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4,2019

암은 어떻게 전이되나?

인공 분자로 세포 이동 차단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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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파울 쉐러 연구소(PSI)와 호프만-라 로슈 제약사(Roche) 연구진이 암 전이를 막을 수 있는 약물 개발에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들 연구팀은 파울 쉐러 연구소(Paul Scherrer Institute)에 있는 전자빔 가속기인 ‘스위스 광원(Swiss Light Source, SLS)’을 이용해 암세포 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수용체의 구조를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우리 몸의 림프계를 통해 암세포가 전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물질 식별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연구는 생명과학저널 ‘셀’(Cell) 22일 자에 발표됐다.

’셀’ 지에 발표된 연구 논문의 그래픽 요약과 요점. Credit: Jaeger et al., 2019, Cell 178, 1222–1230 August 22, 2019 ª 2019 The Author(s). Published by Elsevier Inc. https://doi.org/10.1016/j.cell.2019.07.028

’셀’ 지에 발표된 연구 논문의 그래픽 요약과 요점. ⓒ Jaeger et al., 2019, Cell 178, 1222–1230 August 22, 2019 ª 2019 The Author(s). Published by Elsevier Inc. https://doi.org/10.1016/j.cell.2019.07.028

환자 90% 전이로 사망

암세포가 체내에 퍼지면 암 전이(metastases)라 불리는 2차 종양이 생길 수 있다. 암 환자의 90%는 바로 이 암 전이에 의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세포가 전이되는 중요한 경로는 림프계를 통해서다. 림프계는 혈관 시스템과 같이 몸 전체에 퍼져 있으며, 림프절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예를 들면 병원균을 조직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면역세포인 백혈구가 이 림프계를 통해 이동한다.

연구팀은 이 같은 세포 이동에서 특수한 막 단백질인 케모카인 수용체 7(chemokine receptor 7, CCR7)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케모카인 수용체는 세포 막인 세포 외피에 자리하고 있어 외부 신호를 받고 이를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파울 쉐러 연구소 과학자들은 호프만-라 로슈 연구진과의 이번 협동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CCR7의 구조를 해독하고, 대장암과 같이 흔히 발생하는 암의 전이를 막을 수 있는 신약 개발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번 연구에 활용된 스위스 PSI 연구소의 SLS 장비. CREDIT: SLS / PSI

이번 연구에 활용된 스위스 PSI 연구소의 SLS 장비. ⓒ SLS / PSI

암세포, 신호 단백질 이용해 이동

모든 척추동물의 세포에는 20개의 서로 다른 케모카인 수용체가 존재하며, 이 수용체들은 40개 이상의 케모카인 신호 단백질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이들 각각의 신호 단백질들은 오직 특정 수용체하고만 궁합이 맞는다. 하나의 신호 단백질이 수용체와 결합하면 세포 내부의 과정을 촉발해 그 신호에 대한 특정 세포 반응을 이끌어낸다.

CCR7은 우리 몸 안에서 세포들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수용체 가운데 하나다. 세포 외부의 적절한 신호 단백질이 이 수용체에 결합하자마자 세포에서 연쇄 반응이 일어나 이 세포를 신호 단백질 농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이동하게 한다.

세포는 냄새를 쫓는 사냥개처럼 케모카인의 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체 면역계의 중요한 세포인 백혈구의 지속적인 흐름도 이런 원리로 림프절로 향한다.

그런데 암세포 역시 목적 달성을 위해 CCR7을 이용한다. 적절한 신호 단백질이 암세포들을 종양 밖으로 불러내 림프계로 유도하는 것.

이 암세포들은 몸속에 퍼져 결국 다른 조직에 전이암을 형성하며, 이 전이암은 환자들의 사망 위험을 급격하게 증가시킨다.

세포막 혹은 외피의 수용체가 신호 단백질과 결합해 세포 안으로 정보를 전달해 세포 이동 등 반응을 일으킨다. 그림은 진핵세포막 도해. 세포막은 모든 살아있는 세포에 공통적인 반투과성 지질 이중층으로 되어있다.  CREDIT: Wikimedia

세포막 혹은 외피의 수용체가 신호 단백질과 결합해 세포 안으로 정보를 전달해 세포 이동 등 반응을 일으킨다. 그림은 진핵세포막 도해. 세포막은 모든 살아있는 세포에 공통적인 반투과성 지질 이중층으로 되어있다. ⓒ Wikimedia

인공 작용제로 세포 이동 방지

암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의학계에서는 전이 과정 억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PSI 연구진도 이 같은 이유로 SLS의 X선 결정학을 이용해 CCR7 수용체 구조 해독에 나섰다.

연구팀이 확인한 수용체 구조는 해당 활성 작용물을 찾는 토대로 활용됐다. 논문 공동 제1저자로 이번 연구를 수행한 스테펜 브륀르(Steffen Brünle) PSI 박사후 연구원은 “우리가 찾는 분자는 신호 단백질이 수용체와 결합해 세포에서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수용체의 구조를 해독하는 일은 만만찮은 도전이었다. PSI의 시간-상분해 결정학(Time-Resolved Crystallography) 연구 그룹원이자 이번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이끈 외르그 슈탄푸스(Jörg Standfuss) 박사는 “어려운 점은 우선 이 수용체들을 X선 결정학을 이용해 조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로슈 연구진은 연구 과정을 가속화하기 위해 새로운 단백질-수정 기술인 이른바 결정화 사프롱(crystallisation chaperones)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이런 노력 끝에 수용체에 대한 정밀한 구조 정보를 가지고 수용체를 차단해 신호가 세포로 전달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적절한 분자를 식별해 낼 수 있었다.

브륀르 박사는 “실험에서 세포 안에 있는 인공 분자가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세포 이동이 시작되는 연쇄반응이 보류됐다”고 말했다.

단백질을 분리하는 기구 앞에서 대화하는 스테펜 브륀르(오른쪽) 박사와 외르그 슈탄푸스 박사. 연구팀은 곤충 세포를 변형해 인체 단백질을 생성한 뒤 이를 분리, 추출한 다음 단백질 구조를 규명해 냈다.   CREDIT: Paul Scherrer Institute/Markus Fischer

단백질을 분리하는 기구 앞에서 대화하는 스테펜 브륀르(오른쪽) 박사와 외르그 슈탄푸스 박사. 연구팀은 곤충 세포를 변형해 인체 단백질을 생성한 뒤 이를 분리, 추출한 다음 단백질 구조를 규명해 냈다. ⓒ Paul Scherrer Institute/Markus Fischer

확인된 물질 하나는 이미 임상시험

이번 연구에서 로슈 연구팀은 로슈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수백만 개의 분자와 약물-결합 수용체의 구조를 활용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신호 단백질 차단에 적합한 물질을 찾아냈다.

이와 함께 미래의 암 치료제 개발 후보로 활용할 수 있는 5개의 화합물을 식별해 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이 발견한 활성 물질 중 하나는 암 전이를 막는 약물로서 제약사가 이미 임상시험에서 테스트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전에는 이 물질이 다른 수용체와 결합해 암세포의 다른 기능을 억제한다고 생각돼 왔다.

이는 이번과 같은 연구에서 나온 통찰력이 약품 연구와 개발에 커다란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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