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3,2019

반물질을 발견한 27세 연구원

노벨상 오디세이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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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 TV에서 방영된 ‘스타트렉’은 수많은 파생 문화상품을 낳을 만큼 유명했던 SF 드라마다. 여기 등장하는 거대한 몸집의 함선인 엔터프라이즈호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를 비행한다. 비결은 바로 반물질을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초광속 엔진 덕분이다.

반물질이란 보통의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에 대해 반대되는 입자로 구성된 물질을 말한다. 즉, 양성자, 전자, 중성자 등이 보통의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라면 그와 반대의 전하를 띤 반양성자, 양전자, 반중성자 등으로 구성되는 물질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물질을 볼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두 물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면 상호작용하여 감마선이나 중성미자로 변하므로 존재를 확인하기 어렵다.

우주선을 연구하다 최초의 반물질인 양전자를 발견한 공로로 193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칼 데이비드 앤더슨. © Smithsonian Institution Libraries

우주선을 연구하다 최초의 반물질인 양전자를 발견한 공로로 193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칼 데이비드 앤더슨. © Smithsonian Institution Libraries

모든 물질이 일종의 거울 이미지 같은 반물질을 가지고 있다고 최초로 주장한 물리학자는 영국의 폴 디랙이다. 그는 1928년에 정립한 방정식에 의해 음이 아닌 양의 전자를 지닌 가벼운 입자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주에는 이처럼 전하가 뒤바뀐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웠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4년 후 폴 디랙의 주장이 사실임이 밝혀졌다. 전자와 질량은 같지만 양의 전하를 가진 양전자가 발견된 것이다. 더구나 최초의 반물질을 발견한 이는 박사 학위를 받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27세의 젊은 연구원이었다. 193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칼 데이비드 앤더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05년 9월 3일 뉴욕에서 스웨덴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앤더슨은 LA 폴리텍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기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에 입학했다. 그러나 천문학자 I. S. 보웬의 강의를 들은 후 전공을 물리학으로 바꾸게 된다.

수많은 자료 속에서 이상한 사진 발견

그의 초기 연구 분야는 X-선이었다. 1930년에 제출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도 X-선에 의해 다양한 가스에서 방출된 광전자의 공간 부포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대학원에 다닐 때 로버트 밀리컨 교수(192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지도를 받았는데, 박사학위를 받은 후 칼텍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도 밀리컨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당시 밀리컨 교수의 관심사는 우주에서 쏟아지는 방사선인 우주선의 특성을 좀 더 자세히 밝히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밀리컨 교수는 윌슨 구름 상자 등의 대형 실험 장치를 설치한 후 이 연구의 계획과 수행을 앤더슨에게 맡겼다.

앤더슨은 밤낮없이 15초마다 우주선을 관찰한 자료를 축적해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방대한 사진 속에는 음의 전자와 반대로 흰 궤적들도 찍혀 있었다. 조사 결과 그것은 양으로 대전된 입자의 것으로 대부분 무거운 핵입자들의 궤적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그중에서 이상한 사진 하나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양전하의 궤적이지만 핵입자의 것이 아닌 궤적이 발견되었던 것. 핵입자의 경우 무거워서 가벼운 전자보다 직선에 가까운 궤적을 그리지만, 그것은 방향만 반대일 뿐 음전하의 전자와 똑같이 휘어져 있었다.

바로 폴 디랙이 예견한 양전자의 궤적이었다. 앤더슨은 반복해서 확인한 끝에 그것이 양전자임을 확신했다. 양전자를 발견한 다음해인 1933년 앤더슨은 S. H. 네더마이어 박사와 함께 감마선이 물질을 통과할 때 양전자를 생성한다는 최초의 직접적인 증거를 얻었다.

우주선에는 전자와 양전자가 거의 동일한 양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양전자는 대기 중으로 들어오는 순간 소멸해 버린다. 앤더슨은 우주선의 에너지 분포 및 물질을 통과할 때 에너지 손실을 연구하는 등 우주선의 특성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그는 우주선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혀낸 빅토르 H. 헤스와 공동으로 193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맨해튼 프로젝트 고위직 제안에 단호히 거절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앤더슨은 주요한 발견을 이어갔다. 이듬해인 1937년 네더마이어와 함께 뮤온 중간자를 발견했으며, 1949년에는 뮤온 중간자의 자연 붕괴에 따라 전자와 2개의 중성미자가 발생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는 반물질을 이용해 바티칸을 폭파한다고 위협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반물질을 이용하면 이론적으로 현재의 핵폭탄보다 훨씬 위력이 큰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앤더슨도 미국이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할 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실험물리학자 아서 컴튼이 그에게 맨해튼 프로젝트의 고위직을 제안한 것. 하지만 앤더슨은 단호히 거절했으며, 대신에 그는 미 해군을 위한 로켓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 당시 앤더슨은 실제 전쟁에서도 로켓이 잘 작동하는지 보기 위해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프랑스까지 직접 가서 작전 현장을 참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물질을 이용하면 핵폭탄보다 더 위협적인 무기를 만들 수 있다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자연 상태로는 반물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반물질을 제조할 수 있지만 그 비용이 천문학적인 수준인 데다 물질과 쌍소멸하는 특성으로 인해 보관 및 관리도 매우 까다롭다.

하지만 의학 분야에서 반물질은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뇌질환의 진단 등에 주로 사용되는 양전자방출 단층촬영장치(PET)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체내의 양전자와 전자를 소멸시켜 유용한 3D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PET는 인체의 생화학적 변화를 영상화할 수 있어 혈류 및 산소 사용과 같은 중요한 기능을 측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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