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0,2019

통제구역의 도로시(9)

김초엽 작가의 SF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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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unsplash.com/photos/W8KTS-mhFUE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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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째였다. 다나는 기절한 소녀의 뇌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소녀의 두개골과 뇌 일부를 구성하는 기계 부품들을. 단백질 타는 냄새가 복제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소녀는 눈을 전혀 뜨지 못했고 축 늘어진 데다 푸른빛 피부까지 더해져 시체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직 심장이 뛰는 상태였다. 그건 타는 냄새를 알아차리자마자 즉시 소녀의 금속 머리 뚜껑을 열어 자기 파괴를 진행하는 기계 뇌를 차단한 다나 덕분이었다. 잔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소녀의 생명이 다나의 손에 달려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이 다나에게 의무감이나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나는 자신이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단지 소녀가 여기서 죽어버리면, 중요한 ‘증거’가 사라진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을 뿐이다. 깨어난다고 해서 사실대로 뭔가 털어놓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증거가 아예 소멸되는 것보다는 낫다. 저 망할 놈의 기계를 만든 사람이 의도한 바도 일이 수틀릴 바에는 증거를 태워버리자는 것 같고.

정보 브로커 짓을 몇 년째 했더니 사람 뇌에 들어가는 부품은 구비 중인 것만으로도 긴급 처치가 가능했다. 오늘 같은 의사 노릇은 처음이었지만. 가장 작은 부품을 다뤄봐야 우주선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인간 기계를 수리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끝에, 다나는 복제실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다행인지 모르겠는데, 유기체 뇌는 멀쩡해.”

여전히 시체처럼 늘어진 소녀는 복제실 작업대 위에 눕혀둔 채였다. 기계 뇌에 들어 있던 칩은 분리해두었고, 다나가 가지고 있던 기본 칩을 넣었다. 기억에는 문제가 생기겠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2층 벽 속에서 발견된 의문의 기계, 아마도 컨트롤러 역할을 하는 그것이 순간적으로 태워버린 것은 소녀의 기계 뇌와 유기체 뇌를 연결한 접합부였다. 다나가 손을 대지 않았다면 유기체 뇌까지 모두 익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브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유리 너머를 흘끔거렸다. 감염 위험이 있어 근처에 오지 말라고 했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저 애는 이제 백치가 된 거야? 말도 못 하겠네? 반쪽짜리 뇌가 있으면 뭘 해. 중요한 건 다 기계 쪽에 있잖아.”

“아니지. 보아하니 저 꼬마의 어설픈 기계 뇌 수술은 상당히 최근에 된 건데…….”

다나는 기계 수술에 사용한 장비들을 가방에 대충 쑤셔 넣으며 말했다.

“유기체 뇌를 가지고 평생 살다가 급하게 기계를 집어넣은 거야. 반년도 채 안 되어 보였어. 그럼 뇌를 보완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뭔가 다른 목적이 있었겠지. 일반적인 뉴런 칩 시술과는 달라. 애초부터 조종하기 위해서 기계를 삽입한 거야.”

“저 애를 조종하려고 기계를 넣었다고? 고작 어린애를 조종해서 뭘 하려고?”

“로봇을 만드는 대신, 값싼 인간을 로봇처럼 부릴 수 있게 개조한 거겠지. 어린애를 어떻게 써먹을지는 써먹기 나름이고.”

“누가 그런 끔찍한 짓을 해?”

이브는 여전히 경악한 얼굴이었다. 대체로 평온한 삶을 살았기 때문인지 이브에게는 나이에 비해 순진한 면이 있었다.

“우주에서는 별일이 다 일어나니까. 게다가 저 애가 순전히 조종당했을 뿐이라고, 본인 의사로 침입한 게 아니라고 아직 말 못 해. 기계를 넣었다고 해도 유기체 뇌가 정상이라면 조종에 저항할 수 있으니. 지금도 정신만 차리면 멀쩡하게 대화할 수 있을걸. 기절한 척하는 건지도 모르지.”

“너무 냉정하네.”

이브가 미간을 찌푸렸다. 다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특별히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우주를 돌아다니며 저것보다도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집에 침입한 좀도둑을 동정할 만큼 관대하지도 않았다. 다나가 투덜거렸다.

“사이보그 꼬맹이가 내 집에 침투한 이유가 정확히 뭘까? 저 기계가 꼬맹이 말고도 분명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단 말이야.”

“기계를 분석해보겠습니다. 주인님.”

웬일로 ‘주인님’이라고 호칭을 붙여 말하는 로딘을 향해 다나가 고개를 돌렸다. 로딘이 저렇게 공손하게 말할 때는 보통 의도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마 기계 자체가 로딘의 흥미를 끄는 복잡한 물건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새 소동이 벌어진 탓에 이제 막 인공태양이 떠오르는 새벽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피곤할 법도 했지만, 이브는 평소보다도 더 초췌해 보였다. 오히려 다나는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이브 옆으로 걸어간 다나는 벽 옷걸이에서 겉옷을 끄집어내려 팔을 꿰었다. 이브가 물었다.

“어딜 가려고?”

“경고를 해야 할 것 같아. 스테이션 전체에. 아직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나는 그렇게 말하고 방금 호출한 호버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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