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같은 목표를 가진 팀과 열정적으로 연구하고파”

['독'일의 '한'국 과학자들] 베를린 스타트업 '노타'의 염슬기 박사

독일에는 막스플랑크, 프라운호퍼, 헬름홀츠, 라이프니츠 연구소와 같은 세계 유수의 연구소들이 있고, 그곳에서는 심심찮게 유능한 한국인 과학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과학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독일의 과학기술 분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자 한다.

지난 12월 2일 독일 정부는 ‘발전된 국가 AI 전략’을 발표하여, 중국과 미국에 비해 뒤처진 AI 관련 기술의 주도권을 탈환하겠다는 의지를 비췄다. 독일을 비롯하여 유럽에서는 AI를 미래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꼽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독일에서도 베를린은 인공지능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도시로, 유럽 내 신기술의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이 곳 베를린에 ‘인공지능으로 생활을 보다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자’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온디바이스 AI 스타트업 노타(Nota AI GmbH)가 있다.

노타는 온디바이스 AI 인공지능 원천기술인 딥러닝 모델 경량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을 통해 주로 모빌리티, 보안 관제, 리테일 분야의 AI를 다루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네이버 D2SF가 투자한 첫 번째 스타트업이다. 이후 2020년 8월 삼성벤처투자(삼성SDS 펀드), LG CNS, 스톤브릿지벤처스, LB인베스트먼트가 참여한 시리즈 A 투자 유치에 성공해 누적 투자 금액 약 100억 원을 달성하였으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삼성그룹과 LG그룹에서 동시에 전략적 투자를 유치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나가던 노타가 2019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2020년 4월 베를린에도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면서 염슬기 박사를 선임 연구원(Senior Researcher)으로 영입하였다. 노타는 현재 베를린의 독일 최대의 통신회사 도이체 텔레콤이 운영하는 코워킹스페이스이자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공간인 허브라움에 입주해 있다. 이곳은 2012년에 문을 열어 5G, AI, IoT 관련 기반 스타트업을 양성하고 있는 곳으로 유망한 스타트업들만이 철저한 심사과정을 거쳐 입주할 수 있다.

온디바이스 AI 인공지능 원천기술인 딥러닝 모델 경량화 기술을 보유하고  노타는 독일에서 올라운 속도로 성장해가고 있다. ©️ nota.ai

대학의 연구자로 소속되어 일하다가 이제 막 스타트업에 발을 들여 실생활에 필요한 기술 개발을 시작한 염슬기 박사를 만나 한국인 과학자로서 독일에서 연구와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박사학위 마친 지 3일 만에 받은 러브콜

염슬기 박사는 고려대학교 뇌공학과의 패턴 인식과 머신러닝 랩(Pattern Recognition and Machine Learning Lab)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곳에서는 주로 패턴인식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고차원의 영상처리(카메라 영상) 및 신호처리(뇌 신호) 기법을 개발하고 이에 기반한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연구 목표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뇌 신호 분석을 통해 생각만으로 외부 장치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 (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 카메라 영상 분석을 통해 사람의 행동 분석 및 예측이 가능한 인지 컴퓨터 비전(Cognitive Computer Vision) 기술, 사람 두뇌를 모방하는 딥 머신 러닝(Deep Machine Learning) 기술, 환자의 자발적인 신경 재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지능형 신경 재활(Neuro-Rehabilitation) 기술이 주요 분야이다.

염 박사는 이 중에서도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로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18년 당시 ‘세계 수준의 연구 중심대학(WCU)’ 사업으로 고려대 초청 교수로 와 있던 베를린 공대(TU Berlin)의 클라우스-로베어트 뮐러(Klaus-Robert Müller) 교수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그렇게 박사학위를 받은 지 3일 만에 베를린 공대의 포닥으로 채용되었다.

베를린 공대에서 염 박사가 합류하게 된 곳은 머신 러닝 그룹이었다. 이곳은 독일에서 머신 러닝 연구로 손에 꼽힐 만큼 연구 성과가 좋고, 연구 환경도 좋은 곳이다.

염 박사는 학·석사생들에게 머신러닝에 대해 강의도 하고 EU의 큰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면서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였다. 베를린 공대의 연구실에서는 주로 뇌를 컴퓨터 인터페이스와 연결하고, 압축 및 경량화 기술과 연관된 것들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특히 당시는 ECG 심전도로 사람의 질환을 측정하는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염 박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함과 동시에 개별 연구 분야로 경량화 기술 중 프루닝 기술을 연구하였다.

염슬기 박사는 박사학위를 받은 지 3일 만에 채용된 베를린 공대에서 프루닝 기술을 연구했다. ©️ 염슬기

기존에는 주로 딥러닝 모델의 의사결정 과정을 들여다보고 해석하여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찾아나가는 방식인 인터프리테이션 방식에 대해 주목했는데, 포닥을 위한 연구 주제를 찾다 보니 경량화 기술 중 프루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즉 프루닝(Pruning)은 ‘가지치기’라는 말의 뜻처럼 의미가 있는 것은 남기고 의미가 없는 것은 쳐 내는 기술이다. 크게 보면 인터프리테이션의 일종이지만, 딥 러닝이 다소 무겁게만 진행되고 있다고 느끼던 차에, 복잡하게 얽힌 신경 다발 중 어떤 것들을 끊어나가면 되는지 찾아 나가는 기술인 프루닝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염 박사는 프루닝을 통한 경량화를 염두에 두면서도 성능은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데에 몰두하였다.

