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고에너지 물리학 시대를 연 거대 장치

[노벨상 오디세이] 노벨상 오디세이 (134)

1919년 영국의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질소 원자의 핵에 알파선으로 충격을 가하고 헬륨 핵을 흡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물리학의 새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핵반응에 사용되는 헬륨을 자연의 방사성 원소에서만 얻어야 했기에 그 양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자 했던 실험을 진행하는 데 충분한 원자 입자가 필요했던 러더퍼드는 결국 1927년에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에게 고에너지 입자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제안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고에너지 입자를 생산할 수 있는 장치가 고안됐다. 미국의 물리학자 어니스트 로렌스가 발명한 사이클로트론이 바로 그것. 사이클로트론은 자기장과 교류전압을 이용해 입자를 가속시켜 새로운 원소를 검출하는 장치로서, 입자가속기의 한 종류이다.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해 입자물리학의 진전에 기여한 공로로 193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로렌스. ⓒ Lawrence Berkeley Nat’l Lab

1901년 8월 8일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캔턴에서 출생한 로렌스는 사우스다코타대학에 입학해 화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졸업 이후 시카고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1925년 예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8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의 물리학 조교수로 부임했다가 1930년에는 그 대학의 최연소 정교수로 임명됐다.

그의 초기 연구는 광전효과와 금속증기 이온화 전위의 정밀 측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1929년부터 고압을 사용하지 않고 이온을 가속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해 1930년에 사이클로트론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캘리포니아의 특수한 지역적 배경 활용

그가 처음 만든 사이클로트론은 지름이 약 12㎝에 불과했는데, 이듬해 첫 가동 시 2000V의 전압으로 8만 전자볼트(eV)의 출력을 얻는 데 그쳤다. 이후 지름 27㎝의 사이클로트론을 개발해 100만eV가 넘는 출력을 얻었다.

현재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는 둘레가 무려 27㎞에 달한다. 사이클로트론은 인간이 개발한 장비 중 가장 거대하고 복잡하다. 로렌스가 이처럼 거대한 프로젝트를 단기간 내에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던 데는 캘리포니아라는 특수한 지역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많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골드러시로 광산업이 급속히 성장하고 수많은 수력발전소가 생겨났으며 동부와의 장거리 통신을 위한 통신시설이 많았다. 사이클로트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한 자석이 필요한데, 통신시설에서 나오는 재활용 자석이 풍부했으며 전력 산업의 발달로 이를 가공하기 위한 기계공학도 발달해 있었던 것이다.

인공적인 방사성 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사이클로트론이 등장하면서 원자핵 관련 연구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소에 사이클로트론이 설치되었으며, 여기에서 얻은 결과를 활용한 논문들도 폭증했다.

사이클로트론 안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들은 다양한 원소들의 원자를 폭발시켜 새로운 원소들을 만들어냈으며, 이미 알려진 원소들의 방사성 동위원소들도 발견되었다. 이처럼 대량으로 생산된 동위원소는 화학, 생물학, 의학 분야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원자폭탄 개발에도 중요한 기여

예를 들면 핵의학 영상법인 양전자단층촬영(PET) 진단시 반감기가 짧은 인공원소를 활용하면 인체에 오래 머물지 않아 부작용 없이 암세포의 유무 등을 진단할 수 있다. 어니스트 로렌스의 친형이자 의학물리연구소장이었던 존 로렌스는 그와 협력해 사이클로트론의 의학적‧생물학적 적용을 연구하기도 했다. 또한 입자가속기는 우주 생성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어니스트 로렌스는 물리학 분야에서 유명한 논문을 내지 않았음에도 1939년 노벨 물리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와 관련해 노벨재단은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 진행자 혹은 지도자로서 물리학 분야의 장점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에 필요한 요구 사항들을 충족했다고 평가했다.

로렌스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맨해튼 프로젝트의 몇몇 공식적 직책을 맡아 원자폭탄 개발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원자폭탄 개발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235를 분리해내는 데 입자가속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1958년에 개최된 제네바 회의에 미국 대표단으로 참석해 핵폭탄 실험 중단에 관한 국제협정의 체결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해 8월 27일 캘리포니아주의 팰로앨토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1931년에 설립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의 방사선연구소는 그의 사망 이후 로렌스버클리연구소로 이름을 바꿨다.

미국 정부의 위임을 받아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운영하는 이 연구소는 설립 이후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미국의 3대 핵무기 연구소인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도 그의 이름을 따서 세워졌으며, 원자번호 103번으로 주기율표에 나오는 마지막 악티늄족 원소인 로렌슘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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