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과기처, 독립된 행정부처로 첫 발

[되돌아본 과학기술 50년] 과학기술 50년 (4) 과기처 설립 막전막후

1967년 과학기술처의 설립은 한국 과학기술사에 새로운 한 획을 긋는 전환점이 됐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가 과학기술 정책을 펴기 위한 독립된 중앙행정부처를 갖게 된 것이다. 이후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행정은 다른 국가 정책의 일부분의 역할을 벗어나 과학기술을 중요 국가 의제로 올려 놓는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의 독립된 중앙행정부서를 갖고 있던 나라는 선진국에서도 손꼽을 정도였고, 개발도상국에서는 한국이 유일했다. 비록 경제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한 하부 체제로서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했지만 당시 국가 발전 계획의 굳은 의지의 발로라고 평가할 수 있다.

과학행정부처, 개발도상국에서는 한국이 유일

과학기술 업무를 모두 관장했던 독립된 중앙행정기관으로서 과기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과학기술 관련 국가 계획의 종합과 조정을 담당하며, 관련 분야의 기술 협력 및 연구개발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게 됐다.

1967년 4월 21일 개청한 과학기술처는 당시 서울 정동 원자력원 청사에 자리를 잡았다. Ⓒ 국가기록원

1967년 4월 21일 개청한 과학기술처는 당시 서울 정동 원자력원 청사에 자리를 잡았다. Ⓒ 국가기록원

한국의 과학기술 행정은 8·15 해방 이후 미군정청 문교부의 과학교육국, 이승만 정부 시절의 문교부 기술교육국, 5‧16 이후 군사 정부 시절 담당 행정부서의 폐지 뒤 3공화국 들어서 경제기획원이 등장하면서 1962년 6월부터 기술관리국이 생겨 명맥을 유지하다가 비로소 1967년 독립 중앙행정부처로 결실을 맺었다. 과학기술계가 해방 이후부터 줄곧 지녀온 숙원을 이룬 것이다.

정부는 과학기술처 출범 다음해부터 매년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지정하고 국민의 과학화를 촉진하기 위한 과학문화 확산 활동도 펼쳤다.

부총리급 ‘원’에서 ‘처’로 결정

한미 정상 간의 합의로 1966년 2월 KIST가 설립되면서 국내 언론과 과학기술계에서는 과학기술행정 및 지원체계, 과학기술 인력 양성 문제, 연구 환경 등에 대해 많은 문제를 제기했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KIST가 설립된 지 3개월만인 1966년 5월19일 발명의 날을 기해 제1회 전국과학기술자 대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과학기술의 진흥을 위한 대정부 건의안이 채택되고, 이 때의 결의에 따라 그해 9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창립된다. 과총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 행정 총괄기구의 설치를 대통령에게 건의한다. 이 건의는 당시 정권의 경제개발 정책과 공통분모를 찾으면서 다음해 과기처로 귀결된다.

한편으로 이런 흐름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제 ‘제대로 된 과학기술연구소’(KIST)를 갖게 되었으니 이를 관리할 과학기술진흥 정부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에 따라 선진 각국의 과학기술 부처 실태를 조사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경제기획원과 함께 과학기술원을 투 톱 체제로 만들자는 방안을 갖고 있던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김기형이 미국과 유럽 시찰을 다녀와 보고서를 제출했다. 청와대 경제담당 비서관 신동식도 관련 자료를 조사해서 보고했다.

구체적인 과학기술 전담부처 설치 작업은 1967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이 문교부를 연두 순시하는 자리에서의 지시로 시작됐다. 당시 경제기획원은 자체 논의를 거쳐 ‘과학기술원(가칭)’ 기구안을 작성했다. 과학기술을 정책적으로 진흥하려면 부총리 수준의 권위가 필요하기 때문에 ‘원’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과기처 개청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국가기록원

과기처 개청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국가기록원

그러나 이 안에 대해 행정부 내 논란이 일고 반대가 심했다. 박 대통령은 ‘과학기술부’를 제안했으나 ‘부’로 만들 경우 과학기술 종합조정권이 없어진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 ‘과학기술처’ 체제로 최종 결정됐다.

