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5,2019

일본 근대 과학의 선구자들(2)

과학기술 넘나들기(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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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의 난학자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內, 1728-1779), 난학자이자 의사였던 오가타 고안(緒方洪庵, 1810-1863)과 같은 선구자들의 활동을 기초로 하여, 일본의 근대적 과학기술은 메이지유신 시대를 거치면서 급속히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 시대의 대표적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1835-1901)는 서양의 자연과학과 문물 등을 소개하고 보급하는 여러 권의 저술을 통하여 후대의 과학기술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일본 최초의 물리학박사 야마카와겐지로 ⓒ 위키미디어

일본 최초의 물리학박사 야마카와겐지로 ⓒ 위키미디어

야마카와 겐지로(山川健次郞, 1854-1931) 등이 대표적인데, 메이지 유신에 반대하는 지역의 소년병 전투부대인 백호대 출신이었던 그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저서를 읽고 미국에 유학하여 일본인 최초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물리학자로서 독창적인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서양의 최신 물리학을 일본에 도입하는 데에 공헌하였고 뢴트겐의 X선 실험 등을 스스로 수행하기도 하였다.

20세기 초에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수행했던 대표적인 일본 과학자로는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1876-1928)를 꼽을 수 있다. 현행 일본 1000엔 권 화폐의 모델 인물이기도 한 그는 일본에서 공부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록펠러 연구소에서 활동하면서 세균학자로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뱀독의 연구로 주목을 받았고 매독의 원인균인 스피로헤타를 발견했으며, 파상풍, 황열병 등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현행 일본 1천원권 화폐의 모델인물이기도 한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 ⓒ 위키미디어

현행 일본 1000원 권 화폐의 모델 인물이기도 한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 ⓒ 위키미디어

그는 여러 차례 노벨생리의학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자신이 주로 연구하던 황열병에 감염되어 사망하였고, 오늘날에는 논문 조작 의혹과 논란이 불거지기도 하였다. 그가 발견하였다고 주장한 광견병, 소아마비, 황열병의 병원체는 세균보다 훨씬 작은 바이러스로서 당시 수준의 광학현미경으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의도적으로 조작을 하였는지 아니면 기술적 한계로 인하여 오류가 생겼던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과학계뿐 아니라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1949년으로서, 그 주인공은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07-1981)이다. 유카와 히데키의 노벨상 수상 업적은 원자핵 내에서 핵력을 매개하는 중간자(中間子, meson)의 존재를 예견한 것인데, 그는 그 시대의 다른 일본인 과학자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하지 않고 일본 국내에서 연구하여 뛰어난 성과를 낸 것으로서 더욱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그는 교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에 같은 대학의 연구실에서 β붕괴와 핵내 전자의 문제 등에 관해 연구하여 1935년에 중간자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노벨상 후보에 올랐던 그는 결국 1949년도 노벨물리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하였다.

중간자의 존재 예견으로 1949년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 ⓒ 위키미디어

중간자의 존재 예견으로 1949년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 ⓒ 위키미디어

이보다 앞선 1917년에 자연과학 종합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理化學硏究所)가 설립되어 일본 내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고 뛰어난 과학자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리켄(理硏, RIKEN)이라는 약칭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연구소는 오늘날까지도 일본 기초과학 연구의 중추를 이룬다.

녹말분해효소인 디아스타아제를 처음 발견한 다카미네 조키치(高峰讓吉) 등의 제안으로 설립된 이화학연구소는 일본에 근대 수학을 도입한 기쿠치 다이로쿠(菊池大麓)가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원자핵을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의 제자였던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가 이화학연구소에 연구실을 꾸리면서 젊은 과학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유카와 히데키의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郎, 1906-1979)는 양자전기역학 연구 공로로 파인만 등과 공동으로 1965년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음으로써 일본에 2번째의 노벨과학상을 안겨주었는데, 그가 바로 이화학연구소의 연구생 출신이다.

기초과학 분야뿐 아니라 기술과 산업의 측면에서도 일본은 매우 빠른 기간에 서양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증기기관차와 철도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854년에 미국 해군의 페리 제독이 일본의 개항 조약 협상을 위해 일본에 왔을 당시에 소형의 증기기관차 모형을 선물로 가져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일본 내에서 서양의 기술을 자체적으로 습득하여 증기기관차를 만든 인물이 있었는데, ‘일본의 에디슨’이라 칭송받기도 하는 발명가 다나카 히사시게(田中久重, 1799-1880)이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난학 등을 통하여 서양의 기술을 습득하고 여러 기계장치 등을 발명하였다. 그가 제작한 것 중에서 유명한 것으로서 일종의 자동기계장치(Automaton)인 문자쓰기 인형(文字書き人形), 정밀한 시계장치 등이 있다. 특히 그가 1851년에 발명한 시계는 이른바 ‘만년자명종(万年自鳴鐘)’이라 불리는데, 절기, 월, 달의 위상 등을 표시하는 천문시계를 겸한 정밀시계로서 일본의 근대 중요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

다나카히사시게가 만든 정밀시계(만년자명종) ⓒ 위키미디어

다나카히사시게가 만든 정밀시계(만년자명종) ⓒ 위키미디어

다나카 히사시게가 1875년에 설립한 다나카제작소(田中製作所)는 오늘날 일본의 유명 기업인 도시바(Toshiba, 東芝)의 모태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최초로 백열전구가 생산된 것은 1890년으로, 에디슨의 전구 발명 및 미국에서의 보급과 그다지 큰 격차를 보이지 않는다. 백열전구를 생산한 하쿠네쓰사(白熱舎, はくねつしゃ)는 다나카제작소 및 다른 기업들과 합병을 거듭하면서 도쿄시바우라덴키(東京芝浦電気), 즉 도시바로 발전하였다.

기술에 바탕한 근현대적 기업의 성장 또한 에디슨의 연구소가 모태가 된 제너럴일렉트릭(GE), 전화기의 발명자 벨이 창업한 벨전화회사에서 발전한 AT&T 등의 예처럼, 일본 역시 서양과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고 하겠다.

요컨대 일본의 근현대과학기술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미 서양의 선진국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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