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5,2019

플래시 메모리에 숨어있는 양자물리

과학서평 / 한 권으로 이해하는 양자물리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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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양자역학으로 돌아가지만, 사람들은 양자역학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른다. 심지어 양자역학은 어렵고 난해하고 과학인지 철학인지 모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주나 원자나 전자공학이나 이 모든 현상은 고전 물리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명쾌하고 구체적인 원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런데, 양자물리는 이런 ‘구체적인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입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특정한 위치 없이 단지 확률로만 존재한다니! 동시에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니!

아인슈타인조차 처음 나온 양자물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을 정도이다.

“정말 확률적 해석이 옳다면 물리학자를 그만두고 차라리 구두를 수선하거나 도박장에서 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네.”

아인슈타인은 ‘임의의 시간이 흐른 뒤의 입자의 위치를 오직 확률로만 나타내는 방정식’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전을 공중에 던져 떨어뜨리면, 앞면 아니면 뒷면이 나온다. 하지만 양자물리의 시각으로 보면 동전이라는 입자는 주변 세계와 상호작용하기 전까지 오직 50:50이라는 확률로만 존재한다.

인류 문명의 꽃을 피운 양자물리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미 양자역학이 만든 세상 속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다.

비록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도대체 양자역학이 우리 생활의 어느 부분에 어떤 모습으로 숨어있는지 하는 기본 응용 모습이라도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 ‘한 권으로 이해하는 양자물리의 세계’이다.

브라이언 크레그 지음, 박지웅 옮김 / 북스 힐,  값 18,000원

브라이언 크레그 지음, 박지웅 옮김 / 북스 힐

양자물리가 탄생하기까지 그리스 시대부터 수없이 많은 점을 찍은 유명한 물리학자들의 업적과 주장을 한두 페이지에 그래프와 함께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정리해 놓았다. 돌턴, 톰슨, 맥스웰, 브라운, 러더퍼드, 멘델레예프, 소다, 채드윅, 한, 마이트너, 실라르드, 플랑크, 레나르트, 바이어, 발머, 보어, 에딩턴, 영, 드브로이, 하이젠베르크, 보론, 슈뢰딩거….

과학계의 거장들이 이룩한 업적을 숨 가쁘게 연결한 영국의 과학저술가인 브라이언 크레그(Brian Clegg)의 폭넓은 지식은 양자역학은 아주 두껍고 현학적이며 긴 설명을 늘어놓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현실 속에 양자역학이 어떻게 구현되어 존재하는지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는 점이다.

양자 스핀, 빔 분리기, 실시간 통신, 암호, 순간 이동, 초대칭, 암흑물질에서 초전도체, 터널링 현상, 광합성, 비둘기가 길을 찾는 원리 등 알고 보면 양자역학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할 정도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양자물리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양자 기술이 전자공학과 같은 간판을 달고 얌전히 숨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자기 제품은 양자물리를 응용한 것이다.

텔레비전 브라운관이 대표적이다. 진공관에 이어 나타난 반도체는 양자물리 없이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도체 부품을 설계할 때는 양자물리의 띠 틈(band gap)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전자가 존재하지 않는 영역으로 전기가 통하기 위해서는 전자가 띠 틈을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레이저는 내부의 발진 물질을 사용하는 전형적인 양자 장치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레이저를 응용한 광섬유는 초고속인터넷과 장거리 통신에 필수적이므로 이미 우리는 양자물리 회로로 둘러싸인 셈이다. 레이저는 홀로그램과 전자현미경의 기본 수단이기도 하다. 자기공명영상(MRI)의 핵심 메커니즘은 바로 양자 작용이다.

전자공학은 양자물리 공학이다.    

물론 가장 빈번하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양자물리의 응용제품은 플래시메모리가 아닐까 싶다. 플래시 메모리에서 중요한 부분은 ‘플로팅 게이트 트랜지스터’이다.

여기에서 게이트는 절연체 사이에서 스위치 역할을 한다. 플래시 메모리에서는 전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지지만, 게이트에 직접 전자를 집어넣을 수는 없다. 대신 전자가 ‘양자터널링’ 현상을 일으키도록 유도하여 절연체의 장벽을 넘게 한다.

디지털 카메라의 핵심인 CMOS도 양자물리의 응용이고, LED 전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주과학의 빅뱅에서도 블랙홀에서도 중력이론과 중력파에서도 천문학에서도 양자물리가 적용된다.

이런 양자역학의 유비쿼터스 세계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1+1=2라는 기본 공식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흔하게 양자물리는 우리 생활 속에 응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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