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각과 초색채 감각

[과학기술 넘나들기] 인간의 색 지각 특성(3)

몇 년 전 웹툰을 원작으로 한 ‘냄새를 보는 소녀’라는 지상파 드라마가 인기리에 상영된 적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냄새를 시각적인 입자로 볼 수 있는데, 이런 독특한 능력을 통해 초보 경찰과 함께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강력범죄와 살인 사건 등까지 두루 해결해 나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드라마의 주인공과 똑같은 놀라운 능력을 지닌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어렵겠지만, 두 가지 감각이 결합하여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공감각(共感覺; Synesthesia)의 일종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공감각은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표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공감각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공감각 중에서도 소리를 들으면 색상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색청(色聽; Colored hearing)이라 한다. 음파가 귀를 자극하면 본래의 청각을 느낄 뿐 아니라, 특정의 색채감각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색청을 실제로 느끼는 사람들은 그 정도나 방식은 상당히 다양하다고 한다.

대체로 저음은 어두운색으로, 고음은 밝은색으로 느끼는 것처럼 음파의 진동수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지만, 각각의 음계에 대응하여 색채가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소리의 톤이나 악기의 종류에 따라 색채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트롬본의 소리는 빨간색 등으로 악기에 따라 색상을 달리 느끼는 색청도 있다 ⓒ 위키미디어

색청을 느끼는 사람 중에는 절대 음감을 지니고 있어서 음악가나 작곡가로 활동하는 이도 있다. 색청의 공감각을 지닌 한 음악가는 모든 소리가 색과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공간 내에서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도(Do)를 빨강, 레(Re)를 파랑, 미(Mi)를 노랑과 같은 식으로 음표를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작곡할 때에도 음계를 생각하는 대신에 특정 색상을 먼저 떠올린다고 한다.

색청과 같은 공감각을 조금이라도 지닌 사람들이 인구의 1%에서 4% 정도 된다고도 하는데, 그 정확한 원인과 발현 메커니즘 등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뇌과학과 인지과학에서 공감각은 시각과 청각 등의 반응적 미분화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 있으며, 공감각의 소유자들은 일반인들보다 관련 신경세포가 더욱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추정해 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공감각의 원인이 특정의 변이 유전자에 있으며, 이러한 특정 유전자에 의해 공감각의 능력이 더욱 활성화된다고 한다.

공감각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난 색 지각 능력, 즉 슈퍼비전(Super vision)의 초색채감각을 보유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이른바 사색형 색각 보유자라고도 하는데, 일반인이 지니고 있는 빨강, 파랑, 녹색이라는 빛의 삼원색에 기반한 세 가지 색각 요소에 더하여 원추세포에 색각 요소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색채를 감지하는 원추세포의 구조 ⓒ Ivo Kruusamägi

사색형 색각 보유자들은 일반인들이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색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능력을 지닌 어떤 여성 화가는 보통 녹색(Green)이라 일컫는 색상을 수십, 수백 가지 이상으로 분류하여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색형 색각 역시 유전자의 차이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떤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약 12% 정도가 이런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색형 색각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원추세포의 네 번째 색각 요소가 실제로 활성화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슈퍼비전의 초색채감각을 지닌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즉 눈에 있는 네 개의 색각 수용체가 받아들이는 정보를 ‘뇌’가 처리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결정적인 관건이다.

이처럼 공감각이나 초색채감각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뇌의 작용은 인간의 색채감각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인데, 인종과 민족 등에 따른 언어의 차이 역시 색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언어의 종류에 따라 분류되는 색스펙트럼 또한 차이가 있는데, 색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고 풍부한 언어가 있는가 하면, 색을 구분하여 지칭하는 단어가 그다지 충분하지 못한 언어도 있다.

언어에 따라서 세 가지 이상의 색을 한 단어로 뭉뚱그려서 지칭하는 경우도 있고, 대체로 파랑(Blue)과 녹색(Green)을 합쳐서 부르는 언어도 많다고 한다. 우리말에서도 마찬가지로 ‘푸르다’는 말은 두 가지 색을 다 같이 지칭하는데, 즉 ‘푸른 하늘’에서는 파란색, ‘푸른 잔디밭’에서는 녹색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반면에 러시아어에서는 파란색(Blue)에 해당하는 단어가 둘로 나뉘는데, 연한 파랑은 ‘голубой(골루보이)’, 짙은 파랑은 ‘синий(시니)’로 각각 다르게 지칭한다.

러시아 사람들은 다른나라 사람들보다 특히 파란색 계열의 색채를 더욱 잘 구분한다고 한다. ⓒ Dmitry Makeev

러시아의 한 교수는 러시아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색상 특히 파란색 계열을 더 잘 구분하는지 흥미로운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색상 구분 게임에서 러시아를 모국어로 쓰는 자국민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항상 압도하였다고 한다. 즉 사람이 색상을 보는 데에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마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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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이창우 2021년 5월 9일9:27 오후

    LSD 하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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