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고려 금속활자, 세계 최고인 이유

[과학으로 만나는 세계유산] 과학으로 만나는 세계유산 (7) 직지심체요절

1967년 어느 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촉탁으로 일하고 있던 박병선 박사는 동양문헌실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책 한 권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그가 놀란 이유는 책의 맨 뒷장 간기에 ‘선광 7년 정사 7월 청주목 외 흥덕사 주자인시’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

해석하자면 ‘1377년 7월 청주목 교외에 있는 흥덕사에서 주조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라는 뜻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구텐베르크가 간행한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 자기 눈앞에 있다는 의미가 된다.

연구 끝에 그는 그 책이 고려 말 경한 선사가 역대 불조들의 법어와 설법 중에서 선(禪)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뽑아 엮은 ‘불조직지심체요절’임을 밝혀냈다. 경한 선사는 호가 백운이라서 백운화상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이 책이 이듬해인 1378년 6월에 목판본으로도 간행되어 지금도 한국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목판본 직지심체요절의 권말 간기. 금속활자본은 이보다 1년 앞선 1377년 7월에 간행되었다. ⓒ 문화재청

목판본 직지심체요절의 권말 간기. 금속활자본은 이보다 1년 앞선 1377년 7월에 간행되었다. ⓒ 문화재청

정밀한 고증이 끝나자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주최 ‘책의 역사전’에 직지심체요절을 출품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았다. 이 책은 당시 50~100권이 인쇄되어 사찰 및 불교계 인사들에게 배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직지심체요절은 원래 상‧하 2권이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금속활자본은 하권뿐이다. 하권 중에서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것은 1장이 없어지고 2장부터 39장까지 모두 38장만 남아 있다.

근대적 사고로의 변환 이끈 금속활자

이 책이 해외로 유출된 이유는 조선 고종 때 주한 프랑스 공사로 근무했던 콜랭 드 프랑시가 수집해간 장서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 책은 골동품 수집가였던 앙리 베베르에게 넘어갔다가 그가 1950년에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게 된 계기는 면죄부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세 시대에 면죄부는 천당으로 가는 표로 인식되었는데, 구텐베르크는 이 같은 면죄부를 빠른 시간에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금속활자 개발에 성공한 그는 면죄부보다 더 거대한 시장이 성서에 있음을 알고 성서를 발간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발명은 종교개혁을 이끄는 견인차가 되었다. 금속활자로 인해 일반 사람들도 성서를 볼 수 있게 됨으로써 종교 개혁가들이 교황청과 다른 생각을 대중에게 전파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속활자의 탄생은 인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옛날엔 서적이 매우 귀해 책을 접하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로 한정됨으로써 책 그 자체가 곧 지식 권력의 상징이었던 것. 하지만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의 발명은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어 중세적 사고에서 근대적 사고로의 변환을 이끌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는 직지심체요절이 발간되기 이전에도 이미 금속활자로 인쇄된 다른 책들을 발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에서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로 탄생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기술적 여건이 세계 어느 국가보다 발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고려는 1097년에 화폐를 만드는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1102년에 해동통보를 주조하는 등 금속 주조기술이 발달해 있었다. 또한 고려에서 제작된 종이는 중국 역대 제왕의 치적을 기록하는 데 사용됐을 만큼 우수했으며, 인쇄용 잉크 역할을 하는 먹 제조기술도 고려가 세계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기법으로 직지 금속활자 복원해

고려에서 탄생한 혁신적인 금속활자는 동양 인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후 유럽 등지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직지심체요절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책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귀중본으로 분류되어 단독 금고에 보관되고 있다.

지난 2011년 프랑스는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조선왕조의궤’를 영구임대 형식으로 한국에 반환했다. 그러나 정작 직지심체요절의 국내 반환이나 전시 요청에 대해서 프랑스는 언제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직지심체요절의 금속활자를 주조한 흥덕사는 그동안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1985년에 실시된 발굴 조사에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866번지 일대가 그 유적지임이 확인되었다. 이후 그곳은 사적지 제315호로 지정되어 금당이 복원되고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개관되었다.

지난 1월 청주시는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당시 제조기법으로 복원된 직지심체요절의 금속활자를 공개했다. 이 활자는 당시 직지심체요절을 제작했던 밀랍주조 형태 그대로 재연되었는데, 거푸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현대적 재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황토, 모래, 물의 세 가지 재료만 넣어서 만들었다고 밝혔다.

고려의 밀랍주조법은 벌집에서 추출한 밀랍에 한자를 조각해 밀랍 자기를 만들고 진흙과 함께 주형틀에 넣어 말린 뒤 가마 속에서 밀랍을 녹이는 방법이다. 이후 밀랍이 녹아내린 틈 사이로 쇳물을 넣어 식히면 굳은 진흙 속에서 금속활자가 만들어진다.

청주시는 이렇게 복원한 직지심체요절과 금속활자를 오는 9월에 개최하는 직지 코리아 행사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직지 코리아는 ‘직지 세상을 깨우다’를 주제로 9월 1일부터 8일까지 청주고인쇄박물관과 청주 예술의전당 일대 직지 문화특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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