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0,2019

비만 인구 증가시키는 진짜 주범은?

초가공식품, 뇌 신호 왜곡해 과식 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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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데우스’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뭄, 에볼라,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죽기보다 맥도날드에서 폭식으로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경고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1975년 이래 전 세계 비만 인구는 거의 3배가 증가했다. 소아‧청소년의 경우 더욱 심각해서 비만 인구가 40년 전보다 약 10배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만 19세 이상 비만유병률이 34.8%로 성인 3명당 1명 이상이 비만이다.

옛날과 비교해 활동량은 줄어든 데 비해 식단은 훨씬 풍성해졌으니 비만 인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수면 부족이나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식욕 증가도 원인으로 꼽힌다. 많은 영양학자들은 지방, 탄수화물, 설탕 같은 특정 영양소를 세계적인 비만 대유행의 원인으로 꼽는다.

초가공식품이 위장과 뇌 사이의 신호를 왜곡시켜 과식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사진은 본문 중의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음). © 연합뉴스

초가공식품이 위장과 뇌 사이의 신호를 왜곡시켜 과식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사진은 본문 중의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음). © 연합뉴스

그런데 현대인의 비만 원인에 대한 새로운 후보를 지적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바로 현대인의 식탁에 가장 많이 오르는 초가공식품이 그것이다. 미국 국립의료원 산하 당뇨병, 소화기병, 신장병 연구소(NIDDKD)의 케빈 홀(Kevin Hall)을 비롯한 연구진은 초가공식품이 위장과 뇌 사이의 신호를 왜곡시켜 과식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초가공식품이란 가공식품보다 한 단계 위의 개념으로서, 시리얼이나 파이처럼 바로 먹거나 냉동식품처럼 전자레인지를 통해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식품을 전부 말한다. 예를 들면 밀가루, 소금, 물, 이스트로 만든 빵은 가공식품이지만 유화제나 착색제를 첨가해 수제가 아닌 기계식으로 생산한 빵은 초가공식품이다.

포만감 대신 음식에 대한 갈망 자극해

포장 도시락, 과자류, 소스, 대체 유제품, 아침식사용 시리얼, 과일 가공 음료, 소시지처럼 육류를 재구성한 식품 등이 모두 초가공식품에 해당한다. 보통 가정식 요리로 얻을 수 없는 화학 성분, 착색제, 방부제를 비롯해 고도의 지방 및 설탕, 소금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연구진은 무작위로 모집한 20명의 건강한 성인 자원자를 대상으로 한 그룹에는 초가공식품을, 다른 그룹에는 비가공식품으로 구성된 식단을 하루 세끼 마음대로 먹게 했다. 영양사들에 의해 초가공식품이나 비가공식품 모두 칼로리, 에너지 밀도, 탄수화물, 단백질, 설탕, 나트륨 등을 철저히 일치시킨 식단이었다.

2주간의 실험이 이어진 후에는 서로 메뉴를 맞바꿔 다시 2주간의 실험이 더 진행됐다. 올해 초 국제학술지 ‘셀 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에 발표된 케빈 홀 연구진의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초가공식품을 먹은 사람들은 비가공식품을 먹을 때보다 하루에 508㎈를 추가로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로 인해 체중이 불과 2주 동안 평균 0.9㎏ 증가한 것.

왜 그런 결과가 발생했을까. 장내 신경세포는 미주신경을 통해 뇌에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에는 위장으로 들어오는 음식의 열량에 대한 정보가 포함된다. 하지만 초가공식품처럼 음식에 대한 정보가 뒤섞여 있으면 신호가 왜곡돼 뇌가 적절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과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면 꿀이나 메이플 시럽 같은 천연 감미료는 그에 해당하는 칼로리를 예상해 뇌에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사카린 같은 인공 감미료는 에너지 증가 없이 단맛에 대한 기대와 경험만 제공하므로 뇌는 그런 정보를 받지 못한 채 계속 먹게 된다. 즉, 초가공식품은 포만감을 유발하는 대신 더 많은 양을 갈망하게끔 만드는 셈이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미국 영양학회의 릭 매트 회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초가공식품이 과식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며,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단편적인 연구결과로 현대인의 비만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심장질환 및 조기 사망위험 높아져

비만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은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프랑스 연구진은 10만5000여 명의 성인을 약 5년간에 걸쳐 조사한 결과, 초가공식품 섭취가 10% 늘어날 때마다 심장질환의 위험이 12%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스페인 연구진은 2만명의 성인을 15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초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한 이들의 조기 사망 위험이 적게 섭취한 이들에 비해 62%나 높았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결과들은 지난 5월 영국의학저널에 게재됐다.

이런 연구결과들이 아니더라도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을 거라는 사실쯤은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하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초가공식품들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선 초가공식품의 경우 요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는 점이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큰 매력이다. 또한 비가공식품보다 조미료와 설탕, 소금, 지방이 더 많아 강력한 자극을 원하는 요즘 세대들의 입맛에도 적합하다. 게다가 초가공식품은 신선한 비가공식품보다 가격마저 저렴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의 경우 섭취하는 전체 칼로리 중 56~58%와 섭취하는 설탕의 약 90%는 초가공식품으로부터 얻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인스턴트 라면의 경우 초가공식품 중에서도 극도로 가공된 음식으로서, 과량의 나트륨뿐만 아니라 방부제와 독성물질이 함유돼 건강에 좋지 않은 대표적인 식품으로 꼽힌다. 그런데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에 의하면 1인당 라면 소비량 세계 1위는 연간 73.5개를 먹는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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