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2019

하숙집 비리를 밝힌 방사성 추적자

노벨상 오디세이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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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의 적정 사용량을 알려면 방사성 동위원소를 포함한 화합물을 비료에 섞어두면 된다. 방사능을 가지고 있는 물질은 방사선원을 조사했을 때 얼마만큼 농작물에 흡수되고 얼마만큼 씻겨나가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방사성 동위원소를 표지로 사용해 물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것을 ‘방사성 추적자’라고 한다. 방사성 추적자를 혈관을 따라 흐르게 하면 혈관계 질환을 진단할 수 있고, 인체의 대사과정도 추적할 수 있다.

그런데 의학 및 물리, 화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방사성 추적자가 최초로 사용된 곳은 좀 뜻밖의 장소였다. 그것은 바로 영국에서 객지 생활을 하던 헝가리 과학도의 하숙집 식탁이었다. 이 과학도의 정체는 바로 1943년 노벨 화학상의 주인공인 게오르크 헤베시다.

동위원소의 응용에 관한 공헌으로 1943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헝가리의 화학자 게오르크 헤베시. Ⓒ public domain

동위원소의 응용에 관한 공헌으로 1943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헝가리의 화학자 게오르크 헤베시. Ⓒ public domain

1885년 8월 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게오르크 헤베시(George Hevesy)는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프리츠 하버 등의 조수를 거쳐 1910년부터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어니스트 러더퍼드와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러더퍼드는 헤베시에게 상당히 어려운 연구 과제를 맡겼다. 방사성 납으로부터 라듐 D를 분리하라는 임무가 바로 그것. 그 두 물질은 다른 점이 거의 없어서 분리하는 것은 애초 거의 불가능했다. 2년 동안 연구에 매달리다 헤비시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헤베시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라듐 D를 화학적으로 분리해낼 수 없다면 납을 녹인 용액을 사용해 그 원소의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는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라듐 D가 자신의 위치를 방사능 신호로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멘델레예프가 예언한 하프늄 발견

그는 방사성 추적자의 첫 시험 대상으로 하숙집의 음식을 떠올렸다. 귀족 가문에서 부유하게 성장한 헤베시는 당시 하숙집 주인이 내놓는 음식들을 매우 미심쩍어 했다. 주인이 식탁에 올리는 고기가 이전에 먹다 남은 음식을 재활용하는 것 같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헤베시는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으나 하숙집 주인이 단호히 부인하자 방사성 추적자로 그 증거를 찾기로 했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헤베시는 자신이 먹다 남긴 고기 위에 준비해온 물질을 살포했다.

이튿날 저녁 식사로 나온 음식에 헤베시가 연구실에서 가져온 방사능 탐지기를 갖다 대자 짐작대로 계수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헤베시는 그 증거를 들이대며 하숙집 주인을 몰아세웠고, 자신의 행각이 들통난 주인도 최신 과학 도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헤베시는 고체 납에서 일어나는 원자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등 방사성 추적자 연구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후 부다페스트대학의 물리화학 교수가 된 그는 1919년에 덴마크 코펜하겐 연구소의 닐스 보어로부터 초청받고 그곳으로 향했다.

헤베시는 여기서 닐스 보어의 제안으로 또 하나 중요한 연구 성과를 일궈냈다. 멘델레예프가 일찍이 예언한 하프늄의 존재를 밝혀낸 것이다. 멘델레예프는 1869년 원소 주기율표를 제안하면서 지르코늄과 성질이 비슷하면서 질량이 더 큰 원소의 존재를 예언했다.

화학자들은 그 원소가 희토류 원소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했으나 그 존재를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닐스 보어는 희토류가 아니라 지르코늄과 비슷한 전이금속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 힘입어 헤베시는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코스터와 함께 1923년에 지르코늄 광석인 지르콘에서 마침내 그 원소를 찾아내고 하프늄으로 명명했다. 코펜하겐의 라틴 이름 ‘하프니아’에서 따온 명칭이었다.

원자번호 72번인 하프늄은 중성자를 잘 흡수해 주로 원자로 제어봉에 사용된다. 그 외에도 초내열성 특수 합금이나 플라스마 절단 장비 전극, 반도체 칩의 절연체, 내열 재료, 화학 촉매 등으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생물학적 과정 알기 위해 추적자 사용

헤베시는 생물학적 과정을 배우기 위해 방사성 동위원소를 사용한 최초의 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토륨 B를 사용해 토양으로부터 흡수된 납의 양이 콩 식물의 다른 부분에서 얼마나 검출되는지 알아낸 연구결과를 1923년에 발표했다.

1934년에는 인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든 후 표지된 방사성 인이 사람과 동물의 혈액 속에서 빠르게 없어지는 것을 발견하는 등 방사성 추적자를 활용한 다양한 생리학적 과정을 연구했다. 인은 생물학적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원소인데, 방사성 추적자의 사용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에 작용하는 인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헤베시는 방사성 나트륨과 칼륨을 활용해 다양한 생물학적 과정에 대한 여러 연구를 수행했다. 이외에도 마그네슘, 황, 칼슘, 염소, 철, 구리 등과 같은 많은 동위원소들이 이 같은 연구에 사용됐다. 그는 동위원소의 응용에 관한 공헌으로 1943년 노벨 화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이어서 1943년 노벨 화학상은 1944년 11월에 발표되었다. 헤베시 역시 나치를 피해 스웨덴으로 망명한 후 스톡홀름대학 교수가 되었다. 말년에 그는 서독 프라이부르크에서 폐암으로 수년간 고생하다가 1966년 7월 5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감했다. 프라이부르크 묘지에 묻혀 있던 그의 유해는 후손들의 요구에 의해 2001년 고향인 부다페스트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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