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류, 갈라지고 합쳐지며 진화”

[과학의 달 특집] 이상희 교수, ‘미래를 여는 과학기술’ 강연

2019 대한민국 과학축제 마지막 날인 지난 23일 이상희 캘리포니아대 고인류학 교수가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 12층 라운지에서 ‘고인류학과 인류의 기원’을 주제로 열강을 펼쳤다.

이날 강연에서 이 교수는 △호미닌(사람족)의 기원 △호모(사람속)의 기원 △호모사피엔스(현생인류)의 기원 등 고인류학에서 중요한 세 가지 주제에 대해 슬라이드를 곁들여 상세히 설명했다.

이 교수는 먼저 인류의 기원은 공룡시대가 끝나고 신생대가 시작된 6500만 년 전 영장류와 포유류 시대가 시작되면서 그 기반이 형성됐다고 말머리를 풀었다.

23일 저녁 서울 종로구 마이크 임팩트 라운지에서 열린 '고인류학과 인류의 기원' 강연 현장 모습.  사진: 김병희

23일 저녁 서울 종로구 마이크 임팩트 12층 라운지에서 열린 ‘고인류학과 인류의 기원’ 강연 현장 모습. ⓒ 김병희

학계에서 호미닌(hominins) 즉 인류의 시작은 530만 년 전 플라이오세(Pliocene)에, 그리고 우리 호모(Homo)속은 180만 년 전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에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학자에 따라서는 플라이오세가 560만 년 전, 플라이스토세도 260만 년 전에 시작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 교수는 “우리 인류가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언제 갈라져 나왔나, 호모사피엔스가 속해 있는 호모속은 언제 출현했나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여기에 ‘어떻게’와 ‘왜’라는 물음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고인류학 탐구의 의의를 밝혔다.

호미닌의 특징은 ‘두 발 걷기’

호미닌은 ‘두발 걷기’가 특징으로 △호모(Homo)의 조상이 될 가능성 △현재 살아있는 다른 영장류보다 호모에 훨씬 더 가까운가라는 두 가지 특성에 따라 평가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포함해 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는 파란트로푸스(Paranthropus),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더 오래된 아르디피테쿠스(Ardipithecus) 등이 호미닌에 속한다.

두발 걷기는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류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 교수는 “우리는 손을 인간의 매우 중요한 특징으로 생각하나 사실은 발이 특별하다”고 말했다.

“두 발로 걸으려면 한 발로 균형을 잡아야 하고 이런 균형잡기가 용이하려면 무릎이 안쪽으로 모아져야 합니다. 다른 영장류들은 네 발이 아니라 손을 네 개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발로 철봉 잡듯이 나무타기에도 유리하지요. 그러나 나무타기를 포기한 인류는 한 발로 체중을 지탱할 수 있도록 엄지발가락이 커지고, 골반뼈와 둔부 근육이 몸통의 균형을 잡아 땅을 딛고 설 수 있게 진화했습니다. 엄청난 변화지요.”

호미닌이 처음부터 걸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 인류가 숲에서 나무타기와 두발 걷기를 겸용했을 것이라는 가능성은 2003년도에 발표된 420만 년 전의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 연구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예전 중고교 사회시간에는 인류가 친척 호미닌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호모하빌리스, 호모에렉투스를 거쳐 네안데르탈인에서 호모사피엔스로 가는 마치 경제발전단계설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고 배웠다.

그러나 생물의 종은 독립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종이 다르면 번식이 안되기 때문에 직접적인 계단식 연계관계는 맞지 않는다.

이 교수는 “학계에서는 1950년 경부터 이런 계단식 진화가 틀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호미닌의 기원을 통해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은 계단식이 아니라, 어느 종과 어느 종이 더 가깝고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나타내는 계통수(系統樹)가 중요한 방법론 패러다임으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호모속, 목표 정해 이동하지 않아”

호모속에 속하는 집단은 호모사피엔스를 비롯해 호모하빌리스, 호모에렉투스, 호모하이델베르겐시스, 네안데르탈렌시스 등 다양하다. 나타난 시점은 약 230만년 전.

호미닌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시작과 함께 호모속은 세계 도처에 등장했다. 대체로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60만년 동안 진화를 해서 아시아쪽으로 퍼져 나갔다고 생각해 왔다. 북경원인, 자바원인 같은 호모에렉투스가 그런 예다. 그러나 1994년부터 수많은 논문이 쏟아져 나오면서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에도 일부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여름에는 중국 샹첸에서 210만 년 전에 만들어진 돌도구가 발견됐는데, 이는 시기적으로 볼 때 호모속이 나타나자마자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호모속이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주를 하거나 원정 등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확산된 것이고, 환경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는 것. 따라서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나 동남아로의 이동을 나타내는 화살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여러 호모속의 공통된 요소는 큰 머리다. 대체로 두뇌 용량은 400㏄부터 시작해 200만 년 동안 지금의 1400㏄까지 증대됐다. 침팬지의 두뇌 용량은 400㏄. 이는 현재의 갓난 아기나 30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의 뇌 용량과 같다. 뇌 용량은 몸무게와 비례한다.

