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개별 연구 과제단에서 ‘연구클러스터’ 체제로 대전환”

[과총 과학과기술 인터뷰대담]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글 : 류준영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 차장(과학과 기술 편집위원)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퍼스트가 받지, 베스트가 받는 건 아닙니다.” 10월 5일, 인터뷰 당일은 우연히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발표를 2시간여 앞둔 시점이었다.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의 전공 분야이기도 해서 예상되는 수상자를 물었다. 그는 “이번엔 딱히 짚어지지 않는다”면서도 “연구를 잘 한다고 주는 상이 아니지 않나요?”라며 뼈 있는 반문을 던지곤 이렇게 자문자답했다.

늘 그렇듯, 인기 분야에 과학자가 몰린다. 정부 지원금도, 민간 펀드도 인기에 따라 쏠린다. 그의 말마따나 학생들도 바글바글하다. 옆에서 묵묵히 자기 분야를 연구하던 과학자도 의식하지 않으려 하지만, ‘하던 거 계속해서 뭐하나’ 자괴감에 빠진다. ‘에이, 때려치우고 나도 하지, 뭐’ 대열에 합류한다. “원래 하던 거 계속했으면 뭐 하나 새롭게 만들 사람이었죠. 이 사람에게 투자하면 노벨상 받을 확률이 높아지는 겁니다. 그걸 아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투자를 해왔나요?” 원인과 답은 알지만 참 안 변하는, 매년 이맘때면 관행처럼 던져지는 질문에 무력해진다.

하지만 노 원장은 희망적이다. 젊은 연구자의 실패를 인정하고 장기 투자하는 프로그램이 하나둘 생기면서 한국의 연구 공력이 이전보다 많이 올라왔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연구 토양이 두텁게 올라오면서 지금 40대 후반 교수들이 정말 잘 하고 있어요. 이런 젊은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연구를 보다 길게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면, (노벨상) 후보들이 더 나타날 거예요.”

노벨상 얘기가 나온 건 IBS의 태생과 정체성에 가까워서다. IBS의 설립 목표는 노벨상 수준의 뛰어난 연구역량을 지속 발휘할 수 있는 세계적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었고, 더 깊게 들어가면 장기간 흔들림 없는 기초 과학 토대를 만든다는 취지였다. “IBS는 우리나라 1번, 명실상부한 기초 과학의 종합 연구소지요. 더 나아가면 기초 과학의 컨트롤 타워입니다. 옛날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처음 생겼을 때 우리나라 연구는 KIST였듯이.”

최근에는 산하에 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를 출범시키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 사태 2~3년 전, 청와대에서 기획한 사업인데, 정부는 바이러스기초연구소가 대학별 관련 연구소 간 네트워크를 만드는 등 바이러스 연구의 허브 역할을 해주길 원했고, 이를 IBS에서 맡아 달라고 했다. 마침 IBS는 연구단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처럼 연구센터가 몇 개 들어가 모여 있는 큰 규모의 클러스터 사업으로 성장시킬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던 탓에 노 원장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굳이 이 사업을 하겠다고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 없이 대표적인 클러스터(바이러스기초연구소)가 생겨버린 거잖아요. 연구단에서 연구소로, 다시 말해 연구 과제 중심으로 가던 조직 운영을, 안정감과 영향력이 있는 연구소 체제로 전환해 나갈 겁니다.” 바이러스기초연구소는 ‘감염병 대응 산업 육성방안’ 등에 따라 올해 출범했다. 향후 바이러스 기초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 협력 허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노 원장은 인터뷰 녹음기가 꺼진 상태에서 비하인드로 ‘2년 차 징크스’를 슬쩍 언급하기도 했다. 노 원장에 따르 면, 원장선임초기에는 기관의 미래를 꿈꾸고, 발전 동력을 찾고, 힘차게 끌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1년째 접어드니 현실을 알게 됐고, 극복해야 할 문제점, 숙제가 마구 생겨났다. 2년째 되니까 해결할 문제, 구조적 모순, 내외적 관계, 우리나라 현실 등도 복잡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보통 기관장 임기가 3년인데, 그 기간이면 어려움을 어느 정도 수습하면서 끝이 나죠. 그런데 IBS 원장의 임기는 5년이거든요. 5년이면, 핑계를 댈 수 없거든요, 짧아서 못했다? 어림없죠. 5년이란 임기가 바람직한 방향인 건 맞는데, 기관장에겐 정말 만만치 않아요.” 노 원장은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R&D 환경 변화 반영한 유동적 정책 전환 필요하나 장기 기초연구는 그와 별도로 지속적으로 지원돼야

Q.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설립 10주년을 맞았는데, 원장으로서 소감은.

