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9,2019

새 깃털 이용해 레이저 만든다

자연이 가르쳐준 생체모방기술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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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동식물이 보여주는 진기한 능력을 본떠 기계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 즉 생체모방기술이라 부른다. 도마뱀붙이를 연구해 벽을 기어오르는 로봇을 만들거나 달라붙는 씨앗을 흉내내 벨크로 접착기술을 개발하는 식이다.

이번에는 새의 깃털을 이용해 레이저를 만들어내 화제다. 차오후이(Hui Cao) 예일대 물리학 교수는 응용물리학과 연구진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효율은 높이고 제조비용은 낮춘 새로운 레이저 제조 방식을 찾아냈다. 새 깃털에 무수히 뚫린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을 흉내낸 덕분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 물리학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최근호에 실렸다.

새 깃털이 빛나는 원리 활용해 레이저 제작

새들 중에는 현란하고 밝은 색채를 자랑하는 부류가 있다. 앵무새, 물총새, 어치, 파랑새 등이다. 비결은 나노미터 크기의 무수한 구멍이다. 깃털에 뚫린 공기구멍에 빛 알갱이인 광자가 부딪히면 ‘양자 점(quantum dot)’이라 불리는 수많은 미립자가 이에 반응하면서 파장이 짧은 파란색과 자외선이 생겨나는 것이다.

조류학자인 리처드 프럼(Richard Prum) 예일대 교수는 사이언스뉴스(Science News)와의 인터뷰에서 “공기구멍의 크기와 간격 덕분에 새들마다 독특하고 유일한 색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물리학자들이 레이저를 만드는 데 이 방식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레이저가 만들어지려면 빛 알갱이가 물질 내에 들어와 오랫동안 머물러야 한다. 최근에는 특수 제작된 얇은 유리판에 무수히 많은 구멍을 뚫어 빛 알갱이를 가두는 방식으로 레이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연구진은 유리 대신 갈륨비소로 두께가 190나노미터(nm)에 불과한 판을 만들고 공기구멍을 뚫었다. 입체적인 깃털의 표면을 2차원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재료로 쓰인 갈륨비소는 반도체의 원료로 빛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고 증폭시키는 작용 때문에 광학 분야에서 널리 사용된다.

문제는 구멍 사이의 간격이었다. 구멍을 촘촘하고 일정하게 배열하면 레이저 지속시간이 짧아져 제조비용이 높아진다. 무작위적으로 배열하면 효율이 낮았다. 연구진은 새의 깃털에서 힌트를 얻어 중간 타협점을 찾아냈다.

무작위 배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정 법칙에 따라 235~275나노미터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근적외선 범위에 해당하는 1천나노미터 길이의 파장을 지닌 레이저가 생겨났다. 무작위 배열로 만든 레이저보다 효율도 높았다.

게다가 구멍 간격을 조절함으로써 색깔을 바꿀 수도 있었다. 연구책임자인 차오 교수는 와이어드(Wired.com)와의 인터뷰에서 “새들이 단거리 질서(short-range order)를 이용해 깃털 색깔을 바꾸는 방식을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거리 질서는 언뜻 무질서해 보이지만 짧은 거리의 범위에서는 규칙성이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기존의 레이저는 루비, 이산화탄소, 아르곤 등의 매질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깃털의 공기구멍 간격을 변화시켜 매질 없이도 색깔을 바꾼 것이다.

자연의 놀라움 활용한 생체모방기술의 발전

이번 연구에 대해 물리학자와 생물학자 모두가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물리학적으로는 레이저의 제작단가를 낮추면서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유럽 비선형분광학 연구소의 디드릭 비어스마(Diederik Wiersma) 연구원은 사이언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예측가능성과 제조용이성이라는 두 극단 간의 타협점을 찾아낸 셈”이라고 평가했다.

생물학자들은 자연의 정교함에 다시 한 번 놀라고 있다. 매트 쇼키(Matt Shawkey) 미국 애크런대 생물학 교수는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새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러한 깃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며 “수천 개의 깃털을 이용해 저렴한 해결책을 찾아낸 새들의 지혜를 레이저 연구에 적용하면 더 큰 성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오 교수는 “자연은 우리에게 ‘너무 완벽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며 균일하지 않은 상태가 오히려 레이저의 효율을 높여주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깃털의 구조와 원리를 3차원으로 구현해 더욱 저렴하고 실용적인 레이저를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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