증거이다. 따라서 기록은 특정한 맥락에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으므로, 과거와 현재, 또 미래에 연결돼 지속적으로 이용(정보소환)된다.

이렇듯 기록은 저장 매체의 경중과는 무관하게 보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개인의 사적인 기록은 개인의 역사로서 가치 있고, 공공의 기록은 세대를 아우르는 역사로서 가치 있다.

따라서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그렇다면 기록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록은 보존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다. Ⓒ 게티이미지뱅크

기록의 ‘0’, 옛날이야기는 기록에서 시작

기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도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굴 벽화의 사례처럼 문자 시대 이전부터 인류는 상형문자나 그림으로 기억의 흔적을 남겼고, 특정한 순간을 기록했다.

사람들의 기록에 대한 욕망은 문자를 탄생시키는 동력이 됐다. 힘들여서 바위에 새기지 않아도 되고, 공통의 문자를 공유하고 있다면 해독의 오류도 줄어들었으며, 관리와 이동이 훨씬 수월해졌다. 따라서 기록은 기록 매체, 기록 관리와 관리 방법의 발달을 견인한다.

물론 이때의 기록과 기록의 관리 방법이 현대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기록이 증가하면서 수메르인은 기록을 전용 상자에 수납하고 주제별로 분류하는 이른바 ‘기록 관리’ 형태의 체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도 문명권의 패다라,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점토판, 이집트의 파피루스, 지중해의 양피지, 중국의 갑골문 등 기록 매체가 발달하기 시작하여, 기원후 100년 경에는 종이가 발명되어 기록 매체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인쇄에 필요한 종이, 먹물, 인쇄술에 이르기까지 소위 ‘기록 인프라’가 발달한 나라다. 8세기 중엽에는 현존하는 최초의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을 찍어냈고, 13세기에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이용해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인쇄했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 이미 ‘가각고’라는 기록 보존 전문기관이 있었을 만큼 기록 관리도 선진적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차례의 국난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기록이 잘 보존되지 못해, 현재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훈민정음해례본을 통해 한글은 우수성과 독창성, 균형미를 지닌 과학적 문자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국가기록원

기록의 발달은 과학기술의 발달

기록의 ‘0’에서 보듯이 기록의 발달은 결국 과학기술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한다. 기록 언어의 발명, 기록 매체의 발달, 인쇄술의 발달, 관리 체계 등 모두 과학기술의 공이 크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 급성장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부터는 ‘디지털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다양한 유형의 기록물들이 저장되고, 더 나아가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디지털 아카이브의 구축 목적은 기록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공유와 활용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 있기 때문에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관련 기관들은 이 방향성을 견지하고자 노력한다.

사실 디지털 기술 이전, 아카이브는 과거의 기록물을 보존하는 장소이자 기록 그 자체로서 보존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힘을 얻은 기록물들은 단순히 수집, 보존, 관리의 테두리를 벗어나 학문적 연구, 전시, 콘텐츠 개발 등 활용의 소스로서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된 것.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통합형 아카이브 기관은 국가기록원이다. 다양한 주제의 기록정보 콘텐츠를 기록물의 특성, 주제, 시대를 기준으로 정리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게 구축해 놓았다. 현재는 테마 콘텐츠, 시리즈 콘텐츠, 교육 콘텐츠, 컬렉션, 전시 콘텐츠 등 5종류로 분류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록물의 대표 매체로 인식하는 것은 사진이다. 사진기록물 역시 일반인들이 다양한 목적에 맞게 접근하기 쉽도록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해 놓은 곳이 많다. 대표적으로 서울사진아카이브는 서울시가 보유하고 있는 1950~80년의 사진기록물 아카이브다. 주로 시기, 주제, 지역을 기준으로 분류하되, 사진의 고유 정보(생산 시기, 지역, 키워드, 저작권)를 메타정보로 보유하여 해시 태그를 통해 관련 사진들과 연결하는 이용자 편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자칫 기록물의 목록에서 놓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소리’이다. 소리는 유형의 자원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까지 전달하기 위해서는 수집, 기록, 보존하는 아카이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소리 자원과 구술 기록을 디지털화하여 아카이브를 구축한 대표적인 사례는 소리아카이브가 있다.

앞으로도 우리의 삶은 수많은 기억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일부는 쉽게 잊히겠지만, 특정한 맥락의 장면, 소리, 정보 등은 매체에 기록돼 기억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과학기술은 계속해서 우리의 기억과 기록을 견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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