A. IBS는 대선 공약과 국책 사업 등 국가적 지원을 받아 출범했으나, 연구비 집중, 대학과의 차별성 등 외부에서 촉발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다만 1·2대 원장님과 구성원이 힘을 모아 운영의 기틀을 잘 마련했고, 수월성·자율성·창의성·개방성 철학도 IBS가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줬습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잘 극복했으니 이제부터는 안정적으로 연구원의 양적 확대, 질적 혁신에 집중할 것입니다. 다만 정책 방향이 자주 바뀌면서 IBS와 같은 장기 기초 연구보다는 4차 산업혁명,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디지털 뉴딜 등 현안 사업이 우선시되는 경향은 우려스럽습니다. 이를테면 애초 50개 연구단과 연구단 예산 100억 원이었던 목표와 지원이 현재는 1개 연구소, 30개 연구단, 연구단 예산 52억 원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R&D 환경 변화를 반영한 유동적 정책 전환은 필요하나, 긴 호흡이 중요한 장기 기초 연구는 그와 별도로 지속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지난 10년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10년을 위한 계획은.

A. 우리나라 기초 연구의 가장 큰 약점이 우수한 인력과 인프라 부족이었습니다. 지난 10년간 IBS는 이를 성공적으로 마련해왔습니다. 기초 연구가 세계 수준이 되려면 그에 부합하는 연구자들을 확보해야 하나, 기초 연구 투자가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인재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IBS 설립으로 파격적인 지원과 좋은 처우를 제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외 석학을 다수 영입해 한국 기초 과학의 ‘드림팀’을 만들었습니다. IBS에 모인 석학 집단을 지원하기 위한 중이온가속기, 우주입자연구시설 예미랩, 초강력 레이저 등 대형 연구 시설도 국내 최초로 구축했거나 건설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신규 연구단 구성을 통한 양적 성장이 필요합니다. 전국적 규모를 갖춘 국가 연구소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IBS가 세계적 연구소가 되려면 경쟁 상대인 막스플랑크연구소, 이화학연구소(RIKEN) 등과 비슷한 규모를 갖춰야 하지만, 인구 대비로 비교해 봐도 아직 못 미칩니다. 특히 설립 시 설정한 50개 연구단 목표는 우리나라 기초 과학 경쟁력 강화의 기준이므로,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Q. 기초 연구 발전과 관련해서 가장 어려운 점은.

A. 기초 과학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미국이나 독일은 왜 투자합니까? 기초 연구를 하다 내비게이션, GPS가 생겼습니다. ‘기초 연구에 투자하니까 삶이 편하고, 나아가 전쟁에서도 이기더라’ 이런 경험을 했던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초 연구하는 사람들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것을 설득시키기가 어렵습니다. 일각에선 ‘왜 우리가 투자해. 미국에서 다 만들어놓은 거 써서 잘 살면 되지’라고 합니다. 문제는 더 이상 미국에서 만든 것을 받아쓸 수 없는 상황까지 가 버렸다는 겁니다. 맨날 옷을 빌려 입었는데, 이미 몸이 커져 더 이상 빌려 입을 수 없게 됐습니다. 세계라는 지식 뱅크에 저금을 할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남이 저금해 놓은 것을 빼다가 먹고 잘 살아왔는데, 지금은 집어 넣어주는 나라가 된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잘해왔습니다. KIST도, KAIST도 만들었고 기업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이제는 미래를 봐야 한다’고 IBS가 만들어진 거 아닙니까.

Q. 기초과학연구원의 2022년 주요 안건은.

A. 내년 현안으로는 본원 및 캠퍼스에 연구단 경쟁력 강화, 지속성 확보를 위한 ‘연구 클러스터(Institute)’ 체제를 확립하고자 합니다. 유관 분야 연구단을 하나의 클러스터로 묶되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연구단도 클러스터 소속이 가능하도록 포괄적으로 운영 지원하겠습니다. 현행 연구단 체제는 유사 분야 간 대형화 및 협력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연구단 종료 시 국가적으로 중요한 장기 연구가 중단된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IBS가 하는 것을 연구 과제로 보느냐, 연구소로 보느냐에 따라 철학이 굉장히 달라집니다. 많은 사람이 처음엔 연구 과제로 생각했습니다. ‘IBS는 한국연구재단 창의과제의 10배 규모이고, 지금은 대여섯배 정도로 줄었는데 그래도 매우 크지 않냐’며 큰 과제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저희가 생각하는 건 과제가 아닌 연구소를 만드는 겁니다. 만약, 뇌 과학 분야면 뇌 과학 분야에 연구단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뇌 과학과 관련된 여러 연구단이 있습니다. 이런 연구단을 연결해 조그마한 연구소를 만들자. 그것이 클러스터의 개념입니다. 연구단 서너 개가 모이면 그 분야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서로서로 도울 수 있고, 연구 조직도 안정화되는 등 좋은 점이 많습니다. 원래 하려고 했던 게 그런 겁니다.
독일엔 80개 정도의 막스플랑크 인스티튜트가 있습니다. IBS가 연구 클러스터 체제를 확립하게 되면, 하나의 클러스터가 하나의 인스티튜트 수준이 될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IBS 연구단 하나와 독일의 막스플랑크 인스티튜트 하나를 비교합니다. 비교가 됩니까. 3분의 1, 4분의 1밖에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우리는 30개 있고, 저기는 80개 있다고 얘기하는데, 우리 식으로 말하면 저기는 300개 정도 있는 겁니다. 올해 하반기 본원에 1개 연구 클러스터를 시범 운영하고, 내년부터 KAIST와 POSTECH 캠퍼스 신축 건물 완공과 연계해 본격 도입할 겁니다. 비슷한 연구자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연구 시설과 장비가 있으면 국제 교류의 장을 만들 때도 효과가 있습니다. IBS는 연구소의 집합체로 나아갈 겁니다. UNIST도 설계에 들어가 있고, GIST, DGIST까지 연구 캠퍼스가 생길 겁니다.

