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3,2019

초창기 한국SF의 선구자들

한국SF작가클럽의 발족과 서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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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시장 환경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과학소설을 연재하는 과학잡지들의 등장이다. 1961년 한국과학교육연구회에서 창간한 ‘과학과 생활’에 국내외 과학소설이 다수 게재되었으며 1962년 창간된 과학잡지 ‘과학세기’에는 달 여행객들의 조난사고를 다룬 아서 C. 클락의 장편 ‘달 먼지 폭포(A Fall of Moondust)’가 번역 연재되었다. (‘과학세기’는 1950년대에 창간되었으므로 이 잡지에 과학소설이 처음 게재된 때는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

과학잡지의 과학소설 소개는 ‘과학세기’가 1964년 ‘학생과학’이란 제호로 바꿔 재창간되면서 더욱 활발해진다. ‘과학세기’가 전문 과학지식을 딱딱하게 전달하다보니 겪게 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새 출발한 ‘학생과학’은 타겟을 청소년 및 일반인으로 포지셔닝하여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과학 잡지를 겨냥했다. 그 결과 이 잡지에는 해외 작가의 작품들 뿐 아니라 국내 작가들의 창작 과학소설들이 꾸준히 실리게 되었다. 특히 레이먼드 F. 존스(Raymond F. Jones)의 장편 ‘합성 뇌의 반란(The Cybernetic Brains; 1950년)’ 같은 경우에는 소설 뿐 아니라 만화로도 연재되어 보다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녔다.

한국SF작가클럽의 발족

이러한 잡지사의 수요는 결과적으로 국내 최초의 SF 애호가 모임이라 할 수 있는 ‘한국S작가클럽’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당시 잡지사측으로부터 과학소설 연재를 의뢰받은 서광운(1928년~1998)은 한국일보 과학부 기자로 평소 과학과 SF에 애정이 많은 전문가였으나, 혼자 연재량을 감당할 수 없어 이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을 나누던 지인들을 한데 규합하여 일종의 창작 스터디 그룹을 결성한 것이다. 1968년 4월 15일 결성된 이 작가클럽의 창립회원은 회장인 서광운 외에 오민영, 강민, 지기운, 이동성, 서정철, 강승언, 최규섭, 김학수, 윤실, 이흥섭, 최충훈 그리고 만화가 신동우 등으로, 직업상의 면면을 보면 언론인과 만화가, 삽화가 그리고 아동문학 작가들이었다. 이들은 매월 정기모임에서 테마별 분과 활동을 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창작 및 번역 소개 작업을 했다.

이 무렵 잡지에 실렸던 한국SF작가클럽 회원들의 창작 및 번역 작품들은 해동출판사에서 ‘한국과학소설전집’(총 10권)으로 펴냈으며, 후일 1976년부터 1978년 사이 아이디어 회관에서 발행한 ‘세계SF명작’(총 60권) 문고판에 포함되어 재간행 되었다. 잡지 연재에 이은 단행본 출간은 수익모델의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 차원에서 바람직한 선례라 하겠다.

한편 서광운은 1968년 아폴로 11호가 채취한 월석의 세계 순회전시회가 열리자 한국에서도 월석이 전시될 수 있도록 주선함으로서 국내 과학과 과학소설 붐에 기여하였다. 언론인 출신다운 수완을 발휘하여 그는 한국SF작가클럽 명의로 미문화원과 문화공보부에 요청한 끝에 마침내 덕수궁에서 전시회가 성사되게 했던 것이다. 한국SF작가클럽의 결성과 관련하여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이 클럽이 결성되기 십여 년 전부터 이미 과학소설을 창작 내지 번역 소개해온 한낙원과 안동민이 회원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낙원과 안동민이 서광운 및 그의 지인들처럼 아동문학에 깊이 관여해왔다는 점에서, 이는 이때까지만 해도 SF공동체가 아직 개인적인 친분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렀음을 시사한다.

끊겨진 과학잡지와 과학소설간의 징검다리

‘학생과학’은 과학소설을 권말부록 또는 별책부록 형태로 연재했다. ‘학생과학’에는 종종 SF만화도 실렸으며 만화는 해외의 과학소설을 원안으로 한 것이 주종을 이뤘으나 신동우의 ‘우주마왕’에서 보듯이 창작SF만화도 실렸다. 한국 SF작가클럽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국내 과학소설의 저변 확대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으나, 청소년문학의 틈새시장 공략방식의 한계와 주 발표무대였던 ‘학생과학’이 재정난에 시달려 타 언론사에 인수되는 바람에 존립기반을 잃고 점차 유명무실해졌다.


이후 2000년대 후반 한국과학문화재단(현재 한국과학창의재단)이 후원하고 동아사이언스가 주최한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에서 신인작가들이 다수 배출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과학소설 작가들이 집단으로 시장에 등장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기성작가가 과학소설 창작에 계속 정진하게 하는 동시에 신진작가를 유입하자면,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과학소설 독자층을 일정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정보로 계속 환기시켜주자면 과학소설 전문잡지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바로 이 앞 단계가 과학잡지에 과학소설이 실리는 형태다. 미국 과학소설의 아버지 휴고 건즈백은 과학잡지를 발행하다 과학소설 잡지 발행인이자 편집자로 변신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잡지에 과학소설이 꾸준히 실리면서 해외와 같은 진화를 꿈꿀 법 했으나, 그 징검다리가 오래가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 고장원 SF 평론가·작가, <세계과학소설사> 저자 다른 기사 보기
  • 저작권자 2011.05.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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