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2019

유명해지는 걸 싫어한 천재 과학자

노벨상 오디세이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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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을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으로 구분 지은 것은 20세기 이후 등장한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이다. 하지만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은 처음 등장했을 때 수학적으로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대립했다.

그런데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이론을 통합해 상대론적 양자역학을 개척한 이가 있다. 아인슈타인과 필적할 만한 천재로 알려진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폴 디랙(Paul A. M. Dirac)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폴 디랙은 1902년 8월 8일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 스위스에서 영국으로 건너와 그곳에서 프랑스어 선생을 하고 있던 부친 찰스 디랙은 아이들에게 매우 엄격하여 식탁에서는 오직 프랑스어로 말하기를 강요했다.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과학자이지만, 수줍어하는 성향 탓에 일반 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폴 디랙. 그는 양자역학 연구의 업적으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JOC/EFR/Wikimedia Commons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과학자이지만, 수줍어하는 성향 탓에 일반 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폴 디랙. 그는 양자역학 연구의 업적으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JOC/EFR/Wikimedia Commons

삼 남매 중 둘째였던 폴 디랙은 미숙한 프랑스어 실력 때문에 가정에서 말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이후 그는 성장해서도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만큼 사교성이 부족했다.

워낙 말이 없는 그를 보고 과학자 동료들은 ‘디랙 단위’란 걸 만들었다고도 전해진다. 여기서 1디랙은 한 시간에 한 마디를 하는 거였다. 또한 그는 ‘모든 여성을 두려워하는 천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타고난 그의 수학적 재능만은 감출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수학에 뛰어난 소질을 보인 그는 ‘머천드 벤처러’라는 중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후 브리스톨대학에 진학해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디랙의 바다에서 추론한 최초의 반물질 ‘양전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폴 디랙은 R. H. 파울러의 지도 아래 양자역학에 대한 논문을 써서 192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바로 그해 그는 다시 코펜하겐으로 가서 닐스 보어의 지도로 양자론을 연구해 1932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되었다.

폴 디랙은 처음부터 상대성이론의 가정을 충족하는 파동역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1928년에는 초기의 파동방정식을 더 간단한 두 개의 방정식으로 나누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디랙 방정식’인데, 첫 번째 방정식은 상대론과 잘 일치했다.

하지만 두 번째 방정식에는 약간 문제가 있었다. 질량과 전하량의 크기는 같지만 음수의 에너지를 가진 전자가 존재해야 그 식의 성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디랙 방정식이 물리학이 아니라 수학일 뿐이라며 무시했다.

그러나 디랙은 자신의 방정식이 수학적으로 너무 아름다워서 결코 틀릴 수 없다고 믿었다. 그는 음의 에너지를 가진 전자가 가득 찬 것을 우주의 진공 상태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 같은 진공을 ‘디랙의 바다’라고 한다.

그런데 텅 비어 있는 디랙의 바다에 빛을 쪼이면 음의 에너지를 가진 전자 중에서 하나가 그것을 흡수해 구멍이 하나 생기고, 양의 에너지를 지닌 전자가 생기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멍 이론으로서,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의 존재를 예견한 이론이다.

보통의 물질을 구성하는 소립자의 반입자, 즉 반물질이 존재한다는 디랙의 이론에 학계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1932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대학원생 칼 앤더슨은 우주선(cosmic ray)이 어떤 입자로 이뤄져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하던 중 질량이 전자와 같으면서도 양전기를 띤 입자를 발견했다. 폴 디랙이 예측한 양전자의 실체를 밝혀낸 것이다.

노벨상 수상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천재

실험적으로도 확인된 디랙 방정식은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인 슈뢰딩거 방정식의 한계를 해결해 버렸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입자가 빛의 속도에 비해 천천히 움직일 때만 적용할 수 있었는데, 디랙이 상대론적 양자역학을 개척함에 따라 빛의 속도에 근접할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폴 디랙은 슈뢰딩거와 함께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이때 폴 디랙의 나이는 31세였다. 하지만 그는 노벨상 수상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유명해지는 게 싫어서 처음엔 노벨상을 거부하려고 했던 것.

그런데 상을 거부하면 언론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거라는 러더퍼드의 충고를 듣고 결국 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큰 업적을 남긴 폴 디랙이 일반인에게는 덜 알려진 과학자로 남아 있는 것은 어쩌면 그의 이 같은 성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자의 반입자뿐만 아니라 모든 기본입자, 즉 쿼크, 중성미자, 뮤온, 타우온 등에도 각각의 반입자가 존재한다. 빛처럼 전기적으로 중성인 입자는 자기 자신이 반입자가 되기도 한다.

반물질을 처음으로 생각해내 반물질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디랙은 1968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플로리다주립대학의 명예교수가 되었다. 그는 디랙 방정식의 발표 이후 전자기장의 양자론 완성에 노력해 다시간이론으로 장의 이론 형성에 크게 공헌했다. 말년에도 왕성한 연구 활동을 이어가던 폴 디랙은 1984년 10월 20일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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