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강소특구, 홍릉 지역 재도약의 계기로

[TePRI Report] Zoom IN

몇 해 전 학회 참가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꽤나 오랜만에 방문하였기에 시간을 쪼개어 케임브리지 내 여러 곳을 둘러보았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단일 연구소로는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29명)를 배출한 캐번디시 연구소(Cavendish Laboratory)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이들에게는 그 이름만으로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연구소이겠지만, 이를 소개하자면 1874년 6300파운드를 후원한 영국의 물리·화학자인 헨리 캐번디시(Henry Cavendish)의 이름을 기려 물리학과 내에 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입자물리학, 핵물리학, 양자역학으로 대표되는 현대물리학 기반을 다진 과학자가 캐번디시에서 다수의 연구를 시작하였다.

물리, 화학, 생물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과학사와 교과서에 이름을 남긴 많은 이들이 캐번디시 연구소 출신이다. ⓒ위키미디어

초대 소장(Cavendish Professor of Physics)은 전자기학 이론을 창시한 맥스웰(J. Maxwell) 교수였으며, 전자와 동위원소를 발견한 톰슨(J. Thomson, 1906년 물리학상), 핵분열 실험을 보여준 러더퍼드(E. Rutherford, 1908년 화학상), 방사선동위원소를 측정한 소디(F. Soddy, 1921년 화학상), 질량분석기를 개발한 애스턴(F, Aston, 1922년 화학상), 원자구조와 양자역학에 기여한 보어(N. Bohr, 1922년 물리학상), 중성자를 발견한 채드윅(J. Chadwic, 1935년 물리학상), 전리층 발견한 에드워드 에플턴(E. Appleton, 1947년 물리학상), 양성자 가속기를 개발한 콕크로프트와 윌턴(J. Cockroft and E. Walton, 1951년 물리학상) 그리고 가장 유명한 DNA 나선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J, Watson and F. Crick, 1962년 생리의학상) 등 물리, 화학, 생물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과학사와 교과서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모두 캐번디시 연구소 출신이다.

캐번디시 연구소는 개소 이후 상당 기간 영국 내에서도 규모가 작고, 성과가 미미했다. 그랬던 연구소가 20세기 초 급격한 성장을 이룬 것은 무엇보다 문호의 개방에 있다. 설립 이후 20년간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케임브리지 학부 출신 졸업생에게만 연구원의 자격이 주어졌는데, 1895년 이에 대한 장벽을 없애 국적, 출신학교, 학위에 관계없이 뚜렷한 연구 실적을 갖고 있는 연구원을 채용하도록 바뀌었다. 이를 기점으로 전 세계 인재가 캐번디시에 모여들게 되었으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절반이 넘는 연구원이 해외 연구자로 구성되어, 명실상부한 다국적 연구소가 되었다. 우수한 인재를 바탕으로 학문과 지식의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미개척 분야를 탐구하여 폭발적인 연구성과와 함께 걸출한 스타 과학자를 다수 배출하게 된다.

연구소가 20세기 초 급격한 성장을 이룬 것은 무엇보다 문호의 개방에 있다. 설립 이후 20년간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케임브리지 학부 출신 졸업생에게만 연구원의 자격이 주어졌는데, 1895년 이에 대한 장벽을 없애 국적, 출신학교, 학위에 관계없이 뚜렷한 연구 실적을 갖고 있는 연구원을 채용하도록 바뀌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앞서 노벨상 수상자의 기여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실험물리학의 메카답게 이론에 그치지 않고, 과학탐구에 필요한 실질적인 장치와 장비의 개발이 병행되고 있는 것도 이 연구소만의 특징이다. 현재에도 캐번디시 연구소는 과학의 실질적인 응용이라는 측면에서 연구성과를 산업과 연계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연구를 지원하는 기업의 후원과 협력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145년이라는 긴 역사를 갖는 연구소의 연구소장이 현재까지 9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 내 연구소라는 것과 현대물리학의 태동, 발전기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그 무렵의 다른 연구소를 살펴보아도 긴 기간 연구소장의 리더십을 유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학도시인 케임브리지는 유서 깊은 대학(college)의 전통적인 건물이 들어서 있는 중심가와 새로운 학문분야로 확장하여 현대식 연구동에 재배치되어 있는 학과(department)가 위치한 지역이 사뭇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캐번디시 연구소가 속해있는 물리학과도 원래 케임브리지 중심가의 건물에 있었는데, 1974년 설립 100년 만에 웨스트 케임브리지 지역의 현대식 건물로 이전하였다. 이마저도 연구시설의 노후화와 공간 부족 문제가 발생하여, 인근에 새로운 연구소(Cavendish III)를 건설하고 있다.

캐번디시 연구소가 속해있는 물리학과도 원래 케임브리지 중심가의 건물에 있었는데, 1974년 설립 100년 만에 웨스트 케임브리지 지역의 현대식 건물로 이전하였다. 이마저도 연구시설의 노후화와 공간 부족 문제가 발생하여, 인근에 새로운 연구소(Cavendish III)를 건설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케임브리지 대학 외곽은 대학 출신 기업을 중심으로 다수의 과학 단지가 성장하여, 현재는 반경 30km 정도 규모를 갖는 케임브리지 클러스터로 조성되어 있다. 케임브리지의 우수인재가 클러스터에 자리 잡아 지식과 기술이 대학과 연구소에서 산업으로 흘러가고, 기업의 자금이 다시 대학으로 들어오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었다. 이를 통해 케임브리지 클러스터는 영국 내에서 가장 많은 혁신기업이 입주하고 있으며, 대학 출신 기업 1500개 이상, 고용인력 20만 명 이상, 매출 50조 원이 넘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견줄만한 거대한 혁신 클러스터가 되었다.

지난 7월 말, 홍릉 지역이 강소특구로 지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전임 문길주 원장님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홍릉에 위치한 연구소와 대학을 회원으로 홍릉포럼이 발족되어 지역 활성화를 논의한 지 근 10년 만에 하나의 결실이 맺어진 것이다. 수도권 집중화 방지를 위하여 그동안 서울에는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자금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고, 높은 규제의 장벽이 세워져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강소특구지정은 홍릉이 갖고 있는 기반 시설과 인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성장 잠재력과 기여에 대한 기대가 우려를 상쇄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7월 말, 홍릉 지역이 강소특구로 지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홍릉포럼이 발족되어 지역 활성화를 논의한 지 근 10년 만에 하나의 결실이 맺어진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일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있었지만, 홍릉은 여전히 KIST를 대표로 하여 많은 연구소, 고유한 특색을 갖는 대학과 병원이 위치하고 있어, 글로벌 혁신 클러스터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은 장점을 갖고 있다. 이번 강소특구의 핵심 분야인 바이오, 의료를 필두로 홍릉 지역 내 기관이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역사회 및 주민과의 연계이다. 연구소나 대학의 운영이 그 특성상 부득이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지역사회와의 협력이 부족하고, 보이지 않은 장벽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홍릉 강소특구가 위치한 동대문구, 성북구 그리고 지역주민과의 연계 사업을 통해 특구의 활동이 지역의 혜택으로 자연스럽게 순환되어야 지역이 발전되고, 지역이 발전되어야 대학과 연구소에서 배출된 인재가 떠나지 않고 클러스터 내에 다시 둥지를 틀 수 있다. 그래야만 비로소 자가 성장하고 확장되는 혁신 클러스터가 될 수 있다.

아무쪼록 이번 홍릉 강소특구 지정을 도약판으로 삼아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 단지인 홍릉이 다시 비상하여 지역사회, 나아가 국민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하고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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