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3,2019

‘슈퍼 블록’이 자동차를 없앤 비결

바르셀로나가 보여주는 스마트시티의 미래

인쇄하기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스크랩
FacebookTwitter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심 동남쪽 산마르티에 위치한 포블레노우 지역을 걷다 보면 매우 독특한 광경을 마주할 수 있다. 도로 중심에 자동차 대신 놀이터가 들어서 있고, 그 앞의 벤치에는 사람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본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곳에는 자전거와 보행자만 지나갈 수 있고 일반 차량은 진입할 수 없다는 알림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바로 2016년 9월 첫 시범사업이 시작된 바르셀로나의 ‘슈퍼 블록’이다.

바르셀로나는 약 113×113m의 네모반듯한 블록으로 이루어진 계획도시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59년에 이처럼 격자 구조로 동등하게 분배해 도시를 만든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에서는 거주민 차량과 쓰레기 수거차 등의 공공 목적 차량만 진입이 가능하다.  © Ajuntament de Barcelona

바르셀로나의 슈퍼 블록에서는 거주민 차량과 쓰레기 수거차 등의 공공 목적 차량만 진입이 가능하다. © Ajuntament de Barcelona

슈퍼 블록은 그 같은 9개의 블록을 하나로 묶어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구역으로 설정한 개념이다. 가로세로 길이가 각각 400m로 약 5000명이 거주하는 이 공간을 차량들이 통과하기 위해선 주변부로 우회해야 한다.

거주 주민 차량과 택배 차량, 쓰레기 수거차 등의 공공 서비스 차량은 진입이 가능하지만, 이 차량들도 슈퍼 블록 내부에서는 시속 10㎞ 이하로만 통행할 수 있다. 왕복 이차로의 한쪽 차로는 아예 막아서 벤치, 테이블 등을 배치했기 때문에 그 차량들도 일방통행만 할 수 있다. 주차 역시 지하 주차로 대체된 덕분에 주차공간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로 변모했다.

바르셀로나에는 현재 총 5개의 슈퍼 블록이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 495개가 더 조성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바르셀로나 전체를 슈퍼 블록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슈퍼 블록 덕분에 첨단도시로 재탄생 중

바르셀로나의 인구는 약 160만 명에 불과하지만, 1㎢당 1만 6000명으로 유럽에서 네 번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다. 가장 밀집된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마닐라보다 더 높아서 1㎢당 5만 3000명이 살고 있을 정도다.

그에 비해 주민 1인당 공원 면적은 세계보건기구 권고치(9㎡)의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2.7㎡밖에 되지 않았다. 때문에 도시열섬 현상이 심각해 계절에 따라 주변 지역보다 3℃ 정도 기온이 더 높게 올라간다.

게다가 바르셀로나는 유럽에서 대기 오염 및 소음 공해가 가장 심한 도시 중 하나다.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2014년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이 같은 대기오염 및 소음, 도시열섬 현상, 녹지공간 부족 등으로 인해 매년 3500명이 조기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슈퍼 블록의 도입 이후 바르셀로나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산화탄소 방출은 42%, 미세먼지 오염은 38% 감소했으며, 소음공해도 66.5데시벨에서 61데시벨로 낮아졌다. 올해 9월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계획대로 500개의 슈퍼 블록이 모두 조성될 경우 매년 667명의 조기 사망자를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르셀로나는 슈퍼 블록뿐만 아니라 자전거, 버스 네트워크, 팹시티 등의 프로젝트를 종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팹시티는 단순히 소비만 하는 도시가 아니라 자체 생산력을 갖추어 지속가능한 도시로 전환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대표적인 슈퍼 블록 구역인 포블레노우 지역은 정보통신(ICT) 기반의 첨단도시로 재탄생하는 중이다. 쇠퇴하던 공장 지역이던 곳이 IT, 신재생에너지, 헬스케어, 디자인, 미디어 등의 산업과 연계한 대학-기업 클러스터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슈퍼 블록이 톡톡히 한몫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동차가 없어진 길 위를 사람들이 걸어 다니니 사회적 활동이 증가해 상점이 증가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자동차 대신 사람들이 몰리니 자연히 비즈니스 활동도 증대되는 셈이다.

유럽 도시 이동성의 수도로 선정돼

이 같은 현상은 다른 도시에서도 재연된 적이 있다. 스페인 서북부에 위치한 인구 8만여 명의 작은 도시 폰테베드라가 바로 그곳이다. 교통체증과 주차 문제, 대기오염 등에 시달리던 이 도시는 도심 중앙으로의 자동차 진입을 완전히 금지시켰다. 그 결과 인구가 오히려 1만 명 이상 늘어났으며 위축되었던 경제도 활성화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슈퍼 블록은 이제 국제적인 찬사를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럽 혁신기술연구소는 바르셀로나를 유럽 도시 이동성의 수도로 선정했다. 한편에서는 슈퍼 블록이 완성될 경우 바르셀로나가 세계 최초로 자동차 이후의 시대를 여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도 한다.

사실 슈퍼 블록의 목표는 자동차를 없애는 게 아니라 이동성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데 있다. 자가용에서 버스 등의 공공시스템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도시 이동성의 미래는 이처럼 개인이 자가용을 갖지 않는 데 있다.

바르셀로나 외에도 도시 중심지에서 차량을 금지하려는 도시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노르웨이의 오슬로는 사실상 자동차 운행을 금지했으며, 비거주민 차량 진입을 금지한 스페인의 마드리드도 같은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영국 런던은 최근 도심의 거리 절반을 영구적으로 차가 다니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으며, 프랑스 파리는 매달 첫 일요일마다 도시 중심지에서 차량 운행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독일 함부르크는 도시 면적의 40%를 자동차 없이 연결된 녹색 공간으로 바꿀 계획이며, 캐나다 몬트리올은 자동차 없는 거리를 통째로 건설하고 있다.

예전엔 도시 부흥을 위해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만드는 게 최우선시 되었다. 자동차가 많이 다녀야만 도시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 같은 패러다임을 뒤집는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스마트시티의 미래가 바르셀로나의 슈퍼 블록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