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4,2019

오피엄에서 오피오이드까지

이름들의 오디세이(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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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튀르너가 오피엄에서 추출한 에센스, 모르핀은 빠른 속도로 명성이 자자해지지는 않았다. 12년이 지난 1818년에 프랑스 생리학자인 마장디(François Magendie, 1783~ 1855)가 모르핀을 진통제로 발굴하고서야 세상에 알려진다. 마장디는 뇌동맥꽈리(동맥류, aneurysm) 때문에 극심한 두통을 겪던 어린 소녀에게 모르핀을 써 두통을 없애주었다.

하지만 오피엄 속에는 모르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르핀(4~21%), 코데인(0.8~2.5%), 테베인(0.5~2%), 나르코틴(4~8%), 파파베린(0.5~2.5%) 등 25가지 이상의 알칼로이드가 존재한다. 1817년에는 나르코틴(노스카핀), 1832년에는 코데인, 1832년에는 나르세인, 1835년에는 테베인, 1848년에는 파파베린이 각각 분리되었다.

‘아편’은 ‘야채즙’을 뜻하는 그리스어 opos의 라틴어 명칭 opium의 발음을 빌어 만든 이름이다. 나르코틴(narcotine)과 나르세인(narceine)은 ‘멍하다’는 뜻의 그리스어 narke에서 왔다. 이 종류의 약을 먹으면 멍해진다. 코데인은 앵속(양귀비, poppy)의 꼬투리를 부르는 그리스어 kodeia에서, 테바인(테베인, thebaine)은 오피엄 생산지로도 유명했던 고대 이집트의 테바이(테베스, Thebai, Thebes)에서, 파파베린은 앵속을 뜻하는 라틴어 papaver에서 이름을 땄다. 나르코틴과 파파베린은 진통제가 아닌 평활근 이완제로 쓴다. 특히 혈관 평활근을 이완시켜 혈류량을 증가시키는 파파베린 주사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쓰기도 한다.

양귀비를 부르는 이름 papaver는 양귀비과(Papaveracacea), 양귀비속(Papaver)을 일컫는 학명이다. 양귀비속에서 30종 이상의 식물이 있고, 양귀비과에는 30개 속, 500종의 식물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양귀비중에서 단 2종의 양귀비 즉, 파파베르 솜니페룸(Papaver somniferum, 아편 양귀비)과 파파베르 브락테아툼(Papaverum bracteatum; 이란 양귀비)에서만 오피엄을 얻을 수 있다.

개양귀비 ⓒ 박지욱

개양귀비 ⓒ 박지욱

사진에서 보는 양귀비는 우리 들판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개양귀비(Papaver rhoeas)이다. 개-양귀비라는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은 오피엄을 생각하고 깜짝 놀란다. 2004년에는 서울 양재천변에 구청이 조경용으로 ‘양귀비’를 심었다는 신고가 들어간 적이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조사해보니 오피엄은 나지 않는 ‘개양귀비’로 밝혀져 방송사가 정정보도를 낸 해프닝도 있었다. 그만큼 양귀비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은 크다.

모네, 양귀비  ⓒ 위키백과

모네, 양귀비 ⓒ 위키백과

개양귀비라는 이름의 ‘개-‘는 ‘야생’이거나 ‘질이 떨어진다’는 뜻이 있다. 우리는 오피엄이 없다고 이렇게 개양귀비로 불러 천대하지만, 서양에서는 관상용은 물론이고 식용 채소로도 재배한다. 중국에서도 우미인초(虞美人草)라 부른다. 초나라 항우의 애첩 우희(虞姬, Consort Yu)의 이름을 붙일 정도면 하찮은 꽃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양귀비 역시 중국 당나라에 살았던 실존 인물로 중국을 대표하는 미인이 아닌가? 특이하게도 우리는 중국인들이 우미인초로 부르는 꽃을 개양귀비라고 하대하면서, 앵속은 중국 최고의 미인 이름을 붙여 양귀비라고 부른다. 중국인들은 오피엄이 나는 식물에 중국 최고의 미인 ‘양귀페이(杨贵妃, 楊貴妃)’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는 사실을 알면 조금 놀라지 않을까? ‘아편전쟁(the Opium War)’으로 큰 고초를 겪은 나라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한중일이 모두 한 글자인 ‘罂粟’으로 쓰고 각자 ‘잉수(중국)’, ‘케시(일본), 앵속(한국)으로 부르는 이 꽃을 우리는 왜 양귀비로 부를까? 양귀비의 미모에 팔려 국사를 등한시했던 당나라 현종의 사례를 기억하라는 의미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인 양귀비의 이름을 붙여놓았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통용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罂粟(앵속)의 조선시대 이두식 표기로는 ‘양고미’에서 시작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양귀미’로 갔는데, 경각심을 주기 위해 양귀비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하면 애초에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는 말이다.

