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8,2019

과학과 종교, 손잡을 수 있을까

템플턴상 받은 과학자에 찬반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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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Templeton Prize)의 올해 수상자로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마틴 리스(Martin Rees) 경이 선정되면서 영·미 과학계가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템플턴상은 금융가 존 템플턴(John Templeton, 1912~2008) 경이 1973년 제정한 이후 근원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인간의 영적 진보에 기여한 사람에게 매년 수여되는 상이다.

초창기에는 테레사 수녀, 빌 그레이엄 목사 등 종교인사에게 수여되었지만 최근에는 과학자들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1995년에는 물리학자이자 천체생물학자인 폴 데이비스(Paul Davies)가, 2000년에는 양자전자역학의 3가지 버전을 하나로 통일시킨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이 수상했다.

2011년 수상자인 마틴 리스 경은 남작 직위를 지닌 캠브리지대 출신 원로 과학자로, 지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왕립과학학회(Royal Society) 회장을 역임했으며 왕립천문학자(Astronomer.Royal) 칭호를 보유하고 있다. ‘태초 그 이전’, ‘여섯 개의 수’ 등의 베스트셀러를 비롯해 400여편의 논문과 저술을 발표해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푸는 데 앞장서왔다.

‘비열한 배신자’라는 과격한 표현도 들어

일부 과학자들은 이번 수상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해리 크로토(Harry Kroto) 경은 네이처지와의 인터뷰에서 “1백만파운드(우리돈 약 18억원)라는 큰 상금으로 과학자를 현혹하는 템플턴상”이라고 비난했고, 로렌스 크라우스(Lawrence Krauss) 아리조나주립대 물리학 교수는 “템플턴 재단이 리스 경 같은 위대한 과학자의 명성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리스 경에 대해 ‘비열한 배신자’라 욕하는 글을 펴내기도 했다.

‘배신자(quisling)’는 2차대전 당시 적국의 파시스트 정권에 협력한 사람을 뜻하며 우리말의 ‘친일파’라는 모욕과 비슷한 수준이다. 과학은 선한 독립군이고 종교는 악한 적군이라는 논리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도킨스는 신간 ‘만들어진 신’에서 종교가 끼친 해악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공공연히 반감을 드러내왔다.

다윈주의(Darwinism)를 따르는 진화론자들이 종교에 대해 격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창조론(creationism)’ 때문이다. 기독교 등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조물주의 뜻에 따라 한날 한시에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천지창조설을 주장하는데, 일부 종교인들은 수십억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거치며 생명체가 진화를 거듭해왔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며 배척한다. 증거를 토대로 탄탄한 이론 체계를 구축해온 진화론자들이 불만을 가질 만하다.

게다가 지난해 수상자인 프란시스코 아얄라(Francisco Ayala) 미국 UC어바인대 생물학 교수가 한때 도미니크 수도회의 사제였으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학교 과학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드러나 템플턴상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기도 했다.

“도그마를 의심하더라도 대화는 유지하자”

리스 경은 지난달 23일 뉴스테이츠먼(New Statesman)에 실린 논설 ‘과학과 종교가 적군이 될 필요가 있는가(Science and religion don’t have to be enemies)’을 통해 과학자로서 템플턴상을 받는 이유와 자세에 대해 밝혔다.

그는 “도킨스가 자신을 ‘비열한 배신자’라 불렀다는 것을 안다”며 “도킨스 추종자들의 표현으로는 올곧지 못한 타협주의자”라고 담담히 인정했다. 그러나 “예배에는 기꺼이 참석하지만 신의 존재는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며 “도그마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는 회의주의자”라는 점도 강조했다. “명백한 증거를 무시하는 창조론에 반대한다”고도 밝혔다.

또한 “국소적인 문제에만 매달리느라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줄 모르는 것이 오늘날 과학자들이 직면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진화론자들에게도 조언을 건넸다.

그는 찰스 다윈이 스위스계 미국인 생물학자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에게 보낸 편지 중 “개가 뉴턴의 머릿속을 짐작하는 일이 더 쉬울 정도로 인간의 지능에 비해 너무나 심오한 문제들이 많으니 모두가 각자의 신념대로 살아가게 두자”는 문장을 인용하면서 “종교를 인정하는 찰스 다윈의 태도는 오늘날 다윈주의자들의 주장과 상충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과학과 종교가 서로를 헐뜯거나 대립하지 않고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는 “교사들이 종교와 진화론이 서로 모순된다는 완고한 입장을 유지한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오히려 종교에 집착하거나 과학을 거부하게 될 것”이라 지적하며, 파괴와 학대를 일삼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대항하는 연대를 조직하기 위해서라도 주류 종교와는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미에서 “인류가 현명한 선택을 내리려면 자연과학자뿐만 아니라 환경론자, 사회과학자, 인문학자들과 협력해야 한다”며 “21세기의 과학이 제공하는 지식을 기반으로 나아가되 과학 혼자서 모든 일을 하려 하지 말자”고 조언했다.

과학과 종교의 공존에 대해 찬반 나뉘어

평소 리스 경은 스스로를 ‘흐리멍텅하고 지루한 의견을 내는 사람’으로 부를 만큼 겸손하고 신중한 성격이다. 그러나 철학이나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해왔다. 지난해 스티븐 호킹이 신간 ‘위대한 설계’를 통해 “철학은 죽었고 물리학이 승리했다”고 외친 것에 대해 “호킹이 철학책을 얼마나 읽어봤기에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응수했을 정도다.

이번 리스 경의 수상과 논설에 대해 과학계의 의견은 다양하다. ‘종교의 종말’을 저술해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반종교 운동을 이끄는 과학자 샘 해리스(Sam Harris)는 “과학과 종교는 서로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과학은 다른 분야와 어울리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업적을 이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션 캐롤(Sean Carroll) 캘리포니아 공과대 물리학 교수는 “과학과 종교가 합심해서 공동 연구를 진행할 계기가 되었다”면서도 “논란을 자초함으로써 이름을 알리려는 템플턴 재단의 광고전략”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과학과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리스 경의 주장에 찬성하는 의견도 많다. 영국 가디언지의 논설위원인 마이클 화이트(Michael White)는 “다윈, 패러데이 뉴튼 등 위대한 과학자들도 신앙을 가졌다”고 지적했고, 과학과 철학 분야 칼럼니스트 마크 버논(Mark Vernon)은 “이번 사건으로 과격한 진화론자들의 인기가 시들 것”이라며 “훗날 역사책에는 ‘종교 전쟁의 전환점’이라 기록될 것”이라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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