이 교수는 “서너 배나 증대된 뇌를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작은 키의 초기 인류가 숲에서 채집 생활을 하다 초원으로 나와 수렵을 하게 되면서 몸체와 두뇌 용량이 점점 커진 것과 상대적인 관련성이 있다. 예를 들면 과일 100g은 400㎉ 정도 에너지를 내는데 비해 지방 100g에서는 900㎉의 열량을 얻을 수 있다.

호모와 침팬지는 또한 태아를 출산하는 산도(産道)가 다르다. 침팬지는 산도와 태아 머리 크기가 딱 맞아서 새끼를 쉽게 낳고, 낳으면 바로 어미가 젖을 물릴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사람은 머리 크기가 산도 지름보다 크고 산도의 장축이 달라 태아가 몸을 비틀면서 나오게 되며, 그래서 출산 시 옆에서 돌봐주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머리가 크다는 것은 주변 환경과 사회관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사회집단의 크기가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수의 강연 장면.   출처: 이상희

머리가 크다는 것은 주변 환경과 사회관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사회집단의 크기가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수의 강연 장면. ⓒ 김병희

“머리가 크다는 것은 환경과 상대방에 대한 정보, 사회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정보를 대량으로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사회집단의 크기가 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구가 그만큼 많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호모속이 아프리카를 떠나왔을 무렵에는 수시로 빙하기가 찾아왔다. 이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려고 분투하는 와중에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창의’가 특징인 현생인류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는 ‘창의성’을 그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이 교수는 현생인류의 창의성으로 예술적 장식과, 풍요와 다산에 대한 희망,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을 예로 들었다. 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상정하는 추상적 사고를 의미한다. 추상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다른 동물과 다른 ‘인간다움’일 수 있다.

“3만 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기능성뿐만 아니라 맵시를 갖춘 도구들이나 장식품이 나옵니다. 꾸민다는 것은 남에게 보이고 싶은 욕구를 나타내는 것이고 이것은 내가 속한 집단과 가족, 나에 대한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매장을 한다는 것은 내가 현재 있는 자리와 죽은 이가 있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 즉, 내세 등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추상적 사고를 하는 ‘인간다움’이 반드시 현생인류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 같다는 단서가 나왔다. 20~30만 년 전에 살았던 호모날레디(Homo naledi)로 명명된 호미닌의 유골 화석이 2013년 남아공의 깊숙한 지하 동굴에서 발굴된 것.

이들은 600㏄ 정도의 두뇌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어둡고 멀리 떨어진 깊은 동굴에 동료의 시신을 보관함으로써 상당한 지능과 문화의 시작을 암시하는 행동으로 주목받았다.

“고인류사의 흐름은 계단식 아닌 강줄기”

인류 진화사는 이같이 새로운 발견과 연구가 계속 이어지며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한동안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전혀 다른 종이라서 섞이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2010년도 네안데르탈인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현대인에게도 2% 정도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섞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8월에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혼종 어린이가 발견된 데 이어 최근에는 필리핀에서 발견된 호모에렉투스와의 혼종을 상정하는 논문도 나왔습니다. 화석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진작부터 그런 가능성을 얘기해 왔었지요. 중국의 현생인류와 중기 플라이스토세 인류의 코 뼈와 광대 뼈 각도의 유사성, 호주 원주민과 인도네시아 호모에렉투스와의 공통점 등도 그런 가능성을 나타냅니다. 문제는 섞인 것은 분명한데 두 개의 다른 종이 섞인 것인지 아니면 종 안의 다른 집단이 섞인 것인가 하는 다양성의 문제가 앞으로 고인류학에서 매우 중요한 명제가 될 것입니다.”

이 교수는 고인류학 연구의 다양성과 관련해 몇 가지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 하나는 그동안 고인류학의 연구대상이 남성 성인의 비장애인에 획일적으로 국한돼 있다는 점에서 구글 이미지를 검색해 본 결과 실제 전체 이미지의 75%가 남자만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하나는 2004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공동연구로, 고인류의 이빨로 나이를 추정해 보니 유럽 구석기때의 늙은 어른 수가 젊은 어른보다 두 배가 될 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수명이 늘어나면서 이루어진 예술과 문화의 발달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나타난 다양한 기원과 조상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호모사피엔스의 지난 역사는 계단식도 나무도 아닌, 가지가 갈라져 나갔다가 다시 합쳐지기도 하는 강(江)과 같은 모습이 좀 더 현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울대에서 고고미술사학을 공부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고인류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고인류학 박사 국내 1호로 꼽힌다. 국내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저서 ‘인류의 기원’ 출간한 바 있으며, 지난해에는 ‘이상희 선생님이 들려주는 인류이야기’를 펴내는 등 고인류학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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