Q. 부산대와 성균관대, 고려대 등의 외부 캠퍼스는.

A. 거기는 강소 연구소입니다. 부산대의 경우 기후물리에 특화된 아주 작은 대학 연구소가 있습니다. 성균관대와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모두 강소 연구소로 잘 되고 있습니다. 연구단 하나 규모에 특색 있는 연구를 하면서 세계적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대학의 지원이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일반 연구 과제와 전혀 다르게 각 대학을 대표할 수 있는 연구소가 생긴 겁니다. 외부 캠퍼스 연구소는 그 대학의 미래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습니다. 예컨대 부산대가 경쟁력이 많이 떨어지면서 연구 중심 대학에서 벗어나 보였는데, 기후물리 연구단이 생기면서 이 분야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자극을 받은 다른 분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대학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중이온가속기 사업단 거버넌스 개편 추진… 3개 연구단 출범 준비

Q. 앞으로 중이온가속기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A. 올해 중이온가속기 구축사업 1단계 종료에 따라, 현재 임시조직으로 운영 중인 사업단의 거버넌스 개편을 추진하려 합니다. 내년부터 진행될 가속기 운영, 선행 R&D, 가속기 활용 연구 지원 등을 전담할 상시 조직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설립준비위원회(가칭)를 7월에 구성, 연말까지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설립·운영(안)을 수립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협의하고, 이사회에 보고할 계획입니다. 위원회는 사업단 3인, 가속기 활용 연구자 4인, 포항가속기 구축·운영·이용자 3인 등 전문가 11인으로 위촉할 예정입니다. 2022년 1월 중이온가속기연구소를 설립해 가속기 운영에 초점을 두고 선행 R&D 및 2단계 사업을 병행하며, 사업 종료 후 추가 거버넌스 개편, 즉 부설 연구소화를 검토하겠습니다. 다소 사업이 지체된 측면이 있는데, 중이온가속기를 가동하려면 헬륨을 액체로 만들어 가속장치를 쿨링해야 합니다. 헬륨액화시설이 가장 큰 게 중이온가속기입니다. 그만큼 난도는 있습니다. 원리적으로는 다 알려진 기술인데 실제 공학적 완성도는 또 다른 얘기입니다.

Q. 3개 연구단(양자컴·우주이론·초고속엑스선분광학)이 새로 출범을 준비하고 있는데.

A. 양자 정보 과학 분야의 경우 2017년 지정 연구 분야 포함 이후 꾸준히 연구단장 후보를 찾아 왔습니다. 현재 연구책임자(CI) 최종 후보 1인이 선정된 상황입니다. 본원에 관련 연구단을 모아 연구 클러스터로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습니다. 우주 이론·초고속 엑스선 분광학 분야는 현재 연구 단장 후보자 심층 평가까지 진행했습니다.

 

양적 성장 도모… 원래 계획대로 가면 되는 일 “세계에 미칠 임팩트(파급력)가 눈에 보일 정도 돼야”

Q. 3년의 남은 임기 동안의 계획은.

A. 지금까지 해외 연구소가 IBS를 볼 때 ‘작은 연구소가 잘하네’ 정도의 평가였습니다. 몇 년 뒤엔 우리를 파트너 혹은 경쟁자로 인식할 정도의 수준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IBS는 양적 성장을 꾀할 것입니다. 투자 규모로만 보면 독일의 막스플랑크에 비해 10분의 1에서 20분의 1 사이일 겁니다. 일본에 비하면 4분의 1 정도입니다. 앞으로 일본의 반 정도는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IBS에 연구단 수도 늘리고, 저희가 못 하는 연구 분야도 하고, 미래지향적인 연구개발 분야도 더 개발해야 합니다. 그런 토대를 닦는 게 남은 임기 내에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원래 계획대로 가면 될 것 같다는 겁니다. 2010년에 IBS를 만들었을 때의 계획대로면, 지금쯤 50개 연구단이 운영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30개입니다. 이제 임팩트입니다. 양을 늘리려는 게 덩치만 키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연구소가 세계에 줄 수 있는 임팩트가 눈에 보일 정도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연구소가 세계 지식의 일부를 제공하는 연구소로 오르려면, 그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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