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1,2019

일본의 눈으로 과학세상을 보다

70년대 과학소설의 성과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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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나온 과학소설 문고판 가운데 그나마 주목할 만한 것은 아이디어 회관에서 펴낸 ‘세계SF명작(총60권)’과 동서추리문고에 포함된 과학소설들(총 11권)이다. 전자는 무려 60권에 달하는 단행본에 과학소설만 담았다는 전문성에서, 그리고 후자는 비록 추리문고에 부속물로 딸려있는데다 일본어 중역판이었지만 어른용 입맛에 맞는 완역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76~1978년 사이에 완간된 아이디어 회관의 ‘세계SF명작’은 과학소설 문고판 중 최대 타이틀을 자랑했지만 국내 창작물 10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일본의 ‘SF어린이 도서관(SFこども図書館; 1976년; 총 26권)’과 ‘SF세계명작(SF世界の名作; 1968년 총 26권)’ 등에서 임의 선별한 것이다1.

오늘날의 미적 감각으로 봐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표지와 삽화 또한 원본에서 무단으로 퍼왔다. 아이디어 회관은 원래 프라모델 판매업이 주업종으로 이 문고판을 낸 뒤에는 사명을 아이디어 과학으로 바꿔 다시 애초의 업종으로 돌아갔다. 이 문고판은 이미 수차례 번역 출간된 줄 베르느와 H. G. 웰즈 그리고 코난 도일의 유명한 고전들 외에도 펄프잡지 시대의 영미권 과학소설들을 다수 포함하였고 이중 10권은 ‘학생과학’에 연재되었던 작품들을 포함한 국내 창작과학소설에 할애하였다.

개중에는 처음부터 청소년용으로 집필된 소설도 있지만, 어른용 작품의 경우에는 어린이용으로 번안하면서 분량을 대폭 줄이기 위해 인물과 사건들을 상당수 들어내 원작의 취지가 흐려지는 경우가 잦았다.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동서추리문고(東西推理文庫)는 이른바 ‘추리문고’란 이름을 내걸었지만 1978~1980년 사이 일부 해외 과학소설을 끼워 넣었다. 비록 일본의 가도카와 문고나 하야카와 문고에서 나온 일어 번역판을 중역한 버전으로 작품 말미의 해설까지 그대로 우리말로 옮겼을 정도지만 어른용 과학소설을 지속적으로 완역했다는 점에서 나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는 구한말 이래 1970년대 말까지 이 기준을 충족시킨 번역 작품들이 사실상 드문 까닭이다.

동서추리문고에 수록된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문학성과 대중성을 고루 안배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여기에는 H. G. 웰즈(Wells)의 ‘타임머신(Time Machine; 1875년)’과 아서 C. 클락(Arthur C. Clarke)의 ‘지구유년기 끝날 때 Childhood‘s End; 1953년’, 에드가 라이스 버로우즈(Edgar Rice Burroughs)의 ‘화성의 프린세스(The Princess of Mars; 1917년)’, A. E. 밴 보긋(van Vogt)의 ‘우주선 비이글호(The Voyage of the Space Beagle; 1939년)’, 프레드릭 브라운(Fredrick Brown)의 ‘미래세계에서 온 사나이(Nightmares and Geezenstacks; 1961년)’,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멜랑콜리의 묘약(A Medicine for Melancholy; 1959년)’ 등 영미권의 주요 작품들이 포함되었다.

또한 알프레드 베스터(Alfred Bester)의 ‘타이거, 타이거(Tiger, Tiger; 1959년)’, 줄 베르느(Jule Verne)의 ‘지저여행(Voyage au Center de la Terre; 1864년)’,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년)’, A. 코난 도일(Conan Doyle)의 ‘마라코트 심해(The Maracot Deep; 1929년)’,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연대기(The Martian Chronicles; 1946년)’ 등도 중역판의 한계에도 불구, 번역의 질이 2000년대에 번역된 과학소설들 못지않다2.

