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2,2019

오토마타로 부활한 ‘죽안거마’

전승일의 과학융합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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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날아 올라간 말 인형

죽안마(竹鞍馬) 혹은 죽산마(竹散馬)라고도 부르는 ‘죽안거마(竹鞍車馬)’는 대나무로 말 모양의 틀을 짜고, 그 위에 종이를 겹겹이 바르고 색칠을 하여 만든 거대한 말 인형으로, 임금이나 왕비의 장례 행렬에서 바퀴 달린 수레에 실려 이동하는 의장(儀仗) 가운데 하나이다.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 '죽안마'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 ‘죽안마’
Ⓒ public domain

죽안마에 대한 조선시대 기록은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1688), 숙종국장도감의궤(1720), 인현왕후국장도감의궤(1701),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1752), 순조국장도감의궤(1834) 등 각종 의궤(儀軌)의 발인 반차도(發靷 班次圖)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고종과 순종의 장례 행렬 ‘죽안거마’  Ⓒ public domain

고종과 순종의 장례 행렬 ‘죽안거마’ Ⓒ public domain

또한 1910년 한일합병조약에 의해 우리나라가 주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던 때, 비운의 대한제국 황제 고종(高宗, 1852~1919)과 순종(純宗, 1874~1926)의 장례 행렬에는 실제로 수레에 실린 수십 마리의 ‘죽안거마’가 등장했으며, 이탈리아 주간지 ‘La Domenica Del Corriere’는 1919년 6월 8일 자 표지를 고종 장례 행렬의 ‘죽안거마’ 그림으로 장식했다.

당시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이 역사적인 두 장례식이 열리던 날, 동시에 전국적으로 3·1운동과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이 국장(國葬) 행렬에는 웅장한 ‘죽안거마’ 인형들과 함께 상여를 장식하는 수십 개의 나무 인형, 그리고 악귀를 쫓는 방상시(方相氏) 인형 등이 등장하였다. 장례 행렬 속의 ‘죽안거마’들은 장지(葬地)에 도착해서 불태워져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

오토마타로 부활한 ‘죽안거마’

이러한 우리나라 전통 문화원형으로서의 ‘죽안거마’를 현대적인 과학융합예술로 재해석한 ‘죽안거마 오토마타 부활 프로젝트’가 지난 2015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 다원예술·복합장르 부문 지원 사업으로 선정되어 작품 제작 및 전시회가 진행된 바 있다.

‘죽안거마 오토마타 부활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전통 인형 가운데 특히 장례 의식에 등장했던 인형이나 조형물의 문화적 의미에 주목하고, 구한말 국가의 운명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거대한 말 인형 ‘죽안거마’를 현대적인 메커니컬 스컬프처(Mechanical Sculpture)와 오토마타(Automata)로 재해석하여, 움직이는 조형물로 새롭게 제작했다.

죽안거마 오토마타 No.1 & No.2

죽안거마 오토마타 No.1 & No.2 Ⓒ 전승일

이를 통해 우리 전통 문화원형과 현대예술의 다양한 테크놀로지가 함께 만나고, 각각의 예술 요소가 상호 침투하고 넘나드는 과학융합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창출하고자 했다.

죽안거마 오토마타 No.3 & No.4

죽안거마 오토마타 No.3 & No.4 Ⓒ 전승일

즉, 캠(Cam)·크랭크(Crank)·링키지(Linkage) 등 여러 가지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죽안거마 오토마타’는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의 ‘죽안거마’를 단순히 조형적으로 모사(模寫)하거나 재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전통 문화유산과의 새로운 역사적 조우와 예술적 재경험 및 대중적 교감을 추구하였다.

이는 구한말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비운의 황제들의 국장 행렬에 등장하였다가 불태워져 사라져 버린 우리의 마지막 ‘죽안거마’를 예술적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또한 자격루(自擊漏, 1434)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전통 오토마타 제작 기술에 대한 자긍심과 기술력을 부활시킨 것이며,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인형 및 조형물에 대한 예술적 상상력을 부활시킨 시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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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작권자 2019.07.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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