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4,2019

실험 애니메이션에 담긴 반전의 메시지

전승일의 과학융합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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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이 신문을 보며 앉아 있는 두 명의 남자 사이에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난다. 남자 둘은 예쁜 꽃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집 경계에 담장을 치고, 칼싸움을 하면서 싸운다. 싸움은 점점 격렬해지고 주변은 온통 엉망진창이 된다. 두 명의 남자는 싸움에 지쳐서 쓰러지고, 결국 함께 무덤 속에 갇힌다.

한반도에서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바다 건너 멀리 캐나다에서는 전위적인 실험 애니메이션 감독 노만 맥라렌(Norman McLaren, 1914~1987)에 의해 전쟁에 대한 은유적 항의의 메시지가 담긴 혁신적인 기법의 단편 실험 애니메이션 ‘이웃(Neighbours, 1952)’이 만들어졌다.

노만 맥라렌

노만 맥라렌 Ⓒ NFBC

꽃 한 송이를 두고 벌어지는 소유와 경계에 대한 싸움, 그리고 무고한 희생이 벌어지는 전쟁의 허망함에 대한 정치적인 우화(寓話)인 ‘이웃’은 인물 움직임을 스톱모션 방식으로 촬영하는 픽실레이션(Pixilation) 기법으로 제작되었는데, 인물의 정지 동작을 프레임 단위로 촬영하였기 때문에, 피사체가 실사이면서도 라이브액션(Live-action) 영화와는 다른 독특하고 유쾌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관련 영상>

노만 맥라렌은 절대 영화(Absolute Film), 추상 영화(Abstract Film), 초현실주의 영화(Surrealism Film) 등을 추구했던 유럽 아방가르드(Avant-garde)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실험적인 영화 작가이다. ‘이웃’은 1952년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으로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수상했으며,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작품이다.

노만 맥라렌은 영국 글래스고 예술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영화를 접하게 되었고, 스페인 내전 당시 기록영화 팀의 카메라맨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41년에 다큐멘터리 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 1898~1972)이 초대 위원장을 맡았던 캐나다 국립영화위원회(NFBC, National Film Board of Canada)의 애니메이션 파트 창설을 주도하였다.

NFBC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크리스 랜드레스(Chris Landreth), 이슈 파텔(Ishu Patel), 자크 드루엥(Jacques Drouin), 웬디 틸비(Wendy Tilby), 캐롤라인 리프(Caroline Leaf), 코 회드만(Co Hoedeman) 등 수많은 작가주의 애니메이션 감독을 배출하면서 아트 애니메이션의 세계적인 산실로 자리매김하였다.

노만 맥라렌 '이웃'

노만 맥라렌 ‘이웃’ Ⓒ NFBC

그리고 노만 맥라렌은 영국의 존 할라스(John Halas, 1912~1995), 러시아의 이반 이바노프 바노(Ivan Ivanov Vano, 1900~1987) 등과 함께 국제적인 애니메이션 연대 활동을 하였고, 1960년 칸영화제로부터 애니메이션 부문이 독립된 최초의 애니메이션 전문 영화제인 앙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Annecy International Animated Film Festival)이 만들어지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며, 국제애니메이션영화협회(ASIFA)가 조직되는데도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노만 맥라렌 '이웃'

노만 맥라렌 ‘이웃’ Ⓒ NFBC

노만 맥라렌은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 적은 없지만, NFBC와 함께 전개한 70여 편에 달하는 그의 전복적인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오스카상을 포함하여 100여 개가 넘는 국제적인 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 중에서 ‘Blinkity Blank’는 195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Christmas Cracker’는 1964년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Pas de deux(1968)’는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A Chairy Tale(1957)’과 ‘Canon(1964)’은 캐나다 영화상에서 수상했다.

노만 맥라렌 'Blinkity Blank'

노만 맥라렌 ‘Blinkity Blank’ Ⓒ NFBC

일찍이 노만 맥라렌은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의 예술(art of drawings that move)’이 아니라, ‘그려진 움직임의 예술(art of movements that are drawn)’이다. 따라서 각 프레임에서 보이는 것보다 각 프레임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애니메이션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틈’에서 움직임이 창조된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개념은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현대적·학술적 정의가 되었다.

특히 노만 맥라렌은 필름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다이렉트 애니메이션, 필름 사운드 트랙의 영상화, 인물이나 오브제의 픽실레이션 및 스톱모션 촬영, 시각 음악, 댄스 애니메이션, 사운드와 이미지 간의 결합과 운율을 강조하는 추상 애니메이션 등 끊임없는 실험과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애니메이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면서 ‘혁신적인 영화 천재(Innovative Film Genius)’로 칭송되고 있다.

다양한 실험적인 기법과 기술에 대한 도전, 그리고 풍부한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애니메이션 영화의 표현 영역을 한층 더 확장한 노만 맥라렌의 작품 70여 편은 현재 ‘Norman McLaren: The Masters Edition’ DVD 박스 세트로 출시되어 있으며, NFBC 홈페이지에서 34편의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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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작권자 2019.10.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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