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공간에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다

[공간에 과학기술을 더하다] (4) 전시공간에 스마트기술을 더하다

지난 5월,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SM타운 코엑스 아티움 건물에서 거대한 파도가 밀려와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도심에 파도가 칠 리 만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결의 일렁임과 물방울의 움직임까지 디테일하게 재현한 이 가상의 파도는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휴식이 되어 주었다.

‘파도(WAVE)’는 국내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기업이 제작·설치한 공공예술 프로젝트 중 첫 번째 작품이다. 건물 외벽 두 면을 연결하여 설치된 가로 81m, 세로 20m 크기의 LED 사이니지에서 구현된 아나모픽 아트(Anamorphic Art)는 파도의 입체감과 실제감을 구현하기에 최적의 기술이다. 그리고 복잡하고 답답한 강남 한복판은 파도와 같은 청량함이 필요한 공간이다. 이렇게 예술이 기술을 만나 정형화된 전시공간을 벗어나자 세계의 유력 외신들이 극찬한 표현 그대로 “기술과 예술이 만든 거대한 입체 파도”가 전시의 새로운 물결이 되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티움에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파도(WAVE)’가 나오고 있다. 예술이 기술을 만나 정형화된 전시공간을 벗어나자 실제감이 극대화되고 그로 인해 관람효과가 높아졌다. Ⓒd’strict

과학기술과 전시공간의 융합, ‘4의 공간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전시공간은 전시물의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배치하여 관람객의 행동적 체험과 정신적 상호 교류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대게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은 전시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부각시키고, 이를 매개로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활용한다. 전시관이 벽, 천장, 바닥 등 물리적 공간을 이루는 하드웨어 요소보다 공간에 형태를 완성하여 체험과 재미, 의미를 부여하는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이유이다.

크리스티안 미쿤다(Christian Mikunda)는 주거공간이나 근무 공간이 아니지만, 감각적 짜릿함과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주는 연출된 공간을 ‘제3의 공간’이라 분류했다. 그의 정의를 따라가면 박물관, 미술관 등 전시공간 역시 제3의 공간 분류에 속한다.

하지만 최근 ICT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전시공간은 ‘제4의 공간’이라는 새로운 분류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제4의 공간’은 루시 불리반트(Lucy Bullivant)가 제안한 새로운 개념으로 인간과 공간이 쌍방향으로 교류하고 반응하는 공간, 실제와 가상이 융합하여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공간을 일컫는다. 과학기술이 전시공간에 더해지면서 생긴 큰 변화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것, ‘제4의 공간’의 등장일 것이다.

전시공간은 전시물의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배치하여 관람객의 행동적 체험과 정신적 상호교류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이다. 이 공간에 과학기술이 더해져 ‘제4의 공간’이 등장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전시공간에 들어 온 가상현실, ‘메타버스

최근의 전시공간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가상공간으로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전시공간에 과학기술이 더해지자 시공간성이 확장되고, 오브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충분한 요소들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먼저 한정된 전시공간이 물리적 공간에서 가상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전시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컴퓨팅하고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사물들과 사람들을 연결한 ‘스마트 공간’. 이곳에서는 가상공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관람객은 오브제, 관람객과 관람객, 관람객과 외부 타자가 연결되어 능동적인 소통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공간에서 인간 행동이나 인터랙티브 작동 행위를 감지하여 공간의 무드가 바뀌거나 특정 콘텐츠를 제공하는 전시, 특정 정보가 실제 공간과 가상이 중첩되어 만들어낸 공간에 구현되는 전시 등등 최근 전시는 제4의 공간이 최적의 무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종전의 전시가 눈앞에 펼쳐진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시각적 자극을 통해 감상했다면, ‘메타버스(Metaverse)’ 기반의 전시는 직접 가상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단계에 이르렀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활용하여 시스템을 경험하거나, 아카이브를 디지털 매체가 재현하는 방식과는 보다 직접적인 감각의 지향이다.

기존의 가상현실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는 AR, VR, AI, 홀로그램과 같은 전시 기술을 도구로 전시공간에 가상의 공간을 창출하고,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초현실적 공간을 연출한다. 이렇게 구현된 공간은 전시공간을 그대로 담아낸 복제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아예 고도로 조작된 추상 공간이 될 수도 있는 말 그대로의 ‘가상의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올해 개최된 소비자 가전 전시회 ‘CES 2020’에서는 손의 촉감과 몸에 전달되는 감각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슈트와 장갑이 여럿 공개됐다. 이러한 기술들이 전시에 활용된다면 과거의 인물과 악수를 나누고, 전시되어 있던 공룡 뼈들이 조립되어 살아있는 공룡과 조우하고, 예술 작품 속 질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오감 만족형 전시를 기획할 수도 있는 일이다.

기존의 가상현실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는 AR, VR, AI, 홀로그램과 같은 전시기술을 도구로 전시공간에 가상의 공간을 창출하고,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초현실적 공간을 연출한다. Ⓒhttps://teslasuit.io

지금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사회적 시스템까지 대전환의 시기이다. 코로나19는 역대 팬데믹에 비해 치사율이 높지는 않지만, 전파력이 강해 ‘접촉’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최악의 경우 세계 인구의 70%가 감염될 수도 있는 매우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이런 배경 때문에 종전과는 다른 ‘비접촉’을 전제로 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만 했고, 테스트 베드(Test Bed)에 올라있던 많은 플랫폼들이 ‘새로운 일상’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그 많은 사례들 중에서 전시와 전시공간의 변화에 주목해 보자.

산업통상자원부의 6월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예정 행사의 74.8%가 취소나 연기가 돼 전시산업은 더없이 심각한 어려움에 놓여있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해야 하는 지금 전시공간의 변화는 산업적 측면에서는 기회가 될 것이고, 문화예술 측면에서는 향유의 다양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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