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07,2019

과학과 미술, 서양과 동양의 만남

전승일의 과학융합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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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서적과 미술의 만남   

15세기 중엽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8~1468)에 의해 금속활자(活字) 인쇄술이 보급되고, 대상의 섬세한 명암(明暗) · 양감(量感) · 원근(遠近)을 표현할 수 있는 동판화(銅版畵, engraving) 기술이 개발되면서, 유럽에서는 서적 인쇄에 동판화로 제작된 삽화를 널리 사용하게 된다.

16세기 유럽의 과학기술과 기계공학의 성과를 총화한 서적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Le diverse et artificiose machine)’은 이탈리아의 공학자이자 기계설계사인 아고스티노 라멜리(Agostino Ramelli, 1531~1610)에 의해 1588년에 쓰였다.

16세기 유럽의 과학기술과 기계공학의 성과를 담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

16세기 유럽의 과학기술과 기계공학의 성과를 담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 Ⓒ public domain

이 책에는 195가지의 각종 기계장치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데, 아고스티노 라멜리가 직접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 동판화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동판화는 목판화(Woodcut), 에칭(Etching), 드라이포인트(Drypoint), 메조틴트(Mezzotint) 등과 함께 대표적인 판화 제작 기법 중에 하나이다.

독일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자’로 평가받고 있는 뉘른베르크 출신의 화가 알베르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는 특히 목판화와 동판화에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서, 여러 서적의 삽화를 판화로 제작했으며, 구텐베르크에 의해 촉발된 인쇄물 유통망을 활용하여 자신의 판화 작품 서적을 판매하였다.

뒤러의 판화 '서재의 성(聖) 히에로니무스(1514)'

뒤러의 판화 ‘서재의 성(聖) 히에로니무스(1514)’ Ⓒ public domain

뒤러는 인체 비례와 원근(遠近)을 측량하는 과학적인 도구들을 많이 사용했고, 당대의 기하학과 수학에도 능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뒤러의 주요 판화 작품으로는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멜랑콜리아’, ‘요한계시록의 네 기수’, ‘서재의 성(聖) 히에로니무스’ 등이 있다. 성(聖)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는 영어권에서는 성(聖) 제롬(Jerom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양에 전해진 서양 과학 기술서

16세기까지의 서양 과학기술과 기계학을 중국에 최초로 소개한 과학서 ‘기기도설(奇器圖說,1627)’은 스위스 출신의 선교사이며 의학자 · 수학자 · 기계공학자인  요한 테렌츠 슈렉(Johann Terrenz Schreck, 1576~1630)과 명(明)나라 때의 과학자이자 화가인 왕징(王徵, 1571년~1644)이 공동으로 저술한 서양 역학서(力學書)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왼쪽)', '기기도설(오른쪽)'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왼쪽)’, ‘기기도설(오른쪽)’ Ⓒ public domain

3권으로 이루어진 ‘기기도설(奇器圖說)’의 원제는 ‘원서기기도설록최(遠西奇器圖說錄最, Diagrams and explanations of the wonderful machines of the Far West’인데, ‘기기도설’의 삽화는 아고스티노 라멜리와 이탈리아의 공학자 비토리오 종카(Vittorio Zonca, 1568~1603), 그리고 프랑스의 기계설계사 자크 베송(Jacques Besson)의 각종 기계 그림을 참고로 하여, 왕징이 중국 회화 및 목판화 기법으로 다시 제작한 그림이다.

왕징은 1626년에 자신이 직접 고안한 기계장치를 소개한 ‘신제제기도설(新製諸器圖說)’을 저술하였는데, 다음 해에 ‘기기도설’과 함께 합본을 출간되었다. ‘기기도설’은 편찬된 이후 지속적으로 번각본(飜刻本)이 제작되었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왼쪽), '기기도설(오른쪽)'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왼쪽), ‘기기도설(오른쪽)’ Ⓒ public domain

‘기기도설’에는 작은 힘으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거나 운반하고, 낮은 곳에서 높은 곳까지 물을 길어 올리는 기계장치 등 50여 점의 기계 그림이 해설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제1권과 제2권은 역학(力學)에 대한 이론적 해설과 이를 도해한 기하학적 도면이 실려 있으며, 제3권에는 역학의 원리를 응용하여 제작한 각종 기계장치 그림이 실려 있다.

또한 ‘기기도설’은 인력과 동물의 힘을 이용한 전통적인 기계장치와, 르네상스 이후 발달한 서양의 기계공학 및 과학적 미술의 성과를 함께 보여준다. 이렇게 과학과 예술의 만남, 서양 미술과 동양 미술의 만남, 인쇄술과 판화 기법의 융합과 발전은 인류의 과학 문명을 한 단계 높이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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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작권자 2019.08.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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