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거울의 요철을 비추는 거울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49

최근에 ‘거울을 본다’는 표현을 다시 음미할 기회가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거울을 본다고 하면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는 일을 말하지, 사람이 만들어낸 물건인 거울 그 자체를 보는 일을 뜻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1850년대 값싼 거울을 양산하는 방법이 개발된 이래, 이제는 일상의 거울은 이상한 모습을 비출 때나 의식하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거울을 떠올린 계기는 언론보도 덕분이었다. 지난달 말 수업시간에 여러 학생들이 중력파 검출 보도를 학기발표과제의 소재로 삼겠다고 조언을 구했다. 학생들이 야심은 반가웠지만, 보도된 신문 제목들을 보니 무슨 발견을 했다는 것인지 내가 혼란스러워졌다. “중력파 첫 검출,” “빅뱅의 흔적,” “우주가 팽창하는 증거 ‘중력파’ 찾았다” 등등. 압권은 “우주팽창 중력파 이용하면 통신장벽 사라진다”이었다. 잠시 과학소설 수업에서 다루는 소설 속의 세계로 진입한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덕분에 도로시 넬킨의 <셀링 사이언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과학언론을 다룬 우리말 책은 몇 권 더 있지만, 넬킨의 시점은 그 이전에 번역된 책들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1997년에 칼 세이건의 머리말을 달고 나와서 다음해에 바로 번역된 <이제는 대중도 과학기술을 읽는다: 과학 저술인을 위한 실전 가이드, 1998)>나 2004년에 일본에서 출판된 2009년에 <과학 저널리즘의 세계, 2009>는 좋은 과학 기사를 쓰기 위한 지침과 경험담을 담고 있다. 즉 과학언론 종사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과학언론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를 종사자의 시점에 맞추어 서술한 책들이다.

반면에 1987년에 출판되었지만 한 세대가 지나서 번역된 <셀링 사이언스>는 과학언론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서술되었다. 당연히 우리와는 처지가 사뭇 다른 미국의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고, 언론환경이 급변한 한 세대를 격한 책이기에 우리의 상황이 그대로 대입되지는 않는 부분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언론에 대한 통찰 중에는 궁극적 원인과 작동 메카니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상황에도 들어맞는 것들도 상당수 있다.

번역자의 말을 빌면, 넬킨은 “오늘날 [미국의] 과학언론은 과학의 구체적 내용이나 연구의 과정보다는 ‘대약진’이나 ‘혁명’에 초점을 맞추고, 수많은 연구자와 지원 단위를 필요로 하는 현대과학의 성격을 무시한 채 ‘스타 과학자’를 부각시키며, 과학의 불확실성과 한계를 지적하기보다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 원천으로 과학을 신비화”한다고 보여주었다. 황우석 사태 이후 스타 과학자를 부각시키는 강도는 꽤나 줄었지만, 넬킨이 미국의 과학언론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우리의 과학언론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셀링 사이언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묘사는 언론이 과학자를 내일의 기적을 가져올 마법사로 숭앙하다가 그것이 빨리 실현되지 않을 때는 과학에 대한 환멸을 부채질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앞부분이었다. 만일 그녀가 섯부른 고발자였다면, 이를 사악한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로 몰아붙였을 터였지만, 넬킨은 이러한 현상을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의 결과로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과학언론의 중요성과 잠재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만, 현실적인 모습을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개탄하는 비판자의 태도를 취하는 셈이다. 그러한 비판이 희생양을 지목하는 수건돌리기 게임을 하지 않고 전개되는 것도 부러운 덕목이다.

11년전 사망한 도로시 넬킨은 1950년대 대학졸업 후 학위취득없이 학자로서의 삶과 양육을 병행하여 뉴욕대학의 정교수까지 이른 독특한 경력을 지녔다. 과학학 분야의 세계적 학회인 4S(Society for Social Studies of Science)의 창립회원으로 회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저술은 실천사회학자로서 사회적 과학기술현상에 대한 비판적 서술을 담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과학기술 비판자로서만 자리매김하기도 어렵다. 단적인 예로 1981년 아칸사스주에서 창조‘과학‘ 교육의무화를 취소하라는 소송에서 원고측 증인으로 과학의 가치를 옹호하였고, 다음해 출판한 책에서는 과학적 규범에 도전하는 창조과학 진영의 행태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중간자(중립은 아니다)적 태도는 <셀링 사이언스>에서도 반영되어 있고, 그래서인지 출간 직후에 몇가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한 과학사학자는 20세기 미국 과학언론의 역사로 보기에는 너무 소략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과학언론 개선에 주력하는 언론학자로부터는 당시 미국 과학언론의 새로운 경향을 무시했다는 불만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언론 현상에 대한 관찰자 시점의 개관은 여전히 그녀의 책이 가장 폭이 넓다. 더욱이 안타깝게도 그녀가 짚어낸 미국과학 언론의 문제점들이 우리 언론에서 되풀이 되는 사례는 사회문화적 배경과 언론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왜 이런지에 대한 상세한 연구도 흥미로울성 싶다.

과학자와 과학기자 사이의 건전한 긴장관계를 강조한 그녀의 최종 처방은 과학자와 과학기자들에게 뾰족한 지침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오히려 강조하게 되었다지만, 매일의 훌륭한 지침들 속에서 잊기 쉬운 큰 그림을 상기시켜 주는 기능은 줄어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과학언론의 거울을 통해서 과학기술을 접하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거울의 요철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로도 훌륭하다. 넬킨의 거울도 요철이 없다고는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노상 보는 거울이 언제나 평평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잊지 않게 해준다.

소개도서: 도로시 넬킨 지음/ 김명진 옮김, <셀링 사이언스: 언론은 과학기술을 어떻게 다루는가>, 궁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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