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1,2019

진화의 미스터리 풀 ‘게임 체인저’ 등장

170만년 된 고대 코뿔소 유전정보 추출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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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만 년 된 코뿔소 이빨에서 유전자 정보를 추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진화를 분자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새로운 ‘진화 혁명(evolution revolution)’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확보한 유전 데이터는 지금까지 기록된 것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고대 코뿔소 이빨의 법랑질에서 거의 완전한 단백질 세트인 단백질체(proteome)를 발견해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1일자에 발표했다.

이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70만 년 전의 말에서 분석한 DNA보다 100만 년이나 앞선 것이다.

이번 연구는 고대 생물분자 연구에서 이룩한 획기적인 성과로, 먼 과거의 진화를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 있게 함으로써 동물과 인간 생물학을 둘러싼 가장 큰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지아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고대 코뿔소인 스테파노리누스 두개골 화석.  CREDIT: Mirian Kiladze, Georgian National Museum

조지아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고대 코뿔소인 스테파노리누스 두개골 화석. ⓒ Mirian Kiladze, Georgian National Museum

현대인 진화 경로의 90%는 유전 정보 없어

논문 제1저자이자 코펜하겐대 지구연구소 고단백질체학 전문가인 엔리코 카펠리니(Enrico Cappellini)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고대 DNA가 멸종된 종의 진화와 적응, 인간 이주에 관한 의문을 해결하는 데 활용됐으나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처음으로 DNA가 보존될 수 있는 시간적 한계를 넘어 분자적 측면에서의 진화 방식(molecular evolution way)을 재구성할 수 있는 고대 유전 정보를 검색해 냈다”고 밝혔다.

치아 법랑질에서 나온 고대 단백질에 대한 새로운 분석은 분자적 진화 연구에서 흥미로운 새 장을 열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현재 유전적으로 인간 진화를 추적할 수 있는 DNA 데이터는 40만 년 전까지만 유효하다. 그러나 현대인과,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생물 종인 침팬지로 이어지는 혈통은 약 600만~700만 년 전에 갈라졌다.

이는 현대인으로 이어지는 과거 진화 경로의 90% 이상에서 유전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자들은 실제 현대인과 유사한 신체 비율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멸종된 호모 에렉투스 같은 가장 오래된 고인류종이 우리와 어떤 유전적 연관성을 가졌는지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현재 이와 관련해 알려진 모든 것은 대부분 유전 정보가 아닌 해부학적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고대 코뿔소의 왼쪽 아래 어금니. 이 어금니의 법랑질에서 유전 정보를 추출했다.  Photo credit: Natural History Museum of Denmark

고대 코뿔소의 왼쪽 아래 어금니. 이 어금니의 법랑질에서 유전 정보를 추출했다. ⓒ Natural History Museum of Denmark

질량 분광분석법 적용해 170만 년 전 화석 분석

이런 상황에서 연구팀은 질량 분광분석법(mass spectrometry)이라는 획기적인 기술로, 빙하시대인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약 260만~1만2000년 전) 시기 유라시아에 살았던 멸종된 코뿔소 종인 177만 년 전의 스테파노리누스(Stephanorhinus)의 이빨에서 고대 단백질을 확보해 유전 정보를 분석해 냈다.

이는 이전의 DNA 테스팅 기술로는 얻을 수 없는 유전 정보다. 고대 코뿔소 화석은 조지아(그루지아)의 드마니시(Dmanisi)에서 발견된 것으로 조지아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치아 법랑질은 포유류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DNA보다 더 오래가는 단백질 세트를 법랑질에서 발견했다. 이 단백질 세트는 지금까지 100만 년 이상 된 화석에서 발견된 유일한 단백질인 콜라겐보다 유전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논문 공동 교신저자이자 코펜하겐대 ‘정량 단백질체학 질량 분광분석 그룹’ 대표인 에스퍼 올슨(Jesper V. Olsen) 교수는 “질량 분광분석 기반의 단백질 시퀀싱을 통해 수천 년 정도가 아닌 수백만 년이 지난 포유류 화석에서 신뢰할 만한 풍부한 유전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고 말하고, “이 방법은 이번처럼 오래된 소량의 단백질을 시퀀싱하는데 필요한 견고성과 정확성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코펜하겐대와 케임브리지대 존스 컬리지의 에스키 윌러슬레우(Eske Willerslev) 교수 Photo credit: Mikal Schlosser

연구를 이끈 코펜하겐대와 케임브리지대 존스 칼리지의 에스키 윌러슬레우(Eske Willerslev) 교수 ⓒ Mikal Schlosser

“분자적 진화 연구 방법에 혁명 일으켜”

카펠리니 교수는 “치아 법랑질은 매우 풍부하고 내구성이 무척 강하기 때문에 화석 기록의 상당 부분을 치아가 차지하고 있다”며, “이를 이용한 적용 가능성은 광범위하다”고 덧붙였다.

연구를 이끈 에스키 윌러스레우(Eske Willerslev) 케임브리지대 세인트존스 칼리지 교수 겸 코펜하겐대 건강 및 의과학 교수는 이번 연구를 “포유류는 물론 인간의 진화 연구에서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임 체인저(game-changer)”라고 묘사했다.

그는 “분자 표지자를 기반으로 하는 진화 연구 방법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고대 생물분자 연구의 새 분야를 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일 종의 진화 계통 재배치는 자그마한 조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멸종 포유류와 인간의 변화를 정확하게 식별해 낸다면 세계가 진화한 방식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전 세계 과학자들로 하여금 고대 화석의 유전 데이터를 수집해 인간을 포함한 수백 종의 진화에 대한 더 크고 정확한 그림을 구축하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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