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3,2019

여성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달’

이름들의 오디세이(55)

인쇄하기 이름들의 오디세이 스크랩
FacebookTwitter

2017년 NASA는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24년까지 미국 우주인을 다시 달에 보내고 상주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 성공한다면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무인지대로 남아 있는 달에 52년 만에 인류의 발자국을 다시 찍게 되는 것이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로고(왼쪽) 및 아르테미스 여신 ⓒ 위키백과, 박지욱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로고(왼쪽) 및 아르테미스 여신 ⓒ 위키백과, 박지욱

아울러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는 ‘여성’ 우주인을 달에 보내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 이유는 ‘아르테미스’라는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이지만 동시에 여성의 수호신이자, 사냥의 여신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인류는 태양과 달을 숭배해 왔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달은 해의 여동생으로 신이었다. 해의 신은 헬리오스(Helios)-아폴론(Apollon)-아폴로(Apollo)로 이어졌고, 달의 여신은 셀레네(Selene)-아르테미스(Artemis)-디아나(Diana)로 이어졌다. 고대 로마 신화에서는 해와 달의 신을 각각 솔(Sol)과 루나(Luna)로 불렀다. 이 이름들은 지금도 우리 삶에 이런저런 흔적을 남겼다.

미국의 아폴로 프로그램을 따라잡기 위해 구 소련이 추진했던 무인 달 탐사 프로그램(1959~1976)의 이름은 달여 여신을 뜻하는 루나/루니크(Luna/Lunik)였다. 이 프로그램에 사용한 로켓의 이름도 루나였다.

1970년에 달에 착륙 성공한 루나 17.  ⓒ 위키백과

1970년에 달에 착륙 성공한 루나 17. ⓒ 위키백과

달은 평범한 인간의 눈에도 한 주기를 알아차리게 하는 거의 유일한 천체이다. 달은 무에서 출발해 보름 만에 가득 차고, 한 달 만에 원상태로 복귀한다. 달의 주기를 이용해 우리는 한 ‘달’의 개념을 가진 달력을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달력(달+曆)이라는 이름 자체도 ‘달’이 들어있다.

달을 기준으로 만든 달력을 음력이라 부른다. 음력이라 부르는 것은 해를 주기로 하는 달력 즉 양력에 대응하는 이름이다. 동양 철학의 음양오행설에서는 해를 태양(太陽), 달을 태음(太陰)으로 여긴다. 이를 기준으로 만든 달력 체계를 각각 (태)양력(太陽曆)과 (태)음력(太陰曆)으로 부른다.

젊은 세대는 음력(lunar calendar)은 어색하고 양력(solar calendar)이 당연하겠지만,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음력의 시간 속에서 살았다. 지금도 우리나라 공휴일 중 설이나 한가위는 음력으로 날을 정한다. 물론 달을 신앙의 상징으로 쓰는 이슬람도 음력을 쓴다. 기독교도 부활절을 정할 때는 음력으로 정한다.

물론 현대인의 1년(year)을 결정하는 것은 양력이지만, 월(month)은 여전히 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주(week)는 조수간만의 주기와 관련이 있다. 이렇듯 달의 주기성이 영향을 미친 음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전히 우리의 시간과 주기를 장악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달은 여성성과 떼려야 뗄 수 없었다. 그것은 달의 주기와 여성의 주기가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의 월경 주기는 달의 한 주기와 일치한다. 월경 주기를 뜻하는 영어 ‘menstruation’ 역시 달(month)이라는 의미에서 왔다. 월경(月經)이라는 이름에도 달이 들어있고, 임신은 아홉 번의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기간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달의 여신으로 추앙받았다. 여왕의 신하인 롤리 경(Sir Walter Raleigh)은 여왕을 신시아(Cynthia)로 묘사했는데 바로 달의 여신이란 뜻이다. 그녀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처럼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덕분에 처녀 여왕(The Virgin Queen)이란 별명도 얻었다. 지금도 처녀 여왕은 미국의 버지니아(Virginia) 주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달을 여성으로 보는 사고방식에서는 여왕(女王)을 달에 비유되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남왕(男王)이라면 어떨까? 스스로를 ‘달의 왕(the Moon King)’으로 부른 이가 한 사람 있었으니 바로 독일 바바리아(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 2세(Ludwig II)다.

그는 태양왕이라 불린 루이 14세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다. 베르사유를 모방한 궁전을 자신의 영지에 지었고, 스스로를 달의 왕으로 불렀다. 그 이름에 걸맞게 그는 달처럼 어둠 속에서 은둔하며 지냈다. 결국 말년에는 정신병을 앓아, 왕위도 빼앗기고 호수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비운의 왕이다.

루드비히 2세 탓은 아니지만 정신 이상은 달의 영향으로 생긴다는 믿음이 있었다. 칠흑 같은 그믐 밤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휘영청 든 보름달은 인간의 정서적인 불안을 일으킨다고 여겼다. 밤하늘에서 펼치는 달의 급속한 위상 변화는 변덕스러움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영어로 lunatic 은 정신병을 뜻한다.

앙리 루소,잠자는 집시여인(1897), 교교한 달빛 때문에 더 기괴한 느낌이 든다. ⓒ 위키백과

앙리 루소,잠자는 집시여인(1897), 교교한 달빛 때문에 더 기괴한 느낌이 든다. ⓒ 위키백과

스웨덴의 의사이자 분류학자인 린네(Carl von Linne)는 우리가 쑥이라 부르는 식물의 속명(屬名)을 아르테미시아라고 정했다. 이 이름은 그리스의 식물학자이자 여왕인 아르테미시아 2세(Artemisia II of Caria)을 기리기 위해서였단다.

린네는 몰랐겠지만 아르테미시아(쑥) 속(屬)에 속하는 개똥쑥(Artemisia anuua)은 2000년 동안 중국에서는 칭하오(靑蒿)로 부르는 약용 식물이었다.

1972년 중국 과학자 투유유(屠呦呦)가 개똥쑥에서 추출한 칭하오수를 말라리아 치료제로 개발했다. 이것이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이다.

_CID_f_k04jhvtc4_CID_Artemisia_annua

개똥쑥. ⓒ 위키백과

 아르테니시닌은 저렴하고도 효과가 좋은 말라리아 치료제였지만 초기에는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2015년에 투유유는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투유유는 여성 과학자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