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2,2019

에디슨이 놓친 ‘기이한 현상’

노벨상 오디세이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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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열전구 개발에 착수한 에디슨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선택한 필라멘트는 탄화된 목화실 조각이었다. 그런데 이 전구의 수명은 고작 15시간에 불과했다. 다시 연구에 착수한 그는 결국 1500시간 동안이나 빛을 발할 수 있는 대나무 필라멘트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실용화 단계에서 이상한 현상이 발견됐다. 대나무 필라멘트가 증발해 전구 안쪽의 유리벽에 검댕이 생겨 자꾸 검게 변해 버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 에디슨은 순수한 금속 필라멘트를 사용해 그 같은 검댕 현상을 해결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전구에 백금 조각을 봉입하고 전압이 걸린 필라멘트와 접속시킨 다음 백금 조각을 양극에 연결하자 백금 조각과 필라멘트 사이의 허공에 전류가 흘렀던 것.

'에디슨 효과'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192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오언 리처드슨.

‘에디슨 효과’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192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오언 리처드슨. © www.britannica.com

진공상태에서는 전류가 흐를 수 없다는 게 당시의 과학 상식이었기에 그것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더욱 신기한 건 백금 조각을 음극에 연결하면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에디슨은 그처럼 기이한 현상을 증명할 수 있는 램프를 만들어 특허출원을 한 뒤 곧바로 다른 일에 몰두했다.

다음  해인 1884년 영국의 엔지니어 월리엄 프리스는 에디슨의 백열전구에서 그처럼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직접 발견한 뒤 이를 ‘에디슨 효과’라고 명명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가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뒤 영국의 물리학자 오언 리처드슨에 의해서였다.

자신의 이론 증명하기 위해 12년간 연구

그는 1901년 11월 25일 케임브리지철학회가 발간한 논문에서 에디슨 효과가 열전자 방출 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열전자 방출이란 고온의 물체, 특히 금속이나 반도체의 표면에서 물질 내의 전자들이 열에 의해 외부로 방출되는 현상이다.

즉, 진공 속에서 그 물체를 음극으로 하고, 양전위의 전극을 대립시키면 전자는 그 방향으로 흘러 열전자 전류가 생긴다. 이 같은 전기전도성은 금속 내에 자유전자가 존재하기 때문인데, 현대 물리학의 시작으로 알려진 전자를 발견한 이는 바로 오언 리처드슨의 연구 스승이었던 조지프 존 톰슨이다.

1879년 4월 26일 영국 요크셔 듀즈베리에서 태어난 오언 리처드슨은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를 1900년에 졸업한 후 캐번디시연구소에 들어가 조지프 좀 톤슨의 지도 아래 연구를 시작했던 것. 당시 그의 첫 연구 주제가 바로 뜨거운 물체로부터의 전기 방출이었다.

오언 리처드슨은 열전자 방출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무려 12년간이나 연구에 매달렸다. 당시엔 금속과 그 속에 함유된 불순물 간에 일어나는 화학반응으로 전자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많아 리처드슨의 이론에 의혹을 제기하는 시선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리처드슨은 일부 과학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전자가 화학반응이나 주변의 공기가 아닌, 뜨거운 금속에서 방출된다는 사실을 1911년에 밝혀냄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이론이 모든 면에서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더불어 그는 전자 방출 속도를 금속의 절대온도와 관련시키는 수학 방정식을 제안했다.

리처드슨의 법칙으로 알려진 이 방정식은 에디슨 효과(혹은 리처드슨 효과)의 실질적인 응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2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 현상을 제일 처음 발견한 에디슨은 공동 수상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노벨상 시상 연설에서 좋아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 투신하면 반드시 빛을 보게 된다며 오언 리처드슨의 업적을 치하했다. 캐번디시연구소에서 열전자 방출 이론을 발표한 리처드슨은 1906년 프린스턴대학의 물리학 교수로 임명돼 미국으로 건너가서까지도 계속 그 주제로 연구를 계속할 만큼 집요했다.

진공관에 응용, 전자산업 발전의 토대

에디슨 효과에서 필라멘트 사이에 봉입된 금속판과 음극 단자를 연결할 경우 전류가 흐르지 않는 이유는 그때 필라멘트의 흐르는 전자들이 열을 받지만 음극 단자와 연결된 금속판 쪽으로 튀어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백금 조각을 넣은 에디슨의 전구는 사상 최초의 전자기기용 진공관이었다. 에디슨 효과는 이후 진공관에 응용되면서 무선전신, 라디오, 텔레비전, 컴퓨터 등의 발명으로 이어지는 등 전자산업 발전의 토대가 됐다.

하지만 진공관은 부피가 클뿐더러 깨지기 쉽고 열이 많이 나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따라 진공관을 대체하는 반도체 트랜지스터가 1948년에 등장했으며, 이 연구를 성공시킨 미국 벨연구소의 월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 등 3명의 물리학자는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50년대에 들어 트랜지스터의 생산이 표준화되고 진공관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1913년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으로 선출된 오언 리처드슨은 바로 그해 런던대학 킹스칼리지의 물리학과 교수로 임명돼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1920년에는 영국 왕립협회로부터 휴즈 상을 받고 1926년에는 영국 물리학회 회장으로 임명됐다.

열전자 방출 이론뿐만 아니라 광전 효과, 전자 이론, 양자 이론, 수소 스펙트럼, X-선, 화학작용에 의한 전자의 방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74세이던 1953년까지 논문을 발표할 만큼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는 1959년 2월 15일 영국 햄프셔주 알톤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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