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산화수소로 움직이는 ‘발터 U보트’

[밀리터리 과학상식] 재래식 잠수함의 성능 한계 넘어서

발터가 만든 실험용 잠수함 U-1406 Ⓒ 위키피디아

지금 봐도 놀라운 다양한 첨단 병기들을 구상해냈던 히틀러의 나치 독일. 그러나 그 첨단 병기들 중 상당수는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반대로 매우 현실성이 있어서, 빠른 속도로 많이 양산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인류에게 다행이었던 독일의 첨단 병기도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발터 U보트(잠수함)다.

과산화수소를 이용한 공기 불요 추진 체계

발터라는 이름은 이걸 설계한 독일의 공학자 헬무트 발터(Hellmuth Walter) 교수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00년생으로 베를린 공과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발터는 1933년 킬의 게르마니아베르프트 조선소에서 새로운 가스 터빈 엔진을 연구하던 중, 과산화수소와 디젤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폐쇄회로 추진 체계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그 원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이산화망간 촉매에 과산화수소를 분사하면 고온 고압의 수증기와 산소로 분해된다. 이때 나온 산소에 디젤유를 분사하여 연소를 시키고 이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 터빈과 스크루 프로펠러를 돌려 잠수함을 구동시키는 것이다.

이 기관은 구조가 복잡하고 만들기가 까다롭다. 그리고 과산화수소는 가연성이 매우 높아 취급에 주의를 요한다. 그러나 기존 잠수함의 추진체계에 비해 엄청난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기존 잠수함은 부상 시 디젤 엔진을 사용하여 항해했다. 잠항 시 공기를 사용하는 디젤 엔진은 쓸 수 없으므로 배터리로 전기 모터를 돌려 항해한다. 그러나 이 배터리 역시 오래 쓰면 고갈되므로, 배터리 고갈 시에는 부상하여 다시 디젤 엔진을 돌려 항해하고, 그 힘으로 배터리 또한 재충전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디젤 엔진과 전기 모터라는 두 가지 체계를 갖추고 있으므로 공간과 중량의 낭비가 컸다. 또한 전기 모터는 디젤 엔진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모자라므로 잠항 시 항해 성능(속도와 항속거리)이 미약했다.

반면 발터가 개발한 과산화수소 폐쇄회로 추진 체계는 공간 및 중량 면에서 훨씬 작았다. 그리고 작동에 외부 공기가 필요 없으므로 잠항 시에도 부상 시와 똑같은 수준의 동력을 쓸 수 있었다. 배터리가 없으므로 위험하게 부상해서 배터리를 충전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무려 1934년에 이 추진 체계를 사용하는 300톤 급 잠수함의 설계안을 독일 해군 총사령부에 제출했다. 이 잠수함은 무려 부상 시 26노트(1노트=시속 1.852km), 잠항 시 30노트의 최고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항속거리는 부상 시 15노트 속도에서 2500해리(1해리=1.852km), 잠항 시 같은 속도에서 500해리에 달했다. 반면 당시 독일 해군이 사용하던 IIA급 U보트의 성능은 부상 시 최고 속도 11노트, 잠항 시 최고 속도 7노트에 불과했다.

개발 속도 빨랐으면 역사가 바꿨을 수도

당시 독일 해군은 이 설계가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반려했다. 그러나 발터는 설계를 다듬어 1937년 다시 해군에 제출했다. 당시 잠수함 훈련전단장을 맡고 있던 카를 되니츠 제독은 이 설계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고, 이를 상부에 전달했다. 그리하여 이 기관을 탑재한 실험함 V-80의 건조 계약이 1939년 체결되고, V-80은 이듬해 4월 14일에 진수되었다. 발터가 직접 탑승한 상태로 이루어진 실험에서 V-80은 잠항 시 23노트를 기록했다. 당시 세계에서 제일 빠른 잠수함의 잠항 시 속도를 2배 이상 능가하는 수치였다.

독일 해군 총사령부도 이 성능에 놀랐다. 그러나 이미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불이 지펴진 상태였다. 되니츠 제독은 잠수함이 300척은 있어야 영국을 굴복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개전 당시 독일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은 57척밖에 없었다. 하나라도 더 많은 잠수함을 빨리 만들어야 했다. 새 잠수함을 위해 건조 라인을 뜯어고칠 여유는 없었다.

그래도 발터는 독일 해군으로부터 건조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 소수나마 발터 U보트를 건조해내었다. 연구개발 목적의 실험함인 XVIIA급과 XVIIB급이 각각 4척과 3척 건조되어 무려 25노트의 잠항 시 속도를 냈다. 본격 전투용 1475톤급 XVIII급도 2척 건조되었으나 건조 중이던 1944년 주문이 취소되는 바람에 해체되었다. 그러나 이 급의 선체 설계를 바탕으로, 배터리 출력이 훨씬 강화된 재래식 추진기관을 실어 완성된 XXI급은 무려 17노트의 잠항 시 속도를 자랑했다.

발터 U보트 중 실전에 투입된 배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독일 해군은 제공권과 제해권이 사라진 상태에서 재래식 추진 체계를 갖춘 U보트만으로도 영국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 괴멸 직전까지 몰고 갔다. 되니츠 제독은 발터 U보트의 실전 배치가 2년만 더 빨랐더라면 전황은 상당히 달라졌을 거라고 회고했다. 또한 발터의 추진 체계는 오늘날 재래식 잠수함의 항해 성능 향상을 위해 실리는 AIP(공기 불요 추진 체계)의 모태가 되었다.

그 외에도 발터는 Me163, Ba349 등의 독일 로켓 전투기의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종전 후 발터는 전쟁 포로가 되어 영국으로 압송, 영국을 위한 군사 과학 기술 개발에 임하게 된다. 그는 전쟁 중 자침 시켰던 자신의 XVIIB급 U보트 U-1407을 영국의 도움을 받아 인양해 복원했다. 영국 해군은 이 배에 ‘HMS 미티어라이트’라는 새 이름을 붙여 실험용으로 사용했다. 이 배의 성능에 감명받은 영국은 연구를 계속했다. 발터 추진 체계를 발전시킨 AIP를 단 잠수함 2척을 더 건조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원자력 잠수함 개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말았다.

1948년 석방되어 독일로 귀국한 그는 1950년 미국으로 이주, 1967년에는 발터 추진 체계를 탑재한 잠수함 ‘스틴트’호를 건조하기도 했다. 발터는 1980년 타계했다.

현재 기념함으로 남아 있는 XXI급 잠수함. 발터의 설계를 일부 이용해,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17노트의 잠항 시 속도를 냈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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