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1,2019

빈 깡통과 오물로 라디오를 만든다?

인류를 지키는 적정기술 (18) 생존에 필요한 최소 정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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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개발 국가 주민들의 사망률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연재해와 가끔씩 일어나는 국지적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 때문이지만, 낙후된 정보망도 사망률을 높이는데 한몫 하고 있다.

산사태 발생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한밤중에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 통신이나 방송 등으로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경고를 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추가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정보망을 라이프라인(life line)이라 부른다 ⓒ rei.com

생존을 위한 정보망을 라이프 라인(life line)이라 부른다 ⓒ rei.com

이런 정보망을 라이프 라인(life line)이라 부르는데,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주민들이 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최소한의 정보망이라 할 수 있다. 전화나 인터넷, 또는 TV 등이 모두 라이프 라인에 해당되지만, 저개발 국가에서는 이 같은 라이프 라인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수많은 적정기술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저개발 국가 주민들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망을 구축하는데 힘써왔다. 그리고 그 결과, 전기가 필요 없거나, 수동으로 전력을 생산하여 청취할 수 있는 라디오를 개발·보급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빈 깡통과 배설물로 만든 9센트 짜리 라디오

인도네시아는 자연재해가 잦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인도네시아 발리섬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화산 폭발로 인해 수많은 원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발리섬에는 오스트리아의 디자이너이자 시민운동가인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이 출장 업무차 방문하고 있었다. 원주민들이 입는 피해 상황을 지켜보던 파파넥은 “최소한 작은 경보 방송이라도 들을 수 있었다면, 주민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때까지 소외받은 계층을 위해 다양한 지원활동을 벌였던 파파넥은 자신이 가진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활용하여 발리섬의 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발리의 관광객들이 버린 깡통과 동물의 배설물 등을 활용하여 비상용 라디오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빈 깡통에 파라핀 왁스와 배설물을 채우고, 여러 개의 금속 심지를 심어 전류가 발생하도록 개조한 것.

빈 깡통과 배설물로 만든 9센트 짜리 라디오  ⓒ medium.com

빈 깡통과 배설물로 만든 9센트 짜리 라디오 ⓒ medium.com

파파넥의 설명에 의하면 버려진 깡통으로 만든 ‘깡통 라디오’는 열기전력에 의해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기전력(熱起電力)이란 2종의 다른 금속을 접합시켜 회로를 만들어 그 두 개의 접합 부분의 온도를 변하게 할 때 회로에 전류가 흐르는 것이다.

파파넥은 “깡통 입구에 철사를 감고 여기에 케이블과 안테나를 전선으로 연결하여 회로를 구성한다”라고 소개하며 “그런 뒤에 깡통에 재료를 넣고 불을 붙이면 깡통과 철사의 온도차에 의해 기전력이 유도되면서 전류가 발생하여 전파를 수신한다”라고 설명했다.

열을 이용하여 전류를 흐르도록 만들기 때문에 왁스나 종이, 또는 나무 등 연소가 가능한 모든 재료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또한 제조비용이 9센트에 불과해 재료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든지 깡통 라디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파파넥의 설명이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초저가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이다 보니 라디오의 주파수를 바꾸기 어렵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다만 언뜻 보기에는 조악한 장난감처럼 생겼지만, 주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재료와 간단한 제조 방법 덕분에 발리섬의 원주민들은 화산 폭발로 인한 사망자 수는 혁신적으로 낮아지게 되었다.

손잡이를 돌려 발생시킨 전기로 한 시간 수신

인도네시아의 원주민들이 폐품과 오물을 이용하여 만든 원시적 라디오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면, 아프리카 지역에 보급되고 있는 라디오는 사람의 힘을 사용하는 수동 방식으로 생존에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프리플레이 라디오’는 런던에 본사를 둔 친환경 가전기기 제조업체인 프리플레이에너지(free play energy)가 적정기술을 적용하여 만든 비상용 라디오다. 이 회사는 별도의 재단을 설립하여 수동 라디오를 보급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프리플레이 라디오는 본체에 달린 손잡이를 돌려서 만든 전기로 작동한다. 따라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나 햇빛이 제대로 비치지 않는 밀림 속에서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이에 대해 프리플레이 재단 관계자는 “몸체에 붙은 손잡이를 돌려 내장된 배터리를 충전해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하며 “1분 동안 빠르게 손잡이를 돌리면 1시간 동안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전기가 만들어진다”라고 밝혔다.

아프리카 니제르 지역에 보급된 프리플레이 라디오 ⓒ lifeline.energy

아프리카 니제르 지역에 보급된 프리플레이 라디오 ⓒ lifeline.energy

재단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라디오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라이프 라인이다. 방송을 통한 교육은 물론, 질병 예방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오지에 사는 원주민들은 라디오를 통해 세상 소식을 알게 되고, 일기 예보를 들으면서 재난도 예방할 수 있다.

프리플레이 재단은 이 수동식 라디오를 내전이 치열했던 아프리카 니제르에 우선적으로 보급했다. 그러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숨겨 놓았던 총을 들고 와서 프리플레이 라디오로 바꿔 갈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프리플레이 재단 관계자는 “가난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가난한 사람들이 정보와 교육을 필요로 할 때 언제 어디서든지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만 한다”라고 강조하며 “그런 점에서 볼 때 플리플레이 라디오는 가장 기본적인 접근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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