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3,2019

스승이 예언한 입자를 찾아낸 제자

노벨상 오디세이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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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독일의 보데와 베커는 베릴륨이라는 물질이 헬륨의 핵과 충돌했을 때 아무런 속도의 손실 없이 수㎝ 두께의 청동판을 투과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는 기존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영국의 제임스 채드윅은 짚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청동판을 관통한 방사선의 정체는 자신의 스승인 러더퍼드가 제안한 중성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연구에 착수한 지 2년 만에 그는 그것이 중성자임을 증명하는 논문을 ‘네이처’와 ‘왕립학회논문집’에 발표했다. 그의 발견으로 원자 안에는 양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음전하를 띠는 전자뿐만 아니라 전기적으로 중성의 상태를 지닌 중성자도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스승인 러더퍼드가 예언한 중성자를 찾아낸 공로로 193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채드윅. © 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스승인 러더퍼드가 예언한 중성자를 찾아낸 공로로 193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채드윅. © 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채드윅은 1891년 10월 20일 영국 체셔의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맨체스터로 이사 간 후 유명 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음에도 등록금이 없어 포기했을 정도였던 것. 할 수 없이 다른 학교에 입학한 그는 대학 장학생 시험에 합격하고 맨체스터대학교에 진학해 평소 공부하고 싶었던 수학이 아닌 물리학을 전공했다.

거기서 교수로 만난 이가 일생의 멘토였던 어니스트 러더퍼드였다. 그는 러더퍼드의 제안으로 대학 4학년 때 연구를 시작해 첫 논문을 발표했으며, 1913년에는 맨체스터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베타 방사선을 연구하기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갔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적국 과학자로 체포되어 루드윅 수용소에 4년이나 수감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독일 정부의 허락을 받아 그곳에 차려진 초라한 실험실에서도 연구를 이어갈 만큼 열정적이었다.

중성자의 질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데도 성공해

전쟁이 끝난 후 함께 일하자는 러더퍼드의 제안을 받고 채드윅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캐번디시연구소로 돌아와 박사학위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다.

독일의 보데와 베커가 베릴륨 복사라고 불린 새로운 현상을 발견했을 때 과학자들은 그것이 강력한 감마선이 일으키는 감마 복사인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감마 복사와는 에너지 값이 다르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고, 채드윅은 그것의 정체가 중성자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베릴륨에서 방출된 중성자들이 베릴륨 복사를 일으킨 것으로 가정하고 실험을 진행한 결과, 에너지 교환에 대한 계산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어서 그는 충돌 시 여러 원소들의 원자핵이 다른 원소의 핵으로 변화하거나 중성자로 변화할 때 일어나는 질량 교환을 관찰해 중성자의 질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데도 성공했다.

중성자의 존재는 러더퍼드가 1920년에 이미 예언했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과학자들이 찾기 어려웠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양성자나 전자처럼 전하를 가진 입자들은 전하 때문에 실제 크기보다 큰 것처럼 행동하는 등 확인이 비교적 쉽다. 그에 비해 전하를 가지고 있지 않는 중성자는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으므로 확인이 잘되지 않았던 것이다.

채드윅에 의해 중성자의 존재가 드러남에 따라 원자와 분자를 쪼개는 강력한 도구를 획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원소들의 정확한 질량을 결정할 수 있었다. 또한 원자번호가 같으면서 중성자의 수가 다른 동위원소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맨해튼 프로젝트 출범시킨 보고서 작성

원자에는 원자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는 러더퍼드였는데, 제자인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함에 따라 원자핵의 구조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스승은 이처럼 자신의 업적을 더욱 빛낸 제자가 노벨상을 받기를 원했다. 실제로 러더퍼드는 1935년 노벨 물리학상 선정 과정에서 채드윅이 단독 지명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노벨상 수상 이후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 등에 의해 중성자가 우라늄 핵을 2개로 쪼개는 핵분열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로써 진정한 핵물리학의 시대가 열리게 됐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채드윅은 영국의 모드 위원회에 참여했다.

원자폭탄의 개발 및 연구를 추진하던 그 위원회에서 채드윅이 작성한 보고서는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또한 그는 1944년에 가족들을 데리고 직접 미국으로 들어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영국 책임자로서 미션을 이끌었다.

전쟁이 끝난 후 채드윅은 영국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영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채드윅은 1945년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946년에는 미국에서 공로훈장을 받았다.

그는 1948년부터 10년 동안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곤빌앤키즈칼리지의 학장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지 16년 후인 1974년 7월 24일 케임브리지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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