같은 곳을 바라보던 노타와의 만남

베를린 공대에서 개별 연구와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연구에서 얻는 기쁨도 컸지만, 왠지 모를 갈증도 더욱 커졌다. 팀 프로젝트에는 통상 5~6명이 참여한다. 하지만 일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 팀 멤버들과 염 박사는 기본적인 마인드가 다르다는 점을 많이 느꼈다.

“저는 뭔가를 하면 그 하나에 집중해서 푹 빠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인데, 다른 멤버들은 한 번에 여러 개를 참여하며 단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2주 후 논문 마감이 있어도 긴 휴가를 떠나는 마음이 이해되질 않았어요.”

물론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지만, 팀 차원에서 바라보자면 아쉬움이 많았다. 즉 동료들이 한 목표를 향해 같이 달려가고 있지 않고, 염 박사 혼자만 열심히 뛰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논문에는 태만했던 사람도 휴가를 다녀와 참여를 못 했던 사람도 최종적으로 모두 함께 논문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의아했다.

팀 연구에서는 무엇보다도 함께 성장해간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 크다. 하지만 베를린 공대에 있던 2년 반 동안 본인이 열심히 하고 연구에 집중하는 만큼 팀에서 느끼는 박탈감은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 그런 고민이 있던 중, 노타의 채명수 대표를 만났다.

채명수 대표는 당시 유럽의 법인 설립에 대해 고민하면서 베를린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적합한 지역을 물색 중이었다. 그러면서 현지의 과학자들을 만나고 동향을 모니터링하던 중 베를린 공대에서 염 박사를 발견하고 간단한 커피 브레이크를 제안했다.

염 박사는 그전에도 종종 헤드헌터들의 연락을 받았던 터였다. 하지만 현재의 연구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했고, 이직을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헤드헌터들의 제안에는 단 한 번도 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노타의 채 대표가 “노타는 모델 압축을 통해 경량화를 한다.”는 말을 했을 때,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염 박사는 “‘내 연구랑 비슷하네?’ 하면서 시작한 단순한 관심에서 서로 연구하는 기술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며 노타와의 만남을 회상하였다.

그때부터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암스테르담은 베를린보다 한국 기업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여러모로 회사 설립에 용이함이 있었다. 또 베를린보다 국제적인 색이 강한 도시로 영어가 거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도 유럽의 스타트업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 독일이라는 국가의 파워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염슬기 박사가 베를린에 있다는 점이 노타가 베를린에 법인을 설립하게 된 이유로 작용하였다.

노타와 바라보는 미래

노타는 2019년 세계 모바일·ICT 박람회인 스페인의 MWC에 참여했다. 당시 법인 설립 전이었고, 유럽 현지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참여했으나,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들의 관심을 얻었다. 대다수의 기업이 클라우드 기반의 기술을 선보였지만 노타만이 에지 디바이스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노타는 세계 모바일·ICT 박람회인 스페인의 MWC에 참여해 노타만의 에지 디바이스의 가능성을 검증했다. ©️ nota.ai

노타는 AI 모델 자동 경량화 플랫폼인 넷츠프레소(NetsPresso)를 개발했다. 염 박사도 이 넷츠프레소를 바탕으로 노타에서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유럽에서 경량화 기술은 미국, 중국에 비해 아직 낯선 상황이다. 염 박사가 속해있던 유럽 최고의 머신 러닝 랩인 베를린 공대의 머신러닝 그룹에서도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경량화를 본격적으로 하는 연구자는 없다.

하지만 유럽의 강점도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연구에 대한 오픈 마인드 자세를 갖추고 있고, 기초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투자나 기술의 고도화를 신속히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또한 기술 개발에 관심이 많지만 투자를 얻어내기까지의 과정이 유럽보다는 훨씬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의 입장에서도 유럽은 가능성의 땅이엇다.

외국에서 포닥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교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편이 가장 안정적이고, 나라의 연구 기금을 통해 풍족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길을 택한 염 박사에게 스타트업에서 일하기 때문에 좋은 점과 힘든 점에 관해서 물었다.

염 박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 도전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대기업에서 이미 짜인 틀 안에서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닌, 스타트업에서는 회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연구개발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 고 답하였다.

그리고 “아직 힘든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굳이 말하자면 누가 하라고 해서 연구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경각심이 없으면 한없이 늘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부분을 염두해 더 역동적으로 일하려고 한다.” 고 염 박사는 말했다.

결국 이것이 염 박사가 그렸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팀’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비전을 기반으로 제조, 건설, 유통,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노타와 염슬기 박사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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