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4,2019

영국을 구한 스텐 기관 단총

제작 쉽고 가격 저렴해 지금껏 모방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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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참전한 국가(또는 그에 준하는 정치 단체)의 명운을 건 극한 상황이다.

전쟁 당사자는 이러한 조건 하에서 생존하고 승리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발전시킨다.

첫 번째는 그동안 필요성은 인식되었으나 평시에는 너무 큰 자원이 들었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내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급속히 발전한 제트 엔진, 로켓, 원자력 관련 과학 기술이 대표적이다. 높은 과학 기술력으로 상대방을 일격에 압도하는 치명타를 구사, 전세의 역전을 노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존 과학 기술의 효용을 그야말로 극한까지 높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시에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던 장비를 더욱더 많이 생산해 전반적인 전투력과 지구력을 높이는 것이다.

전자가 병법에서 말하는 기공(奇攻)이라면 후자는 정공(正攻)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두 사례 모두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이번에 소개할 사례는 그중에서도 후자에 속하는 조금 특별한 총 이야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당시, 영국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유럽 대륙은 완전히 히틀러의 손에 넘어갔고, 영국만이 홀로 남아 대독 항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프랑스를 구하러 보냈던 대륙 원정군 30만 명은 됭케르크 철수작전을 통해 큰 손실 없이 영국 본국으로 돌아왔지만, 철수 과정에서 대부분의 장비를 프랑스에 버리고 왔기 때문에 빈손이 되었다. 게다가 영국 본토에는 매일같이 독일 공군의 공습이 가해지고, 언제 독일 육군이 본토에 상륙해 올지 몰랐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영국은 ‘전 국민의 무장화’를 시도했다. 정상적인 징집 연령이 훨씬 지난 고령자들까지 징집해 민병대 조직인 향토방위대(Home Guard)를 창설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은 물론 정규 군인들조차도 무기가 모자랐다. 어떻게든 제한된 예산으로 최대한 많은 총기를 생산해 군인들에게 나눠줘야 했다.

스텐 기관단총. 엄청나게 빠른 생산속도와 저렴한 가격으로 영국의 재무장에 공헌했다. ⒸWikipedia

스텐 기관단총. 엄청나게 빠른 생산속도와 저렴한 가격으로 영국의 재무장에 공헌했다. ⒸWikipedia

레지널드 V. 쉐퍼드와 해롤드 터핀이 설계한 스텐(두 설계사의 이름 머리글자인 S, T와 영국 엔필드 조병창의 이름 머리글자 En을 딴 작명이다) 기관단총은 이러한 여건에 놀랍도록 딱 들어맞았다.

우선 이 총은 소총이 아니라 기관단총이었다. 위력이 높은 소총탄을 쏘는 소총은 폐쇄장치(총탄이 총구를 떠날 때까지 노리쇠를 닫아 주어 총탄의 위력을 확보해 주는 장치)의 설계 및 제작에 은근히 공이 많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권총탄은 위력이 소총탄보다 훨씬 약하기 때문에, 별도의 폐쇄 장치를 설계하거나 만들지 않고 노리쇠의 무게만 무겁게 만들어도 충분히 폐쇄효과를 거둘 수 있다. 즉 그만큼 제작비가 절감된다.

스텐 기관단총을 들어보이는 여성 노동자. 근본적으로 위력이 약한 권총탄을 쏘는 기관단총이기 때문에 그만큼 만드는 데 시간과 돈이 적게 들었고, 여성이나 청소년, 노인들도 쏘기 쉬웠다.  ⒸWikipedia

스텐 기관 단총을 들어보이는 여성 노동자. 근본적으로 위력이 약한 권총탄을 쏘는 기관단총이기 때문에 그만큼 만드는 데 시간과 돈이 적게 들었고, 여성이나 청소년, 노인들도 쏘기 쉬웠다. ⒸWikipedia

또한 반동도 그만큼 적기 때문에 근력이 남성 청년에 비해 떨어지는 여자나 아이, 노인들도 쉽게 다룰 수 있다. 위력이 적다는 단점은 자동사격이 가능해 하나의 목표에 다수의 총탄을 거의 동시에 명중시킬 수 있다는 점으로 상쇄가 된다.

그 외에도 이 총은 생산에 큰돈이나, 난이도 높은 첨단 기술이 필요한 구석이 거의 없도록 설계되었다. 본체와 개머리판은 적절히 가공된 철 파이프였고, 부품수는 불과 47개. 이 중 가장 제작 난이도가 높은 것이 총열 정도였다. 제작 시간도 5인시(다섯사람이 한 시간 동안 일하였을 때의 일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은 가격이었다. 스텐의 단가는 당시 영국 돈으로 2.3파운드. 요즘 우리 돈으로도 15만 원을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요즘 우리 국군에 지급되는 K-2C1 소총의 단가가 110만 원이라고 하니까 이게 개인화기 치고는 저렴한 셈이다.

영국은 이렇게 싸고 만들기 쉬운 스텐을 1941년부터 빠른 속도로 양산, 자국 군대와 민병대에 보급한 것은 물론 남는 양을 외국의 항독 빨치산들에게 원조하기까지 했다.

스텐(아래)와 그것을 폴란드 항독 빨치산들이 모방 생산한 브위스카비차 기관단총(위). 스텐은 자금력과 기술력이 떨어지는 무장 단체에 총기 생산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Wikipedia

스텐(아래)와 그것을 폴란드 항독 빨치산들이 모방 생산한 브위스카비차 기관단총(위). 스텐은 자금력과 기술력이 떨어지는 무장 단체에 총기 생산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Wikipedia

최상의 칭찬은 모방이라던가? 스텐을 원조받은 항독 빨치산들 중 일부는 자체적으로 스텐의 카피 생산을 시도, 성공을 거두었다. 심지어 전쟁 말기 전세가 역전되어 궁지에 몰린 적국 독일도 특수부대 및 민병대용으로 스텐을 카피 생산했다. 지극히 생산이 쉽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었다.

스텐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싸면서도 기능은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사용탄은 독일군도 사용하는 9mm 패러블럼탄. 전투에서 노획한 독일군의 탄약을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탄창도 독일군의 MP-40 기관단총 탄창을 그대로 끼워 쓸 수 있었다(단, 스텐 전용 탄창은 크기가 조금 더 크기 때문에 MP-40에 끼워지지 않았다). 반자동 사격 기능도 있었고, 중기형부터는 착검 기능도 달려 나왔다.

이런 스텐은 약 400만여 정이 생산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보병의 전투력 증대에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전시 간이형 총기인데다 위력이 약한 기관단총이라는 한계 때문에 종전 이후 스텐의 효용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더욱 성능이 우수한 자동소총들이 속속 나오면서 스텐은 본국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정규군에서는 퇴역 수순을 밟게 되었다.

그러나 스텐의 진가는 다른 곳에서 드러났다. 어떻게 해서든 총은 갖고 싶은데 자금력과 기술력이 열악한 세계 곳곳의 무장단체에, 손쉬운 개인용 자동화기 제작의 교과서 노릇을 해 준 것이다.

이런 곳들에서 만든 스텐의 아류작들은 원조 스텐과 함께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여러 전쟁터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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