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0,2019

노벨상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조급함보다 기초과학 토대부터 다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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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이 되면 과학기술인들의 마음은 설렌다. 노벨상이 발표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노벨상위원회는 7일부터 14일까지 6개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한다.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이 유일하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등 과학 분야에서 수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데 대해 정부나 과학기술인들 사이에 여러 가지 안타까운 반응이 나타난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고 해서 우리나라 과학이 떨어진다고 할 수 없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가 몇 명이라는 사례를 들면서 어째서 우리나라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는지 때로는 비분강개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평가 절하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절대로 옳지 않은 태도이다.

노벨상은 국력에 비례하지 않으며, 노벨상 수상자 숫자가 과학기술의 절대적인 수준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과학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한 가지 척도일 뿐이다.

노벨상 부부 수상자인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 위키피디아

노벨상 부부 수상자인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 위키피디아

수상자가 아직 안 나오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첫 번째는 기초과학의 역사가 매우 짧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기초과학보다 응용과학에 먼저 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지동설이 나온 것은 16세기 코페르니쿠스 부터이다. 그 후 아이작 뉴턴(1642~1727)이 미적분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으며, 빛은 입자라고 주장했다. 현대적인 의미의 서양 기초과학의 출발을 아이작 뉴턴으로 본다면 서양 과학은 최소한 300년이 넘었다고 할 수 있다.

뉴턴을 이어 인류문명에 엄청나게 기여한 보석같이 찬란한 과학자들이 서양에서 릴레이 하듯 나타났다. 20세기에 들어와 아인슈타인을 거쳐 양자역학에 이르는 그 엄청난 인식의 전환을 이해한다면, 과학이 얼마나 빛나는 유산을 인류에게 던져주었는지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이다.

서양 과학 역사에 비교하면 1/10 정도

그러다가 우리나라의 과학 역사가 얼마나 일천한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기초과학이든 응용과학이든 제대로 발전하는 기틀이 마련된 지는 겨우 30여 년 밖에 안됐다고 할 수 있다.

그 전에도 뛰어난 과학자들이 간혹 한 두 명이 나왔으나, 거대한 과학의 산맥을 이루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발전은 이뤄질 수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기초과학 보다 응용과학을 통해 빈곤과 가난을 극복하는 일을 우선 선택했다. 6·25 전쟁 이후, 젊은 과학자들이 가뭄에 콩 나듯이 한두 명 외국 유학을 떠날 때, 젊은 과학자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노벨상을 수상하는데 필요한 기초과학 연구가 아니었다.

정근모 전 과기부 장관이 대학을 마치고 정부 도움을 받아 미국 장학생으로 떠날 때 김법린 박사가 당부한 말이 이것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김법린 박사는 ‘노벨상 따는 연구를 하지 말고, 미국이 어떤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해서 오늘날과 같은 국가로 성장했는지 배워오라’고 당부했다.

이 당부를 새겨들은 정근모 박사의 정책연구가 바탕이 돼 두뇌유출을 막아줄 카이스트가 설립되면서, 연구다운 연구를 할 수 있는 석박사 양성이 이뤄졌다. 다시 말해서 현대적인 의미의 과학기술이 출발한 시점은 석박사 인재들이 대거 배출된 시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보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과학은 서양과 비교하면 10분의 1의 아주 짧은 역사이다.

심정적으로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연구개발비 투입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반도체·원자력·조선·자동차·전자 등 첨단산업에서 세계적인 강국이 되었는데 어째서 노벨상 수상자가 없느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이중 국적을 포함해서 노벨상 수상자가 중국은 8명이고, 일본은 무려 27명이나 되는데 어째서 우리나라는 없느냐는 비교심리가 동원되기도 한다. 일본의 과학적 토대는 19세기에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으므로 단순비교할 일이 아니다.

조급한 마음에 손쉬운 질문을 던져보고 싶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벨 과학상을 언제 받을 것 같으냐고. 운이 좋으면 10년 안으로 받을 것 같다.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고 순리대로 기다린다면 30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학문하는 사람의 기본자세를 잃지 않는 일이다.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노벨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과학적 사고방식의 확산이 중요    

오히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기초과학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를 조용하게 들여다보면서 차곡차곡 기초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기초과학은 우선 저변이 넓어야 한다. 과학을 발전시키려는 훌륭한 스승들이 유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문발전에 기여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몫을 묵묵히 다 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정부나 과학기술 행정가들이 해야 할 일은 비교적 단순하다. 기초과학이 발전하는 토양을 북돋워 주는 일이다. 그 중 하나는 과학적 지식 및 창의성의 육성과 확산을 장려하는 일이다.

전문가들의 소통수단인 과학저널과, 일반인들의 소통수단인 과학언론을 지금보다 몇 배 더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국가 정책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

노벨상 박물관이 올 9월 인도에서 개최한 순회전시 © nobelprize.org

노벨상 박물관이 올 9월 인도에서 개최한 순회전시 © nobelprize.org

우리나라는 아직도 과학적 사고방식이 매우 부족하다. 과학적 사고방식은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며, 지금 진리라고 생각했던 과학적 토대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이다.

기초과학의 토대가 튼튼해지고 공정하고 정직한 경쟁과 협력의 전통이 마련되면서, 언제든지 전통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발견과 발명이 인정받는 그런 풍토가 조성되면 저절로 인류문명에 커다란 빛을 던지는 과학적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탁월한 업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유럽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전 세계 과학자들이 도저히 노벨상을 주지 않을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 제발 이 상을 받아가라고 할 때 즐거운 마음으로 수상하는 그런 날은 올 것이다.

그러므로 노벨상은 잊어버리는 것이 어떨까?  기초과학의 토대위에서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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