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3,2019

군 장비에 얼굴을 그리는 과학적 이유

인간의 공감 능력과 연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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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눈과 입을 그려넣은 미 해군의 F/A-18 전투기. 과학적으로 따져 봤을 때 이는 공격성의 표현보다는 오히려 방어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US NAVY

상어 눈과 입을 그려 넣은 미 해군의 F/A-18 전투기. 과학적으로 따져 봤을 때 이는 공격성의 표현보다는 오히려 방어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US NAVY

전쟁사를 살펴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한 재미있는 현상이 여럿 발견된다. 그중에 하나가 군 장비에 어떤 형태로든 얼굴을 그려 넣으려는 현상이다.

원시 부족 사회의 군대에서부터 방패에 부릅뜬 눈과 코, 쫙 벌린 시뻘건 입을 그려 넣었다. 이런 류의 전통은 21세기인 현대까지도 유구하게 이어져서, 전차나 항공기, 함선 등에 비슷한 도장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군 장비에 여자나 만화 캐릭터 등을 그려 넣기도 한다. 근대 이전의 군 장비는 아예 동물이나 사람 등 생명체의 형상을 크게 본떠 설계되기도 했는데, 고대 그리스 시대의 ‘트로이 목마’라던가, 조선 시대의 ‘거북선’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런 도장이나 설계는 군사적 효율 증진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위장 효과를 떨어뜨리고, 장비 및 인원 탑재 효율을 낮추는 등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일각에서는 적에에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는 개인적인 차이일 뿐더러 이러한 도장이나 설계들이 우스꽝스럽거다 귀엽기까지 한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군인들은 왜 군 장비에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일까? 이는 인간의 근원적 심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궁금증을 푸는 데 나름 참고할만한 이론을 제시한 사람이 전 미 육군 중령 데이브 그로스먼이다.

그는 저서 ‘살인의 심리학(On Killing)’에서 인간의 살인 행위, 특히 전투 및 범죄 상황에서의 살인 행위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와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간은 극소수의 사이코패스(전체 인구의 2% 정도)를 제외하면 그다지 타고난 효율적인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도 포유동물이고, 다른 개체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이 포유동물 두뇌의 주된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 자멸하지 않게 하기 위해 진화한 심리적 기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인간이 살인을 할 때는, 상대방과의 거리가 줄어들수록 살인에 대한 심리적 저항을 크게 느낀다.

즉 상대방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원거리에서 투사형 무기(총, 포, 미사일 등)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모습이 보이고 심지어는 얼굴까지도 식별 가능한 근거리에서 냉병기(칼, 창, 몽둥이)나 맨손을 사용할 때 더 큰 심리적 저항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참전 용사들 중 신경정신 질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 비율이 유독 보병 부대에서 높게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이 된다.

그렇다면 동서고금의 군인들이 군 장비에 얼굴을 끊임없이 그려 온 이유도 납득이 된다. 바로 적병의 공감 능력에 호소해서 이 장비는 그저 군 장비가 아니라 눈, 코, 입을 갖춘 생명이니 죽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군 장비에 대한 인간의 공감 능력은 또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다.

바로 장비 자체에 대한 전우애다. 인간의 공감 능력은 집단을 이루어 생존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도 작용한다. 그리고 그러한 공감 능력은 동류 인간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군인들은 분명 무생물인 군 장비에도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하며 소중히 여긴다. 전시에 그 장비에 생명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심리 역시 군 장비에 얼굴을 그려 넣고, 애칭을 부여하는 행위를 하는 중요한 동기가 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을 입증하는 최근의 사례가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 처리 로봇을 운용하던 미군 병사들이, 로봇이 적의 공격으로 파괴되자 마치 인간 전우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큰 심리적 충격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그 폭탄 처리 로봇이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거나 얼굴을 그려 넣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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