제6대 대통령선거를 10여 일 앞둔 1967년 4월 21일 과기처는 문을 열었고, 과학기술계의 기대처럼 부총리급 기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각료급 부처로서 출발하게 됐다.

과기처 설립 후 시행된 과학기술 행정

과기처는 발족하자마자 행정의 바탕이 되는 법령 제정 등 기초작업을 시작했다. 그해 1월 제정된 ‘과학기술진흥법’의 시행령을 비롯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육성법’(67년 3월 시행), ‘기술사법’, ‘직업훈련법’(이상 1967년), ‘한국과학원법’(1970년), ‘특정연구기관육성법’, ‘국가기술자격법’(이상 1973년)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주요 법률을 정비했다.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법 체제의 정비가 두드러진다.

또 과학기술 장기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과학기술개발 장기종합계획’(1967~1986년)을 수립해 계획을 시행했다.

초대 과기처 장관에는 경제과학심의회 위원인 김기형 박사가 임명되었다. 미국의 한 전자업체에서 일하다 1965년 한미 정상회담 때 리셉션에서 박 대통령을 만난 김 장관은 1년 뒤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다니던 회사에 3개월 휴직계를 내고 귀국했다가 국내에 자리잡게 됐다. 그는 당시 전자 및 요업 분야에서 특허를 40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지며 스타 과학자로 부상한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최우선 과제였던 KIST를 정상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기 위해 힘을 쏟았다. 김 장관은 스스로 재임 중 가장 큰 업적을 KIST 건설이라고 여러 차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KIST 초대 소장으로 최형섭이 연구소와 직간접적인 내외의 이끌었다면 김 장관은 정부에서 KIST의 안착을 도왔다. 자체 건물이 없던 KIST는 설립된지 3년 8개월 만인 1969년 10월에 가서야 연구소 건물을 준공하고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들어갔다.

과기처가 설립된 다음해인 1968년 제1회 과학의 날 행사에 참석한 김기형 초대 장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국가기록원

과기처가 설립된 다음해인 1968년 제1회 과학의 날 행사에 참석한 김기형 초대 장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국가기록원

그의 재직 시에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새로운 이공계 대학원인 과학원 설립 작업을 추진하여 1971년 홍릉에 한국과학원(KAIS, 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개교했다. 과학기술기금의 조성도 시작되었고, 1967년 12월 한국과학기술후원회가 설립되었다. 설립자는 대통령으로 했다.

1971년 6월에는 원자력연구소 소장과 KIST의 초대 소장을 역임한 최형섭이 제 2대 장관이 되면서 과기처가 중심이 되어 대덕 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정부의 본격적인 과학정책이 추진되게 된다.

과학기술처는 당시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기조였던 경제성장을 위한 과학기술 육성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고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직제

3공화국 이후 5공화국과 6공화국에 들어서서 과학기술 정책은 침체된 국면을 보였다. 예를 들면 5공화국 시절에는 연구자들의 내부 필요에 의한 자발적 요구가 아니라 정치적 물리력에 의한 연구소의 통폐합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 대통령의 과학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3공 시절 과학기술정책 담당 제2 경제수석이 경제비서관(국장급)으로 격하됐다. 6공화국에 들어와서는 이마저 아예 담당 직제를 폐지했다.

이 같이 대통령의 인식 여하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정책 담당 최고 직책이 좌우됐다는 사실은 일관된 정책 수립 자체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점을 의미한다. (김동현 최연홍, 한국과학기술정책의 형성과정-역사적 조명과 향후 전망)

 과학기술계 자율성과 정부 개입, 앞으로 과제

그 뒤 과기처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1998년 과학기술부로 격상 개편됐다. 노무현 정부 때 과학기술부 부총리와 과학기술혁신본부 체계로 발전했고, 이명박 정부 때 교육과학기술부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체계를 거쳐 다시 현재는 미래창조과학부 체계로 바뀌었다.

과학기술 정책의 지속성과 일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부 조직의 안정성 면에서도 국내 사정은 매우 열악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계의 자율성과 정부 개입의 영역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마련에 대해서도 국가적 합의가 함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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