청소년용 문고판 이외의 과학소설

문고판은 아니지만 이 시기 나온 주요 번역 작품으로는 1979년 모음사에서 펴낸 아서 C. 클락의 ‘2001년 우주 오디세이(2001 Space Odyssey)’와 1973년 휘문출판사에서 펴낸 고마츠 샤쿄의 ‘일본침몰(日本沈沒)’을 언급할 만하다. 둘 다 어른용으로 완역되었다. 후자는 1950년대부터 과학소설을 번역해온 안동민이 우리말로 옮겼으며 제목은 ‘일본열도 침몰하다’로 바뀌었다.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과학소설 작가 중 한 사람인 고마츠 사쿄의 대표작 ‘일본침몰’은 일본에서만 4백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보니 우리나라에도 그 인기를 등에 업고자 일본어판이 나온 해(1973년)에 서둘러 번역되었고 영화로도 일본에서 두 차례 만들어졌다. 현재까지 우리말 판본이 적어도 3종 이상 나왔다. 다만 이 작품에 대한 국내출판계의 관심은 과학소설이란 장르 자체보다는 일본의 블록버스터 소설에 대한 흥행 기대에 맞춰져 있었기에 ‘일본침몰’이 일본 과학소설의 본격적인 소개를 위한 창구 역할을 해주지는 못했다.

이미 청소년용으로 간행된 바 있지만 다시 어른용으로 완역되어 나온 작품들로는 ‘80일 간의 세계일주’와 ‘타임머신’ 그리고 ‘투명인간’ 등이 있으며, 처음부터 어른용으로 나온 ‘멋진 신세계’와 ‘잃어버린 지평선’ 같은 작품들도 계속 재간되었다.

한편 현대 과학소설의 효시로 불리는 메리 쉘리의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도 1970년대 말 출간되었으나 아쉽게도 문고판에 편입된 아동용 축약본이었다. 이 작품의 완역본은 1993년에 가서야 국내에 선보이게 된다.(파피루스 간행)

이 시기 번역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다수의 청소년물은 아동문학가나 문인들이, 그리고 소수의 어른용 완역본은 학자와 언론인, 전문번역가 등이 맡았다. 과학소설이 원래 태동한 곳은 유럽이고 양적으로 크게 성장한 곳은 미국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년용이건 어른용이건 간에 해외의 과학소설들이 대부분 일본인들이 번역하고 해설을 붙인 판본을 우리말로 옮기는데 그치다보니 세계과학소설계의 조망을 일본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계가 있었다3.

창작 과학소설로는 아이디어 회관의 ‘세계SF명작’에 수록된 장편 10작품과 한낙원 그리고 안동민의 작품이 있다.

‘세계SF명작’에 포함된 작품들은 ‘우주함대의 최후’, ‘마의 별 카리스토’, ‘황혼의 타임머시인’, ‘텔레파시의 비밀’, ‘지문의 비밀’, ‘북극성의 증언(1966년)’, ‘관제탑을 폭파하라(1968년)’, ‘악마박사’, ‘4차원의 전쟁(1970년)’, ‘화성호는 어디에’ 등으로 서광운을 위시한 한국SF작가클럽 회원들의 작품들이다.

한낙원과 안동민은 각자의 창작 과학소설 중편을 ‘2064년, 우주소년 삼총사(1972년)’란 이름으로 합본해 한권으로 펴냈다.(동민문화사 간행) 한낙원은 ‘2064년’을, 안동민은 ‘우주소년삼총사’를 지었다.





1. http://homepage1.nifty.com/maiden/jsm/iwasaki.htm

2. 일례로 문학평론가 김병걸(金炳傑)이 중역한 ‘지구유년기 끝날 때’는 2001년 시공사의 그리폰북스에서 정영목이 옮긴 번역판보다 훨씬 매끄럽고 고급스럽다. 할 수 없이 시공사판은 출간 전에 담당편집자가 동서추리문고판을 참고했을 정도다.

3. 박상준, “한국에서 SF는 어떻게 다가왔는가”, 아웃사이더(통권 15호), 2003년, 50 ~ 53쪽

  • 고장원 SF 평론가·작가, <세계과학소설사> 저자 다른 기사 보기
  • 저작권자 2011.05.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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