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1,2019

적도의 의미는 낮밤의 길이와 관련있다

이름들의 오디세이(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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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은 추분이다. 2019년 춘분은 3월 21일이었고 하지와 동지는 각각 6월 22일과 12월 22일이다. 우리에겐 달의 위상으로 결정되는 달력(음력)으로 정해지는 설과 한가위가 큰 명절이지만, 태양의 위치로 정해지는 절기 역시 중요하다. 계절이나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이라는 이름은 하루의 밤과 낮 길이를 똑같이 절반으로 나뉘는 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춘분과 추분의 ‘분(分)’은 ‘이등분(二等分)’이라는 뜻이 숨어있다.

춘분과 추분을 뜻하는 영어를 살펴보면 vernal equinox와 autumnal equinox다. vernal과 autumnal은 각각 ‘봄’과 ‘가을’을 뜻하는 형용사다. equinox란 equi-(같다)+nox(밤)을 뜻하는 단어가 합쳐진 글자로 ‘밤이 같다’는 뜻 모를 이름이다. 정확한 의미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equality of night and day)’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런 뜻으로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다. 바로 ‘equator’이다. 우리말로는 ‘적도(赤道)’라 부른다. 어째서 춘분과 추분을 대신해 equator에 밤낮의 길이가 같다는 뜻이 숨어있을까?

영어 ‘equator’의 어원은 라틴어 aequator(diei et noctis)이다. 이 말은 밤낮의 길이가 똑같다는 뜻이다. 이는 태양이 천구(天球)의 equator에 위치하면 낮과 밤이 길이가 같아지는 것을 뜻한다. 일 년에 두 번 이런 일이 생기는 데 이날이 춘분과 추분이다. 그러므로 equator는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것 즉, equinox와 관련이 있다. Equinox는 태양이 천구의 equator에 위치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천구의 ⓒ 박지욱

천구의 ⓒ 박지욱

지구에도 equator가 있고 적도라 부르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천구의 equator는 밤낮의 길이가 같다는 ‘시간’의 의미지만, 지구의 equator는 북극과 남극 어디로 가는 똑같은 거리에 있다는 ‘공간’의 개념이 강하다. 그러므로 지구 equator는 위도 0° 선이다.

지구의 허리둘레와 다름없는 적도의 길이는 4만여 킬로미터에 이르고, 14개 나라의 영토나 영해를 지나간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가 적도에 걸쳐 있고, 아메리카에는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을 지난다. 아프리카에서는 가봉, 봉고, 콩고,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케냐, 소말리아를 지난다.

이 중에는 나라 이름이 아예 적도를 뜻하는 에콰도르(Ecuador)도 있다. 아프리카에 있는 적도 기니(Equatorial Guinea)도 나라 이름에 적도가 들어간다. 하지만 적도보다 약간 북쪽에 있다.

equinox의 녹스(nox)는 ‘밤’을 뜻하는 라틴어로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밤의 여신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는 밤의 여신이 뉙스(Nyx)다. 녹스 즉 ‘노크스’는 노크트(noct-)의 형태로 영어에 남았다. 녹턴(nocturn)은 저녁 시간의 기도를 뜻했다가 지금은 밤의 느낌을 잘 살린 쇼팽의 야상곡(夜想曲)으로 부르는 피아노 음악으로 더 유명하다.

동물들 중에 noct-로 시작하는 이름이 들면 아무래도 밤과 관련이 있다. noctule는 집박쥐, noctiluca는 야광충이다. 야광충처럼 밤에 빛나는 성질은 noctilucent라 부르고 박쥐처럼 밤에 활동하는 성질은 the nocturnal habits 즉 야행성(夜行性)으로 부른다.

쇼팽의 녹턴 ⓒ 박지욱

쇼팽의 녹턴 ⓒ 박지욱

똑같이 밤낮의 시간을 이등분하는 춘분과 추분이지만 추분보다는 춘분이 더 중요하다. 농사의 시작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기독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날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달력인 양력을 쓰는 기독교이지만 해마다 날짜가 달라지는 부활절(Easter)은 춘분이 지난 후 처음 맞는 보름을 지난 일요일로 정하기 때문이다.

2019년 춘분은 3월 21일이었고 그날은 하필이면 음력으로는 보름이었다. 때문에 다음 보름은 한 달 지난 4월 19일 금요일이었고 이로부터 맞는 첫 일요일인 4월 21일이 부활절이었다.

이런 공식을 알면 해마다 맞는 부활절 날짜 계산이 어렵지 않다. 2020년 춘분은 3월 20일로 음력으로는 26일이다. 이후로 첫 보름달은 4월 7일에 뜨고 화요일이다. 부활절은 그 주 일요일인 4월 12일이다. 서양에는 이 무렵 짧은 방학이나 휴가를 맞아 고향을 찾는다. 우리의 명절인 셈이다.

베니스 사육제에 등장하는 가면, 잔니(Zanni)  ⓒ 박지욱

베니스 사육제에 등장하는 가면, 잔니(Zanni) ⓒ 박지욱

이렇게 해마다 바뀌는 부활절을 기준으로 날짜가 달라지는 유명한 축제가 있다. ‘베니스 사육제(the Carnival of Venice)’다. 가면 축제로도 유명한 베니스 사육제는 10일 동안 열리는 축제로, ‘재의 수요일’ 전날인 화요일에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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