양귀비와 우희 ⓒ 위키백과

양귀비와 우희 ⓒ 위키백과

한편 아편전쟁(1839~1860)이 한창이던 19세기 중반이 되면 오피엄의 역사에 중요한 격변이 시작된다. 기존에는 오피엄을 흡수하는 방법이 먹거나 피우는 것이었는데, 주사기가 발명되면서 오피엄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오피엄 중독자들이 아주 많이 늘었다.

또한 당시의 잦은 전쟁으로 부상을 당한 병사들에게는 오피엄을 강력한 진통제로 썼다. 아스피린이 1899년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시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진통제가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때문에 전쟁은 전사자와 부상자 그리고 오피엄 중독자들을 남겼다. 특히 20세기 초에 16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마약 중독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19세기 중반을 넘어서면 오피엄에서 얻은 여러 알칼로이드를 화학적으로 분석 연구한다. 그 결과 모르핀과 코데인이 핵심 성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1868년에 모르핀과 코데인의 분자 구조를 변형하는 연구들이 시작되었고, 1898년에 모르핀을 처리한 물질인 디아세틸모르핀이 중독성 없다고 여겨져 강력한 진통/진해제로 시판되기에 이른다. 이것을 내놓은 독일 제약사는 효과가 아주 강력하다는 뜻의 독일어 ‘heroisch’에서 이름을 따 ‘헤로인(heroin)’이라 불렀다.

᪆헤로인은 이름값을 했다. 모르핀보다 약효가 빨랐고, 진통 효과는 예닐곱 배나 되었고 기침약으로도 훌륭했다. 중독성도 없어 모르핀 중독자 치료에도 썼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있더. 헤로인은 발매 10년이 지나면서 금단의 약물이 되고 만다.

헤로인 광고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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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엄을 개량해서 만든 것이 반(半)합성 오피오이드라면, 완전히 실험실에서 창조해낸 것은 전(全)합성 오피오이드이다. 그 최초의 것은 1932년에 나온 데메롤(Demerol, meperidine, pethidine)이었다. 유명한 메타돈(methadone)은 1937년에 독일에서 전합성되었다. 여기에는 특이한 사연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 무렵 독일은 연합국의 봉쇄 조치로 모르핀 수입이 어려워진다. 앞으로 전쟁이 나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진통제였지만 구할 길이 없게 되자, 독일은 화학회사들을 동원해 모르핀을 대체할 새로운 약물 합성에 나선다. 그 결과 1937년에 돌로핀(dolophine HCl)ᮘ이 나왔다. 일설에 의하면 원래 이름은 ‘돌핀(dolphine)’ᮘ이었다고 한다. 돌고래(dolphin)와는 관계없고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를 ᮘ기리는 의미였단다.

돌핀 혹은 돌로핀은 독일의 비밀스러운 오피오이드였다. 이 약물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전쟁이 끝난 후였다. 1970년대에는 마약 중독자 치료제로 쓰이면서 일종의 해독제인양 그 이름이 알려졌다. 하지만 메타돈 역시 중독성이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치료가 쉬운 중독에 걸리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모르핀이나 헤로인 중독을 메타돈으로 치료한 후 다시 메타돈 중독을 치료하는 데는 다시 몇 년이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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