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07,2019

조선의 만능 과학예술가 ‘최천약’

전승일의 과학융합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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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다빈치, 최천약

18세기 조선시대에는 각종 과학기계, 천문 기계, 자명종 제작, 조각 예술, 악기 제작, 무기 제조 등 과학과 예술을 아우르며 다방면에서 천재적 기량을 발휘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숙종(肅宗, 1661~1720)과 영조(英祖, 1694~1776) 때 과학과 기술, 그리고 예술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친 최천약(崔天若, 1684~1755)이다.

최천약은 조각가로서 왕릉을 비롯한 각종 능묘(陵墓)의 석물(石物) 조각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석물이란 능묘에 설치하는 각종 석조물(石造物)을 말하는데, 문인석(文人石), 무인석(武人石), 동자석(童子石), 호석(虎石), 양석(羊石), 마석(馬石) 등 다양한 형상이 있다.

소령원 문인석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소령원 문인석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영조(英祖)의 손자인 의소세손(懿昭世孫)의 무덤 의령원(懿寧園),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무덤 소령원(昭寧園), 단경 왕후(端敬王后)의 온릉(溫陵) 등 영조 시대의 예술성 높은 왕릉 석물은 대부분 최천약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제작 과정은 ‘상시봉원도감의궤(上諡奉園都監儀軌)’에 기록되어 있다. 최천약은 이외에도 옥인(玉印)과 옥보(玉寶), 그리고 물시계 제작에도 독보적인 솜씨를 선보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규상(李圭象, 1727~1799)의 18세기 각 분야 명사 인물지(人物誌)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는 기술자로서는 유일하게 최천약의 이름이 올라가 있으며, 이덕리(李德履)의 국방 서적 ‘상두지(桑土志)’에는 최천약이 만든 총차(銃車)를 개량한 화기(火器)가 기록되어 있다.

최천약의 기술 업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사례는 도량형(度量衡) 자, 유척(鍮尺)을 만든 것이다. 최천약은 영조의 명을 받아 다섯 가지 각기 다른 척도의 기능을 가진 놋쇠자를 만들었는데, 조선시대 척도(尺度)로서는 가장 정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놋쇠자  Ⓒ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시대 놋쇠자 Ⓒ 국립고궁박물관

천재적인 기술자였던 최천약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의 감동관(監董官)으로 발탁되어, 고도의 제작 기술이 필요한 편경(編磬)과 편종(編鍾) 등과 같은 악기 제작 감독을 맡아 활동했으며, 그 과정은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仁政殿樂器造成廳儀軌)’에 기록되어 있다.

편경  Ⓒ 국립국악원

편경 Ⓒ 국립국악원

자명종은 1631년 인조(仁祖) 때 명나라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鄭斗源)이 한문으로 번역된 서양 과학 서적과 함께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후 서양과 일본의 과학기술에 정통했으며, 자명종 제작 기술을 터득한 최천약은 영조 앞에서 직접 자명종을 수리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자명종  Ⓒ 숭실대학교박물관

조선시대 자명종 Ⓒ 숭실대학교박물관

이러한 18세기 조선의 최고의 과학예술가였던 최천약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英祖實錄)’, ‘일성록(日省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및 각종 의궤에 자주 등장한다.

또한 안대회 교수의 저서 ‘벽광나치오(2011, 휴머니스트)’에 따르면, 최천약은 자명종 제작자로서 한 시대의 거장으로 인정받은 기술자이며,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은 백과사전 형식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자명종변증설(自鳴鐘辨證說)’을 통해 최천약을 자명종 제작에 있어 가장 뛰어난 기술자라고 언급한 바 있다고 하였다.

최천약은 무기를 비롯한 각종 기계를 설계하고 제작한 기술자이자, 자와 악기를 제작하고, 온갖 조각품을 만든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광범위한 영역에서 천재적 기량을 발휘한 만능 과학기술자, 만능 예술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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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작권자 2019.07.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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