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7,2019

“소재 생태계 혁신으로 위기 극복해야”

국산 소재·장비 산업 육성 기회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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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여름 군산의 새만금방조제를 지나간 적이 있다. 지금은 사뭇 풍경이 바뀌었을 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황량하기 짝이 없던 새만금산업단지에 막 완공된 거대한 화학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도레이첨단소재’의 PPS(폴리페닐렌설파이드) 일관공장이다.

일본의 소재전문기업인 도레이의 한국 사업은 합작 진출한 지 올해로 57년째가 되었으며, 군산공장 외에도 구미, 공주 등에 8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매출 3조원에, 35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R&D센터와 기술연구소, 몇 개의 계열사, 자회사 그리고 해외 사업장도 거느리고 있다.

도레이첨단 소재의 생산품은 국내기업에 납품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을 중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본사격인 일본 도레이는 공급망의 우수성, 숙련된 인력, 그리고 시장 근접성 등의 장점을 갖고 있는 한국에 2020년까지 1조원을 추가 투자하여 매출을 5조원까지 늘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경제발전에 있어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은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근간으로 한 국제무역의 교과서적 모델이다. 앞서 언급한 도레이첨단소재는 한중일 국제 분업체계가 꽃피운 다국적 기업 경영의 대표적 성공사례이기도 하다.

국제무역이론의 핵심을 단순화하면 ‘기술 수준에 따른 생산성의 차이 또는 부존자원의 차이가 국가 간 상대가격을 만들고, 이를 원천으로 자유무역을 통해 무역에 참여한 모든 국가가 상호 이득을 가져가는 것’이다.

일본은 소재, 부품, 제조 장비 등을 생산하고, 한국은 이를 수입해 가공하여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듈 등 중간재를 생산하고, 중국은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중간재와 자본재를 수입해 최종 상품을 조립하여, 거대 시장이 있는 미국과 EU로 수출하는 삼각무역과 분업구조이다.

이 효율적인 국제분업은 동아시아 3개국 모두에게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다주었다. 그 과정에서 강점 분야에 R&D 투자로 기술혁신을 지속하고, 국가와 개별 기업은 생산성이 향상되었으며, 국부를 축적하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평화로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한,일 국제 무역전쟁의 핵심에 있는 반도체 부품  ⓒ 게티이미지

한,일 국제 무역전쟁의 핵심에 있는 반도체 부품 ⓒ 게티이미지

바야흐로 경제전쟁, 보호무역으로의 전환점에 서 있다.

‘America First!’를 외치며 당선된 트럼프의 미국은 글로벌 경제 패권을 위해 중국과 무역전쟁을 진행 중이다. 군대를 보유하기 위해 평화 헌법을 개정하고, ‘보통 국가’가 되어보겠다는 아베의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시작으로 한국과 통상마찰을 시작하였다. 일대일로를 발판 삼아 G1이 되는 ‘중국몽’을 실현하겠다는 야심도 가만히 있지는 않으리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GATT-WTO로 대표되는 자유무역기반의 세계경제질서가 ‘국익 우선, 첨단산업 주도권 확보, 일자리 창출’의 기치 하에 보호무역으로 급격히 방향타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외환경의 변화는 수출을 근간으로 성장해 온 우리 경제에 있어서 악재임이 분명하다.

만약, 알려진 바대로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직접적인 영향은 우리 기업과 산업이 받겠지만, 그 여파는 글로벌 공급망과 상품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정치와 경제의 분리, 공정무역이라는 글로벌 규범을 벗어나 통상 정책이 무기로 활용된 이상, 이전의 평화로운 시절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정부는 협상을 통해 표면적으로나마 이전 상태로 복귀시킬 수 있겠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사활을 걸고 R&D, 제조, 유통,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는 민간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비즈니스는 신뢰가 생명이다.

日 수출규제, 소재 생태계 혁신의 계기로  ⓒ 픽사베이

일본의 수출규제 인한 위기를 소재 생태계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픽사베이

다시 국제무역 이론으로 돌아와, 국가와 기업은 교역조건 개선을 위해 생산성 향상의 유인을 갖고 있으며 이는 기술혁신을 통해 실현된다. 자본과 노동이 고도화된 국가에서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은 오직 기술혁신(=R&D)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R&D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연구원의 양성과 고용, 연구 장비와 시설에 대한 투자는 그 자체가 고정투자 성격이 강해 생산 비용을 높이고, 환경 변화에 따른 신속한 조정이 쉽지 않은 특징을 갖고 있다. 성공에 대한 불확실성은 덤이다.

소재부품산업은 최종재 산업과 강한 상호의존성을 갖고 있으며, 최종재의 품질과 경쟁력을 결정하기에 매우 중요하다. 특화된 기술, 숙련된 인력 그리고 시설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다른 산업에 비하여 높다. 한번 결정된 공급처가 좀처럼 변경되지 않은 이유이다.

특히 기초소재의 경우는 연구개발 그리고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이번 사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소재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국내 생산시설 확충과 대체 소재에 대한 공정 실증을 진행하고, 장기적으로는 공고화된 글로벌 아웃소싱 구조로 인해 기회를 갖지 못하였던 국산 소재와 장비산업의 육성의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종재를 생산하는 대기업은 소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의 실증과 양산에 필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정부는 금융 유동성과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상용화 단계에 있는 기술은 실증으로 연결하고, 아이디어나 랩스케일 기술은 R&D 지원을 통해 성숙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출연(연)은 실험실의 바깥으로 벗어나지 못한 원천기술을 실증으로 연결하고, 산업화를 지원하기 위해 중소·중견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상당 기간 소재 분야는 주제를 막론하고 정부와 민간의 지원이 대폭 확대될 것이다. 이미 초대형 소재 혁신 연구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번 위기를 소재 생태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무너진 국제분업의 신뢰는 우리 혁신주체의 협력,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협력과 신뢰로 슬기롭게 대체하면 그만인 것이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서 발간하는  ‘TePRI Report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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